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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3. - 문형일 전도사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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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모여 있던 무리를 오병이어로 머기셨던 기사를 통해 우리들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은 항상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며 이러한 한계를 통해서 예수님의 예수님 되심을 또한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한계 속에서 우리가 가진 초라한 것을 주님께 내어 놓을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또한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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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이는 가슴이 설레는 말입니다. 가끔 TV는 사랑을 싣고 라는 프로를 보면서 10년 20년 30년, 잊고 지내던 아름다웠던 자기의 초등학교 시절 첫 사랑이나, 짝으로 지내던 친구 사랑하는 선생님들을 제자들이나 혹은 친구들이 그때 하지 못했던 나누지 못했던 사연을 들고 찾는 것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는 누가 찾는 사람이 없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한가지 공통점이 모두에게 있다면 그것은 예외 없이 그 찾고싶은 사람에게 큰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입니다.
지난해 프린스톤 대학에서 있었던 뉴욕지역 장로교 목사님들의 연장교육에 세미나 강사로 오신 조목사님을 뵐수 있었습니다 참 깊은 인상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회와 사역하고 계시는 교인들에 대한 자랑과 사랑이 유별나다 싶어 은근히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조 목사님 곁을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경상도 사나이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김 상근 목사님이셨고 곧 와싱톤 한인교회로 가시게 됐다고 좋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의 사이에서도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의 신화처럼 들렸습니다. 아니 미 연합감리교회에도 그렇게 평신도 사역과 팀 사역이 열매를 맺는 곳이 있단 말인가? 제가 하도 의심하고 못 믿으니까 조 목사님께서 "와 보라" 하시고 교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로 미 김리교 목회자 컨퍼런스가 있으니 한번 신청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일 먼저 신청을 하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9.11 테러로 인해 그 뜻을 이루지 못하는가 했읍니다만 제가 하도 서운해하니까 조 목사님께서 혼자라도 한번 내려오라고 하셔서 한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 그러더니 오늘 제가 워싱턴 한인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하는 등록 교인이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좋은 소문이 난 교회, 특별히 평신도 사역이 열매를 맺고있는 모범이 되는 교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첫 설교를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던 중 캔 가이어 라는 작가가 쓴 영혼의 창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 구절에 감동 받은 저자의 감동이 제게도 느껴졌습니다. 반면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유년 주일학교 때부터 들었던 고리타분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고리타분 ....
그렇습니다, 어느샌가 성경에서 제가 아는 혹은 읽었던 구절을 만날 때의 느낌이 신선하거나 충격적이지 않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변해버린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고리타분하게 변해버린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이 본문을 읽어보니 지난 한해 많이 쓰였던 한국말처럼 그야말로 엽기적인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일 수 있을까? 마태 마가 누가도 모두 기록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힘든 전도 사역으로 지친 제자들과 함께 조용한 곳에서 친교를 나누시기 위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 디베랴 평지로 가실 때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디베랴로 가신다는 소문을 들은 많은 병자들과 구경꾼들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기 위해 예수님 보다 먼저 그곳에 와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여든 병자들을 고치시고 사람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여러 마을에서 따라오면서 여러 날이 지나게 됐는데 날이 저물어 그들이 먹을것이 없어 시장해 하는 것을 예수님이 아셨습니다.
5절에 보니까 예수님이 빌립에게 그후에는 안드레에게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방법을 물으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빌립이나 안드레의 이름은 없고 단지 제자들이 오히려 예수님께 이렇게 요청을 합니다: 어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이 사람들을 마을로 들여보내 쉬고 사먹게 하소서.
오늘 읽은 요한복음에는 요한은 예수님이 먼저 제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신 것과 또한 그것이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 하기 위해 이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 예수님의 질문에 빌립은 그 동네, 벳세다 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 답게, 자신의 경험과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한 200 데나리온 정도가 최소한 필요하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있던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가 군중 속에서 찾아낸 한 어린 소년이 가지고있던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와 이 작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 많은 사람을 먹이는 것은 무리라고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고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한국에서 먹을 것이 귀하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보리 겨를 가는 채에 쳐서 나오는 그 가루를 밥할 때 쪄서 만든 시커먼 색의 보리개떡과 이 소년이 가지고 온 그 보리떡과 의미는 같다고 봅니다 즉 형편없는 맛없는 평범한 음식,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입니다. 가난한 보리떡을 들고 서 있는 소년 이 소년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그가 시장하신 예수님께 먹을 것을 드린 것 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방여인을 본 제자들이 놀라며 예수님께 먹을 것을 드시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33절에,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고 하시고 제자들은 누가 예수님께 먹을 것을 미리 드렸나 의아해 할 때 예수님은 34절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땅에 계시면서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만 하신 예수님, 그리고 그 예수님께 가진 것 모두를 내어놓은 아름다운 사랑의 만남, 그 만남이 이 소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마 이 소년이 TV는 사랑을 싣고 에 나온다면 분명 예수님을 찾을 것입니다. 20년전... 제가 가지고 있는 보리떡 다섯 개 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예수님, 나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게 하신 그 예수님 지금 어디 계세요?
