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12.16. 워싱톤서(28)/강림절 셋째주일 - 조영진 목사
그리스도인과 국가
로마서 13:1-7
그리스도인은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태도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적용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과 국가가 갈등을 빚을 때 어떻게 대응하며 살아야 합니까?
|
여러 해 전입니다. 한국에서 유신 독재 체제로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짓눌림을 당할 때, 신문에 한 논쟁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기독교 인사와 체제를 받아들이는 신학자 간에 빚어진 논쟁이었습니다. 그때 유신 체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된다고 주장한 사람이 성서적인 근거로 제시한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생각하려는 로마서 13장 1절 이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복종해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은 로마서 13장 4절 이하의 말씀을 들고, "과연 유신 체제가 하나님의 도구 노릇을 하고 있는가"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논리라면, "모든 독재자들, 심지어 북한의 김일성에게도 복종해야 되는가"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12:1,2절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사도 바울은 권고하였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은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분별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I.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로마서 13:1-7의 말씀은 교회 역사에서 수많은 논란을 가져온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왕정시대에는 왕권신수설- 왕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주장 -로 나타나 독재를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고, 또 많은 나라와 정권들이 국민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논리로 쓰여지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멧세지를 살펴보십시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력에 복종할 것을 권고합니다(13:1-2). 이 말씀의 의미를 살펴 보기 전에 우리는 먼저 사도 바울이 이같은 멧세지를 전하게 되는 배경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는 자신들을 다스리고 있는 로마 제국에 대해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갖고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특별히 열혈당원들은, 무력을 써서라도 로마 정부를 무너뜨려야 된다고 생각해서 테러와 폭력적인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사도 바울은 권세에 복종하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위험스러웠던 것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니 우리는 로마 정부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가능성입니다.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황제가 아닌 다른 왕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사도행전 17:7)이라고 불려졌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사도 바울은 오늘 그들을 다스리고 있는 로마 제국에 복종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복종을 말하는 이유, 그 동기를 우리는 본문 말씀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첫 번째 동기는 권세는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이미 있는 권세도 하나님께서 세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역사의 주인이시라고. 이 역사의 흥망성쇠는 바로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볼 때 권력, 권세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또 권력을 잡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우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대통령이 되는 것도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셔야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대하여 우리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히틀러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일까? 역사상 수 없는 인명의 희생과 포악을 저지른 권력자들, 그들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인가? 결코 대답이 쉽지 않은 물음입니다.
이 물음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 특별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문제를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름답고 선한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기쁘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시지만,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야기는 원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이 아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따먹을 수도 있고 안 따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따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지 않지만,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십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선택을 그만큼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독재자와 폭군들을 세우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 역사 속에서 그들이 등장하게 될 때, 그대로 제거해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허용하시며, 기다리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 권력에 복종해야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13:4의 말씀입니다; "통치자는 여러분 각자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각자가 나쁜 일을 저지를 때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나쁜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일을 집행하는 사람입니다(표준새번역)."
