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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3. 워싱톤서(29)/강림절 넷째주일 - 조영진 목사

로마서 13:8-14

이 시대는 참으로 깨어날 때입니다. 깨어서 살아갈 때입니다.
깨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깨어난 사람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로마서 13장의 본문 말씀을 대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성 어거스틴입니다. 어거스틴은 한때 탕아로 살았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에도 아랑곳없이 방탕한 인생을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기도가 헛되지 않아 그는 교회도 다니고 성경도 읽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옛사람, 옛생활의 유혹은 부단히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는 탄식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언제까지 내일 내일 할 것입니까? 왜 지금은 안됩니까? 왜 나의 더러운 생활을 이 순간에 깨끗이 끝내지 못합니까?" 그때 이웃집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소년인지, 소녀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음성은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는 소리였습니다. 어거스틴은 급히 친구가 앉았던 장소로 가서 사도 바울의 편지를 펼치고 제일 먼저 눈길이 닿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로마서 13:13 이하의 말씀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은 바로 어거스틴의 마음에 광명한 확신의 빛을 안겨주었습니다. 모든 의심의 어두움은 사라졌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탕아 어거스틴은 성자 어거스틴으로 새롭게 태어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21세기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 도전합니다. 깨우침의 멧세지로 다가옵니다. 이 때를 좀 알라고. 이제는 깰 때가 되었다고. 그렇습니다. 이제는 깰 때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정신 차릴 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깨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깨어난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I.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대를 보는 눈이 깨어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 13:11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되었으니 ..." 무슨 말씀입니까? 이 시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때가 어떤 때인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때를 안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를 알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눈, 어떤 기준으로 이 시대를 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내 눈으로 보아서 괜찮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내 생각, 내 기준으로 세상을, 시대를 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 눈,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와 계획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눈으로 세상을, 시대를 바라보기에 우리는 비판 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자라는 시대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은 좋은 예입니다. 많은 사람이 평안하다. 괜찮다고 말할 때, 예언자들은 시대를 염려하고 백성들을 깨우쳤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뜻 위에서 시대를, 역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땅,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기술 문명의 끝없는 발전, 인터넷시대, 지구촌화 되어가는 좁은 세상, 우주를 왕복하는 시대, 생활의 편리함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오늘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가 과연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습니까? 이 나라,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과학기술 문명의 진보만큼 인간의 도덕성도 놀라운 진보를 보이고 있습니까? 그 과학기술을 바로 취급하고 관리할만한 내적인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오히려 이 시대는 밤이 깊은 시대가 아닙니까? Post-Modern 사회로 삶을 지탱해 주는 절대가치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오늘이 아닙니까?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 옳다면 내게 옳은 것일뿐, 그 옳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는 없다는 상대가치 만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아닙니까?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선인지, 그 판단의 기초가 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 시대를 바로 읽을 수 있는 눈이 깨어나야 합니다. 그저 잘되어 간다는 막연한 기대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서 이 시대를 보는 안목이 깨어나야 합니다. 깨어난 사람, 의식이 있는 사람은 시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의 현실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읽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II.

둘째로 깨어나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입니다. 종말 의식이라고도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13:11에서 이제는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여기서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되는 한사람, 한사람의 구원이 아닙니다. 여기서 구원은 역사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세상 마지막에 이루어 질 역사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서 임하게 될 새하늘과 새땅의 날을 말합니다.

(1)그리스도의 교회는 고백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 역사 속에 오셨고, 부활하셔서 오늘도 살아계신 그 분은 성령을 통하여 지금 오고 계시고, 그리고 역사의 마지막에 다시 오신다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역사는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는 완성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는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복해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언들은 바로 기독교 신앙의 역사관, 역사이해와 직결됩니다. 여러분께서는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끝없는 시간의 반복입니까?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어서 어디로 흘러갑니까?