그 반면 디베랴 출신의 빌립- 이 빌립은 예수님이 직접 선택한 제자로 즉시 그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께로 데려온 사람입니다. 또 한사람은 원래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를 만난 후 그의 형 베드로까지 예수께로 데리고 나온 안드레, 두사람은 이 사건 속에서 매우 신앙이 없는 사람으로 즉 예수를 믿지 못하는 아니 믿어도 머리로 계산하고 믿는 200데나리온이나 겨우 작은 물고기 두 마리 정도로만 아는 사람들로 비쳐집니다, 과연 그럴까요?
종종 저도 이런 착각에 빠져 성경을 읽을 때가 많습니다. 에이, 나 라면 안 그랬을 텐데 참 제자라는 사람들이 믿음이 없네 하고 말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나 포도원 일꾼의 비유,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사건등, 성경속에 숨어있는 마치 초등학교때 좋아하던 숨은 그림 찾기처럼 비유속에 감추어진 나의 참 모습과 나의 신앙의 참 얼굴을 볼 때마다 머리를 저으며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야, 이건 다른 사람이야기야,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거야, 나는 저 정도는 최소한 하지 않는 사람이야... 신앙의 자기 합리화 자기 의인화에 앞장서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당장 예수님이 저 밖에 서 계신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제게 예수님께서 오늘 1,2,3부 예배에 나온 모든 사람들을 먹이려면 어떻게 해야겠니, 여 선교회에서 오늘 식사를 준비 못 했다 는 구나... 이렇게 물으시면 저라면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아마 한사람당 최소한 빅멕 하나하고 프렌치 프라이 하고 소다 하나 그야말로 value meal을 사려면 $5불씩x1000 하면 최소한 5000불은 있어야겠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크레딧 카드로 긁을까요?
제가 마음속으로 한 이 이 대답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답입니다 아니 그리고 안드레의 말처럼 누군가 가지고 있던 식어버린 베이글 빵을 5개 가지고 나오면서 예수님 이거 밖에 없습니다 하면 우리는 오늘도 성경에 있는 안드레처럼 이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또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믿음이 없다고 이야기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 반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정신이 없다고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 점이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이 이야기는 첫째, 우리 인간들의 한계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빌립이 말한 200데나리온의 대답이나 안드레의 근심어린 말 모두 우리 인간의 한계를 즉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비록 그것이 생각일 지라도 드러내는 정확하고 솔직한 대답입니다. 인간의 한계, 마치 심리학 초급 1장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원하는 것 만 본다, 사람은 그 자신 이상의 것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한계를 우리의 입으로 빌립과 안드레의 입을 통해서 듣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대답이고 이것을 예수님은 듣고 싶으신 것입니다. 나와 예수님의 사이, 인간과 신의 차이 말입니다.
6절에 보니까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사람을 시험하시고자 특별히 빌립을 시험하시려고 이 질문을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대답을 들으신후 예수님은 아니 내가 그동안 죽은 사람도 살리고 가나 혼인잔치 물을 포도주로도 바꾸고, 어제 몇 사람의 다리도 고치고 했는데 믿음이 적은 자야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 내가 너희 같은 제자들하고 다니다니.... 다른 사람 찾아야겠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6절에 빌립에게 질문을 하실 때 이미 어떻게 하실 것을 생각하셨고 빌립이 어떤 대답을 하실 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안드레에게 서도 마찬가지로 그를 책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바로 그런 인간들을 먹이시려고 우리에게 오신 목자요 떡 이요 생명이요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먹히기 위해, 먹이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읍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특히 두 주전 우리들이 축하했던 예수님 탄생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2장에 보면 동방의 박사들이 헤롯에게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이의 태어날 곳이 어디냐고 묻습니다. 6절에 보니까 구약 미가서의 예언을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햄아 너는 유대 통치자들 가운데서 가장 작지 않다. 네게서 통치자가 나올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일 것이다.
첫 번째는 사람의 한계를 알게 하시려고 물으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의 예수님이심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으로 그리고 사랑의 능력으로.