권력자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그들은 바로 이 세상의 악을 징계하고 선을 세워가는 하나님의 도구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아무리 독재자라해도 무정부보다는 낫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질서가 유지되고, 서로의 권익이 보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독재자의 횡포가 극에 달하면, 차라리 무정부 상태가 낫다고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권력자들은 악을 징계함으로 질서를 세우고 선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도구들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복종해야 된다고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3) 세 번째로 우리 모두가 권력에 복종해야 되는 이유는 우리 양심 때문입니다. 13:5을 보십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노를 두려워해서 만이 아니라 양심을 생각해서라도 복종해야 합니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가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복종하지 않으면 벌을 받기 때문이라는 이 차원을 그리스도인들은 넘어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옳은 길을 걸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양심 때문에 우리는 복종해야 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다스리는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된다고 오늘 성경 말씀은 일깨워 줍니다. 사도 바울은 권세자들에게 불순종하는 것은 이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까지 이야기합니다. 비록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주님으로 모시지만 권세잡은 사람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교우 여러분, 권세자들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 말씀을 받아들일 때,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의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법은 한 나라의 백성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규범입니다. 그러므로 질서를 세워가는 통치자들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바로 법을 지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만, 미국만큼 법이 엄정하게 집행되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인 동포들이, 물론 그리스도인도 포함해서, 갖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살던 이전의 버릇을 그대로 가지고 태평양을 건너온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법을 지키는 면에서 보면 우리가 두고 온 땅 한국은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은 아직도 법치보다는 인치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성실히 법을 지키는 사람이 어리석게 여겨지고, 요리 조리 수단을 부려서 법망을 피해가며 실속을 차리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풍토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요즈음 한국에서 들려오는 각종 게이트, 권력형 비리의 소식은 오늘 한국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거기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까지 끼어있는 모습은 정말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한국이, 아니 Korean-American들이 참으로 세계 속에서 존경을 받으려면 적어도 법을 지키는 문제에서는 철저해야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성실히 법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둘째로 권세자에게 복종하는 삶으로 사도 바울이 권하는 것은 세금을 잘 내라는 것입니다. 13:7을 보십시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십시오. 조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해야 할 이는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이는 존경하십시오(표준새번역)."
역사를 보아도 그렇고, 제 자신을 보아도 그렇고 세금 내는 것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미국사람들은 그래도 세금을 정직하게 내려고 많이 노력합니다만, 재미있는 농담이 있습니다. 미국 국기가 빨간색, 하얀색, 파란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미국사람들이 세금을 낼 때 그 얼굴색깔이 세 가지 색깔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세금 이야기를 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세금 내라는 통지를 받으면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세금을 낼 때는 파랗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리스도인은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정직히 세금을 내야 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금을 줄이는 절세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탈세는 하나님 앞에서 죄악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금 문제가 나왔을 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직함은 세금 납부에서도 고백되어야 합니다. 저 역시 부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만, 저의 세금 보고를 준비해 주는 회계사께서 그래도 열심히 낸다는 말을 해주었기에 이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L.A.에서 일어났던 4.29 폭동을 기억합니다. 그때 많은 동포 상인들이 피해를 입어서 미국정부의 보상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동포들은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보상액이 세금보고에 기준해서 결정되었는데, 그동안 세금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은 정직하게 세금 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세금 보고에서도 고백되어야 합니다.
(3) 또 한가지 그리스도인과 국가, 권세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를 위하여, 권력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신약성서 여러 곳에서 우리는 이같은 권고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써보낸 편지 속에서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함이니라(디모데전서 2:1-2)."
특별히 오늘 이 시점은 이 땅의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앞두고 종교지도자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종교 지도자들이 부시 대통령에게 어떻게 도와 드릴 수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대통령은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참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III.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법을 지키고, 정직하게 세금을 내며 또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아직도 남아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권력자들이 불의를 행할 때, 나라의 법이 우리의 신앙의 포기를 요청할 때, 그래도 복종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사실 성경은 많은 불복종의 예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보면, 애굽왕 바로가 산파들에게 이스라엘 사람의 집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죽이라고 명령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의 명령 앞에서도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도 기도하지 말라는 왕의 명령에 불순종했다가 사자 굴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대제사장과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위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명했을 때, 사도들은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사도행전 4:19)."
역사를 보아도 수많은 개혁 운동들은 당시의 권력자들에 대한 불순종에서 시작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언제, 어떻게 우리는 불복종 할 수 있습니까? 몇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충성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는 나라의 법을 지키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결코 궁극적인 충성의 대상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중 국적자입니다. 이 나라 백성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유한한 이 땅의 백성인 동시에 영원한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국가에 대한 복종과 하나님께 대한 복종이 충돌을 일으킬 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복종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궁극적인 충성 때문에 그들의 생명을 순교의 제단에 바쳤습니다.