기독교 신앙은 역사를 창조, 시작이라는 점과 종말이라는 점을 연결하는 직선으로 이해합니다. 역사의 시작이 있었던 것처럼 역사의 마지막이 있다고 믿습니다. 역사를 시작하신 알파의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매듭지으시는 오메가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바로 역사의 중심이 되며,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역사는 종말을, 완성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 종말은 언제 다가올 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쓴 후로 19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니 바울 당시보다 주님 오시는 그 날이 훨씬 가까워진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역사의 유한성, 종말에 대한 의식이 깨어나야 합니다.

(2)그러나 우리는 조금 범위를 좁혀서 생각해 보아도 깨어나야 합니다. 역사의 종말이 너무 크다면, 내 인생의 종말을 생각해서라도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분명히 이 땅 위에서 유한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누가 뭐라고해도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이세상 어느 누구도 죽음을 면제 받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천년, 만년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한순간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죽음이 언제 찾아올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고없이, 불현 듯 찾아오는 무례한 손님이 바로 죽음입니다. 저는 목회자로 살아 오면서 낮예배가 끝난 후 함께 손을 마주 잡았던 교우께서 저녁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한순간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보장되지 않은 시간들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죽음은 끝입니까? 죽음은 그저 무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넘어서면 우리는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걸어온 삶에 대한 결산을 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진정한 성공과 실패가 그날에 판가름됩니다. 내게 맡겨주신 시간과 건강, 능력과 재물로 어떻게 살았는지 보고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삶의 사명에 얼마나 충성했는지 결산하게 됩니다.

피할 수 없는 죽음, 이 결산의 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께서는 얼마나 의식하고 계십니까? 이 종말 의식이 여러분의 삶 속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나는 아직 젊으니까, 나는 아직 건강하니까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남의 일이라고 치부한 채 오늘을 살아가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장례예배 때 제가 자주 인용하는 독일 민요의 가사가 있습니다: "나는 가고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살고 있다. 그러나 내 목숨의 길이를 모른다. 나는 죽는다. 그러나 죽음이 언제 찾아올 지 모른다. 그런데도 태평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 놀란다."

여러분, 놀랠 일입니다. 아니 놀라야 합니다. 깨어나야 합니다. 역사의 종말, 그리고 내 인생의 종말에 대한 의식이 깨어나야 합니다. 성경은 엄숙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지만,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 파티하는 집에 있다고.

III.

우리의 인생이 깨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 시대를 보는 눈이 깨어나야 합니다. 역사의, 인생의 종말에 대한 의식이 깨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깨어날 때,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세 번째 깨어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인생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어제와는 다른 인생, 새로운 인생으로 깨어나는 것입니다. 깨어났다면 우리 인생도 달라져야 합니다. 아니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 참으로 깨어난 인생이 됩니다.

두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첫째로 우리는 욕망에 매어사는 인생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오늘 본문 13:12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표준새번역)."

여러 가지 어두움에 속한 일을 벗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욕망에 매어사는 인생, 정욕의 만족을 목표로 추구하는 인생을 뜻합니다. 빛의 자녀와 어두움의 자녀는 여기에서 구분 되어집니다. 어두움의 자녀는 자신의 뜻, 자신의 욕망을 목자로 삼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는 자신의 뜻, 자신의 욕망을 빛되신 주님의 뜻에 따라 다스리고 굴복시켜가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술취함, 음행, 방탕, 싸움, 시기 다 무엇을 말합니까? 고삐가 풀어진 인생입니다. 다스림을 잃어버린 삶, 인생의 브레이크가 고장난 삶의 모습들입니다.

이 시대를 보는 눈이 깨어났다면, 역사와 인생의 유한성에 대한 지각이 깨어났다면, 우리는 욕망에 매여 고귀한 인생을 낭비할 수 없습니다. 욕망에 질질 끌려가는 어두움의 인생으로 귀한 시간, 얼마나 주어질 지 모르는 이 유한한 시간을 허송할 수는 없습니다. 정욕에 매인 인생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참으로 깨어난 사람다운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2)둘째로 좀 더 적극적인 삶의 모습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깨어난 인생,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13:8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루었습니다.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표준새번역)."