우리가 사람의 일을 판단할 때 종종 우리는 옳다 그르다 즉 맞다 틀리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판단의 단계를 넘어서는 보다 깊은 표현방법이 있는데 그때는 "답다" 라는 말을 씁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남자의 도리야, 여자는 그래야 해 그게 맞아 그러는 것과, 야 그러고 보니 너 참 사내답다, 참 여자답다, 참 아름답다 ....
저는 이 기적을 바라보며 이 일을 딱 한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이럴 것 같습니다- 정말 예수님답다, 통 크다, 손 크다 아름답다... 예수님은 예수님다운 일을 하셨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제자들은 역시 제자답다 인간 답다 즉 이 일 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예수님다우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말없이, 아무도 책망하지 않으시고 직접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들의 눈앞에서, 왜 입니까? 보고 믿어라 ...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믿어라...
세 번째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하나님이 쓰시면 우리는 한사람의 수준에서 즉시 하나님의 수준으로 변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이 소년은 자기의 점심으로 무엇을 하려고 그러시나 의아하게 생각하며 드렸을 겁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대로 5000명을 먹일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듯이 이 하찮은 것 인간이 가질수 있는 것 그것은 언제나 하찮은 점심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이 소년의 점심 도시락처럼 볼품 없고 보잘것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때는 오늘의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5000명이 아무도, 아무도 단 한 사람의 소년을 빼놓고 점심을 준비하지 않고 예수께 나온 것처럼, 준비 없이 주님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우리 인생들입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수준이기도 합니다. 나의 실력과 돈 과 명예 내가 죽도록 추구한 그 모든 것 알고보면 들의 꽃보다 못하고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는 보리개떡과 같은 것 들 아닙니까?
지난 98년 12월, 저는 제가 믿고 있던 하나님과 목숨을 건 싸움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부터 거의 20년 동안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미국에 와서 무대 장치 나르기, 페인트 칠하기 합창 도와 주기 등으로 바닥부터 쌓아온 저의 음악 활동이 아무런 이유 없이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저에게 배역을 주는 오페라단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콩쿨과 오디션에서 매번 낙방하게 되자 저는 원하지도 않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전업주부, 여기 쓰인 부, 자는 한자의 아비 부를 말합니다. 1년 동안 새벽부터 새벽까지, Full Time Baby-Sitter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의 학력도 나의 경력도 나의 재능도 나의 건강도 나의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 참을 수 가 없었습니다. 나의 앞길을 축복하시라고, 책임지시라고, 떼를 쓰면서, 울면서 기도하고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귀가 안 들리시는지, 안 듣기로 결정 하셨는지, 어디를 가셨는지 말씀하시지 않았고 오히려 기도하던 중에 제가 그동안 목숨보다 제 딸이나 저의 아내 보다 더 사랑하는 것 즉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바로 저의 목소리 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0년을 목숨을 걸고 걸어온 그 길이 한순간 마른 보리떡 5개와 비린내나는 작은 물고기 두 마리의 삶인 것을 깨닫고 그 즉시 제 목소리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지금 드리자.... 이것을 드리자... 이거 받으세요 예수님.... 이것을 도대체 어디에 사용하시겠습니까? 이것이 도대체 누구에게 소용이 있을까요? 그 순간, 하나님은 성령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후로 저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습니다 물론 고통과 함께 말입니다.
저는 아직 보리떡과 작은 물고기를 들고 서있습니다, 마른 떡인 채로 아직도 냄새나는 생선인 채로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도 저의 삶이 점점 다른 사람들과 저의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으로 저를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아직도 그 보리떡과 그 작은 물고기를 든 채로 뉴져지 에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적을 여러분과 같이 체험하기 원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밖에는 이 일을 하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말고는 그 누구도 이 일을 이루실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위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번 믿어 볼 만합니다.
복음, Good News 는 이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우리가 5000명을 먹이는 떡을 만들 수 는 없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의 떡과 물고기를 내놓을 때 예수님은 우리의 적은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큰 일을 위해 쓰실 것입니다.
저는 부족합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저와 함께 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저 혼자서도 할 수 없습니다, 떡을 5000명에게 나누어주고, 남은 것을 12광주리에 담았던 예수님의 12 제자들처럼 성도 여러분과 함께 일을 하고 싶습니다. 예수와 함께 우리의 가진 것을 매일 매일 겸손하게 예수께 드리고 충성스럽게 그의 뒤를 따라 예수를 닮아갈 때 분명 우리의 눈으로 5000명이 이 자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떡을 나누는 그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보리떡 5개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이것으로 예수님은 5000명을 먹이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예수님은 이 정도면 충분하십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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