(2) 둘째로 오늘 이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나라가, 혹은 지도자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도구들이 되게 하는데 참여하는 중요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투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옛날 역사의 변혁은 혁명이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무혈 혁명은 투표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열심히 투표에 참여해야 합니다. 통치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정의로운 뜻을 이루는 도구로서 쓰여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투표로 표시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 이 시대 속에서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책무입니다.
(3) 셋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의 법이나 권력자들에게 저항할 때, 그 방법 역시 적절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목적이 훌륭하면 방법은 아무래도 좋다, 폭력을 써서라도 저항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적인 저항의 모습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좋은 예입니다. 그분은 참으로 억울하게 당하셨습니다. 그분이 마음만 먹으신다면, 재판을, 로마의 권력자들을 뒤집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묵묵히 당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무력하게 당시의 권세자들에게 복종하셨습니다. 죽으시면서 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저항도 이 모습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연약하기 이를 데 없어 보입니다. 그저 무기력하게 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저항이야말로 참으로 powerful하고 혁명적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 때문입니다. 정의롭게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의인의 흘린 피와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저항하다가 당할 수 있습니다. 믿질 수 있습니다. 손해볼 수 있습니다. 무력하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인생의 진정한 성공과 실패는 주님 앞에서 판가름된다는 사실을. 비록 우리가 저항하다가 열매도 보지 못하고 죽어간다 해도 우리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당대에 꽃피우지 못한다해서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어가시는 그 날, 그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해 전 Alabama주의 Montgomery시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세미나에 참석차 갔지만, 제게 있는 또 한가지 관심은 민권운동의 발화지를 가보는데 있었습니다. Martin Luther King 목사님이 섬기던 교회도 보고, 민권운동의 불길을 당긴 Rosa Parks 여인이 백인에게 자리 양보를 거절했던 곳도 보았습니다.
당시에 흑인들은 버스 안에서 백인들에게 지정된 좌석이 비어 있어도 앉을 수 없었습니다. 이 관례, 이 규정에 저항해서 한 여인이 백인의 자리에 앉은 데서, 그리고 백인이 들어 왔을 때, 자리의 양보를 거절한데서 민권운동의 불길은 타올랐습니다. 이 조그만 사건이 흑인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일으키고 결국은 버스에서, 아니 식당과 화장실 등 여러 곳에 붙어있던 "White Only"라는 차별을 철폐하는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King 목사님이 주도한 민권운동은 또한 비폭력저항운동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때리면 맞았습니다. 가두면 갇혔습니다. 폭력을 거부하고 사랑을 앞세웠습니다. King 목사님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설교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견디는 우리의 힘으로 고통을 가하는 당신들의 힘에 대항할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육체적인 힘에 우리의 영혼의 힘으로 대결할 것이다. 무슨 짓이든 우리에게 마음대로 하여라.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을 사랑하리라. 우리는 극히 올바른 양심 때문에 당신들의 부정한 법에 복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악과 협력하지 않는 것은 곧 선과 협력하는 것과 똑같이 도덕적인 책임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감옥에 집어 넣어라.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을 사랑하리라. 우리의 집을 폭파하고 우리의 자녀들을 위협하여라.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을 사랑하리라. 가면을 쓴 폭도들을 한밤중에 보내어 우리들을 때려 반쯤 죽여 보아라.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을 사랑하리라. 그러나 잊지 말라. 고통을 참는 우리의 힘으로 마침내 우리는 당신들을 쓰러뜨리고 말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자유를 쟁취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당신들 마음과 양심에 호소하여 당신들을 또한 쟁취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중으로 승리를 거둘 것이다."
참으로 귀한 멧세지입니다. 저항하면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고귀한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권력이 하나님 노릇을 하면, 저항해야 합니다. 저항의 방법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입니다. 억울하게 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그리고 마침내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승리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역사를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 나눔과 적용을 위한 물음
1. 그리스도인과 국가와의 관계를 정리해 보십시다. 우리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2. 법을 지키는 삶에서 참으로 어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힘듭니까?
3.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때 불복종해야 합니까? 어떻게 불복종할 수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