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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 워싱톤서(32) - 조영진 목사
내게 은혜를 주신 것은
로마서 15:14-33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자각과 감사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은혜는 사명의 사람으로 일생을 살아가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사명을 찾았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지는 사명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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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묻게되는 가장 중요한 물음이면서, 가장 묻지 않는 물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어느 사람의 이야기처럼 인생은 내가 누구인가? 내 삶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묻게되면 벌써 40대에 이르게 된다고 말하는데, 40대가 되어서라도 이 질문을 묻게 되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묻지도 않은 채 어제와 같은 오늘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바쁜 인생을 살아가다가 보면 그냥 떠밀려서 세월을 보내는 날들이 많습니다.
한번은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가 깊은 사색에 잠긴 채 길을 걷다가 앞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부딪친 사람은 화가 잔뜩 나서 "당신은 도대체 누군데 앞도 보지 못하고 다니는거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쇼펜하우어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누구냐구요? 글쎄올시다. 나도 그 질문을 방금 생각하고 있던 중입니다."
여러분, 내가 누구입니까? 나는 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믿음, 신앙의 영역입니다. 믿음은 바로 이같은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다룹니다. 기독교 신앙도, 불교도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참 자아, 진정한 내 모습의 발견입니다. 물론 무엇이 진정한 자아인가? 참 나의 모습인가 라는 참 자아의 내용에서는 서로 다릅니다만, 어쨌든 신앙은 바로 이 근본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습니다.
I.
오늘 함께 읽은 로마서 15장 14절 이하의 말씀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찾은 사도 바울의 고백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사랑 안에서 찾은 삶의 사명을 로마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아니 오늘 21세기를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들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습, 자신의 사명을 15:16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도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 속에서 두 가지 중요한 어휘가 나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란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경우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자신을 지칭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꾼이란 말은 영어로는 minister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한 성서학자는 이 말의 희랍어 어원을 분석해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일꾼"이란 말은 고대 희랍사회에서 나라가 필요한 일을 자진해서 감당하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도시 국가에서는 여러 가지 축제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운동선수, 해군에 복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라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이들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을 가리켰습니다. 또 이들은 시민들이 회식을 한다든지, 다른 도시에 대사관 같은 것을 개설할 때, 뒷받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후대에 가서는 자발적으로 하던 것이 점차 의무가 되었고, 이 말은 점차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과 연결되어서 쓰여졌습니다. 어쨌든 일꾼이란 말은 자발적이고, generous한 봉사를 뜻하는 말에서 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사람, 일꾼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일꾼이 된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바로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이었습니다. 여러분, 제사장은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은 생명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이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값없이 베풀어 주신 은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는데 앞장섰던 바울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내 평생 힘써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자아를 찾았습니다. 참된 나의 모습, 참된 나의 사명을 찾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같은 깨달음은 사도 바울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까? 21세기,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관계가 없습니까? 21세기의 제자인 우리들의 참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무엇입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은 깨달음 속에서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들입니다. 목사만이 아닙니다. 장로님들만이 아닙니다. 직분 받으신 분들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 모두는 복음의 증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으로 그리스도를 모르는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서 제단에 바치는 사명에로 부름받았습니다. 미국연합감리교회 장정에 분명히 선언하고 있는 것처럼 "All baptized Christians are ministers.(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의 제사장들입니다.
II.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에 주시는 귀한 멧세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으로 헌신할 때, 분명히 지켰던 원칙들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에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여러분, 그 원칙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깨닫고 붙들었던 충성스러운 사역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1) 무엇보다도 그는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사도로서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을 힘입어 사역했습니다. 15:17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다: " ...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사람들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나를 시켜서 이룩하신 것 밖에는 아무것도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일은 말과 행동으로, 표적과 이적의 능력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이룩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남김없이 전파하였습니다(표준새번역)."
전도에 대하여 흔히 갖는 착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상대방을 설득시켜서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 전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알지 못한다고, 나는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복음을 전할 엄두조차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도는 내가 상대방을 구원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주시고, 마음을 열어 주실 때만이 전도는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는 먼저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 주시도록, 역사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론 무장은 그 다음입니다.
전도에서 우리는 인생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께 쓰여지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나를 시켜서 이룩하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똑똑하시고, 우리 보다 훨씬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을 구원하는 가장 좋은 길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기도할 뿐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맡길 뿐입니다. 언제, 어떤 길로 복음을 믿게 하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꾸준히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기다릴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비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런던역 앞에서 한 부인이 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례합니다, 부인! 사실은 당신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감사의 말씀이라구요?" 그 여인은 놀라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인! 저는 오랫동안 런던역에서 승객들의 표를 조사하던 역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표를 건네주고 갈 때마다 밝고 명랑한 웃음으로 아침 인사를 대신하곤 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미소가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후 어느 날 아침이었죠. 나는 당신의 손에 조그마한 성경책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나도 그 성경책을 사게 되었고, 마침내는 그 책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절한 미소를 통해서도 인생을 건지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2) 둘째로 사도 바울이 추구했던 전도의 모습이 있습니다. 본문 15:20의 말씀을 보십시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으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함이라."