여러분, 어둠의 인생, 정욕에 매인 삶에서 돌이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살아야 할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하나님 앞에 깨어난 인생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사랑하는 삶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천사의 말을 해도 울리는 징이나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해도 그들 삶 속에서 사랑이, 나눔이 없다면, 그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깨어나셨습니까? 사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나누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이야말로 율법의 완성입니다. 참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간음하겠습니까? 어떻게 도둑질하고, 거짓 증거하겠습니까? 어떻게 이웃집의 것을 탐내겠습니까?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이 모든 부도덕하고 건강치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은 인생들을 세웁니다. 격려해 줍니다. 그리고 이 삭막한 세상을 살맛나는 세상으로 바꾸어 줍니다. 특별히 이 성탄의 계절이야말로 사랑의 삶을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지난 12월15일자 중앙일보에 "나를 감동시켰던 선물"이란 제목 아래 실렸던 한 글이 있었습니다. 박성삼 화가라는 분이 쓰신 글인데 제목은 "5천불짜리 크레딧카드 3장"입니다.

연말이면 으레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지금부터 8년전 아내와 6살난 아들을 데리고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 친구들은 있었지만 남의 사정을 돌아 볼만큼 여유있는 친구는 없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매우 힘들었다. 이곳 저곳 정착할 곳을 찾아 다니다, 뉴포트 비치의 패션 아일랜드에 어렵게 카트를 하나 빌려 그야말로 거리의 화가로 하루하루를 버텨가는데, 어느날 매니저가 갤러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기에 다급한 마음에 선뜻 '예스'를 해놓고 보니 큰 일이 생겼다. 작품도 채워 넣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큰 걱정은 프레임, 실내장식, 페인트, 간판 등을 꾸밀만한 비용이 만만치가 않은 것을 계산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때 마침 앞 가게에 40세 가량된 시계점을 운영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게되어 그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리고 며칠 후 그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상자 하나를 건네주기에 장난감이려니 하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집에 와 열어 본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스 안에는 5,000달러짜리 크레딧카드 3장이 함께 들어있는 것이었다. 필요한 만큼 부담없이 사용하라는 짧은 메모도 잊지 않았다. 그는 나를 너무도 감동시켰다. 그 이후 우리는 친형제 처럼 친해져서 한국에서 치른 딸아이 결혼식에도 참석하는 등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사이가 되었다. 누구도 선뜻 할 수 없는 일을 그리 잘알지도 못할 때인데, 나를 믿고 도와준 미스터 아델에게 항상 감사하며 해마다 이때쯤이면 특히 내 마음 속에 비밀스럽게 묻어둔 그의 사랑의 선물과 훈훈한 마음을 느끼곤 한다. 아직은 아델과 같은 사람이 있기에 그리 야박하지만은 않은, 정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인 것 같다.

금년에 우리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연쇄 테러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고, 펜타곤이 불타는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안겨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험은 미국을 그리고 우리 인생을 다시한번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깨어남의 필요성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인생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 깨우쳐 주었습니다. 한순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 그리고 죽음은 어느 순간에도 우리를 찾아오는 실재임을 체득케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것, 끝까지 중요한 것은 사랑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죽어가면서 Savings Account 걱정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마지막 전화를 걸어서 집문서 염려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마지막 남긴 말은 바로 'I Love You'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깨어나야 합니다. 이제는 깨어날 때입니다. 이 시대를 보는 눈이 깨어나야 합니다. 역사와 우리 인생의 종말에 대한 의식이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우리 인생이, 삶의 모습이 깨어나야 합니다. 어두움을 벗어버리고 사랑의 삶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덥느니라(베드로전서 4:7-8)."

이제는 깨어날 때입니다. 오늘 깨어나지 않으시면, 언제 깨어나시겠습니까? 지금 깨어나지 않으시면 언제 깨어나시겠습니까?

* 나눔과 적용을 위한 질문

1. 나는 오늘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2. 사랑의 삶을 위하여 내가 지금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 금년 한 해 속에서 믿음과 삶은 얼마나 깨어났습니까? 믿음의 진보와 삶의 변화를 함께 나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