사도 바울은 이 원칙을 지키느라 사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미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한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고는 얼마동안 머물다가 또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소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한 것처럼 로마를 거쳐서 서바나, 오늘의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원칙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한국에 가면 빌딩의 층마다 다른 교단의 교회 간판을 보는데,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분명히 문제입니다. 또 이곳 워싱톤에서도 길을 운전해 가다보면 교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또 저같은 사람도 개척 전도자가 되지 못하고, 이미 존재하던 교회에 파송을 받아와서 여러 해째 섬기고 있습니다. 선교지를 나가 보아도 이같은 현상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오늘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역사적인 정황도 달라졌습니다. 바울의 추구했던 전도의 원칙을 유일한 것으로 붙들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한가지, 복음의 제사장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되, 이미 다른 교회 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민교회에서의 성장이란 교인들의 수평이동에 불과하다고. 귀담아 들어야 할 말입니다. 요즈음엔 한국에 있는 교회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전도할 바에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교회 잘나가고 있는 사람을 우리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것은 전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음의 제사장된 모습도 아닙니다. 물론 오늘의 교회들이 어떤 때는 진실되이 믿음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기 때문에 이같은 현실이 일어나고 있는 것,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러나 전도의 근본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겠다는 사도 바울의 이 외침은 복음의 전도자로 부름받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분명한 도전입니다. 일깨움입니다. 특별히 21세기,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서 각성을 촉구하는 경고의 멧세지입니다.
(3) 셋째로 오늘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이 사역에서 교회들이 함께 손잡고, 함께 뒷받침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가 곧 예루살렘을 방문케 되었는데, 이는 마게도냐와 이가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헌금을 모았기 때문에, 이것을 전달하러 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제 로마를 거쳐서 스페인으로 가기를 원하는데, 이 길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해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선교여행을 뒷받침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복음 전하는 이 일을 위해 교회는 함께 손잡고, 함께 협력하는 것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 주변은 어떻습니까? 함께 손잡기보다는 각개 약진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하고, 우리이름을 내어야만 무언가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미국연합감리교회의 Connectionalism(연대주의)는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함께 손을 잡는 좋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교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온 교회들이 함께 힘을 모음으로 아름답게 이루어가는 모습을 종종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에 감리교 대학을 세울 때 온 연합감리교회들이 십시일반으로 함께 힘을 모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손을 잡고 함께 지원하였습니다.
지난 목요일 저는 Falls Church에 있는 미국연합감리교회에서 베트남 사람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베트남 목회자를 만났습니다. 목사 안수 과정을 밟고 있는데, 제가 지방에서 멘토로 내정되었기에 점심을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많은 어려움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염려를 나누면서 전도사님은 우리 교회를 모델로 삼고 배우고 싶다는 소망을 간곡히 표시해 왔습니다. 저도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돕겠다고 대답하면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전도사님의 능력 있는 사역과 베트남 교회의 내일을 위해서 간절히 주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복음의 제사장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느껴 보았습니다. 복음 위하여 함께 손잡고 서로 협력하며 지원함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형제 교회로 삼은 Burke에서 시작되는 김용환 목사님의 개척사역도 우리는 이 말씀의 빛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인이 많아지니까 별소릴 다한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참 뜻과는 먼 거리에 있는 생각입니다.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교회가 손을 잡고 협력하는 것,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때에 보여졌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 모습을 오늘 교회들 속에서 다시 찾아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은 21세기 워싱톤에서도 이어져야 합니다.
III.
이를 위해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있는 사역은 기도 위에서만이 꽃필 수 있음을.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 없이는 능력있는 복음 전파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우리 모두 복음의 제사장 된 이 직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충성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참 나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우리 인생의 사명을 찾았습니다. "Amazing Grace(나 같은 죄인 살리신)" 라는 유명한 찬송을 지은 John Newton목사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의 경험을 통해서 반드시 발견하는 세 가지 놀라운 경험이 있다. 첫째는 내가 죄인이라는 발견,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신다는 사실, 셋째는 그런 나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복음의 제사장으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놀라운 사랑입니다.
6.25동란 때의 일입니다. 일본의 와세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신 지성인으로 당시 정부에서 일하시면서 4남매의 자녀와 가정을 이끌어 가시던 한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동란 중 병환으로 치료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졸지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동생들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맏아들은 부평 미군부대에서 일을 도우면서 근근히 가족의 생활을 이끌어 갔습니다. 떨어져있던 가족들도 부평으로 와서 단칸방을 세 들어 함께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가족들에게 세를 들게 해준 최기만씨 라는 속장님이 어머니를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맏아들 되는 이 소년도 부대에서 만난 Paul Happel이라는 일등병이 친절하게 대해주면서 교회에 나가자고 권유함에 따라 주일날 교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주님 앞에 나오기를 권고한 사람들은 이 4남매의 앞길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예수를 믿은 4남매는 모두가 감리교 신학대학을 나왔습니다. 두 아들은 목사가 되었고, 두 딸은 목회자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이 가정은 오늘 미국 내 한인연합감리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가족들로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복음의 제사장으로 헌신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분들이 누구신지 아십니까? 이 맏아들이 바로 Western Pennsylvania 연회를 이끌어 가시는 김해종 감독님이시고, 둘째 아들이 바로 한인연합감리교회 중 가장 큰 교회의 하나인 뉴욕의 Flushing 제일교회를 섬기시는 김중언 목사님이십니다. 김중언 목사님은 바로 김유민 전도사님의 아버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무엇하라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그리스도의 일꾼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복음의 제사장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놀라운 직분, 이 놀라운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함입니다. 천사도 흠모하는 이 직분 감당케 하기 위함입니다.
* 나눔과 적용을 위한 물음
1.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셨습니까? 오늘 나는 이 물음에 대하여 어떤 대답을 갖고 있습니까?
2. 복음의 제사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나의 전도를 믿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온 사람이 있습니까? 함께 나누어 보십시다.
3. 전도하는 삶이 왜 어렵습니까? 어떻게 하면 복음의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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