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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9. 워싱톤서(27) - 조영진 목사
섬기며 사랑하며
로마서 12:3-21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섬기며 어떻게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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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저는 12장부터 시작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지침이 되는 12:1,2절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분별한 하나님의 뜻에 삶을 걸어야 합니다.
오늘부터는 이같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가 삶의 현장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 될 수 있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집사님께서 봉독해 주신 12:3-21의 본문 말씀은 특별히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우리 모두에게 귀한 일깨움을 안겨줍니다.
I.
먼저 서론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무엇입니까? 왜 교회가 필요합니까? 교우 여러분께서는 어떤 목적, 어떤 동기를 갖고 교회에 나오십니까?
(1) 무엇보다도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게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조직한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세우셨다는 점에서 세상의 다른 모임과는 구별되어 집니다. 교회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후,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성령의 강림은 교회를 태어나게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Creation of the Holy Spirit, 성령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그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성경의 증언도 이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셨고 또한 오늘도 이끌어 가십니다. 교회는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움직여져 갈 때, 진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대신 인간의 계획, 인간의 수단과 방법, 계산이 주인노릇을 하게 되면 교회는 이미 타락의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2)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사람답게 살고, 이 세상이 참된 세상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함께 모여 예배하고, 훈련받고, 교제합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적인 사람이 되고, 그리고 그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훈련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훈련 받고 나가서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그렇게 살라고 교회를 세우신 것 아닙니까?
이같은 하나님의 목적에서 교회를 이해하면 교회생활은 우리 삶의 한 영역(one among many)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떠받쳐 주는 기초요, 근거가 됩니다. 즉 교회생활이 건강하고 바로 서면, 우리의 모든 생활, 가정도, 직장도, 사회생활도 건강하게 바로 세워지게 됩니다. 반면에 교회생활이 시원치 않게 되면, 다른 생활도 시원치 않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중요한 뜻입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뛰어 넘으면서, bypass하면서 교회와는 관계 없이도 세상 속에서 믿음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떠나서 나 혼자서도 믿음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된 이면에는 교회의 책임이 큽니다.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우치고, 바로 살아가는 훈련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를 bypass하면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를 bypass하기 때문에 오히려 교회는 더욱 약해지고 제 구실을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일그러진 교회이지만, 뛰어들어서 온전한 교회의 모습을 다시 찾는데 참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서적인 원리는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의 훈련장입니다. 교회 안에서 바로 훈련을 받으면, 세상에 나가서도, 가정으로 돌아가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세상 속에 나아가서도, 또 이 다음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제대로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교회 안에서 진정한 사귐과 교제, 사랑을 Practise, 실천하지 못한다면, 세상 속에서도, 또 훗날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그 교제와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교회에서 훈련을 받고 나아가서 제대로 살면, 이 세상은 점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으로 바뀌어져 갈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위에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는 역사의 변혁이 이루어져 갈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만큼 중요한 곳입니다. 교회는 이만큼 중요한 사명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교회생활은 이만큼 내 인생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하나님께서 할 일이 없으셔서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우리 인생들이 무시해도 좋을 만큼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계획을 이해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II.
이제 이같은 전제 위에서 오늘의 말씀을 살펴보십시다. 먼저 사도 바울은 12:5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지체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섬기는 삶을 살아갈 때 필요한 권면의 말씀을 12:3-11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를 향해 권면합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12:3)."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자신을 바로 알라는 말씀입니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로 주제 파악을 잘하라는 말씀입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말고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는 것을 가로막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면, 하나는 과대망상증이고, 다른 하나는 열등감입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 생각하는 것이 과대망상증이고, 지나치게 낮추어 생각하는 것이 열등감입니다. 이 두 가지 태도 모두 자신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자신의 능력, 자신의 그릇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둘째로 사도 바울은 몸에 다양한 지체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섬기는 사역도 다양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12:4 이하를 보십시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교우들, 다양한 지체가 있습니다. 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가는 중요한 모습입니다.
여러분, 성숙한 부부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용납하는 부부입니다. 성숙한 부부들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위협의 요인(threat)으로 여기지 않고, 두 사람의 결혼을 굳게 세워주는 strength, 강점으로 활용합니다. 마찬가지로 성숙한 교회는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사역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더욱 굳게 세워갑니다. 왜 당신은 나와 같지 않느냐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나와 같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라고 정죄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사역한마당을 가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우리 교회 안에도 50여 개의 다양한 사역들이 있습니다. 이 다양한 사역들이 저희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교회되게 이끌어갑니다. 모두가 다 필요한 사역들입니다. 내 사역만이 중요하고, 다른 사역은 덜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우리 몸에서 눈과 귀, 코 모든 지체들이 다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각자 맡겨진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갑니다. 이 다양성을 끌어안는 포용의 마음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기는 삶에서 중요한 마음가짐입니다.
(3) 셋째로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에 따라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12:6-8을 보면 일곱 가지 은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언, 섬김, 가르침, 권위, 구제, 다스리심, 긍휼을 베풂 등인데 성경에는 이외에도 많은 다른 은사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12장에 나타나있는 방언이라든지, 병고침이라든지, 지식의 말씀, 분별함, 방언의 통역, 능력 행함 등 여러 가지입니다. 이 모든 은사들은 우리의 유익함을 위하여, 또 교회를 섬기고 세워가기 위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바로 알기 위하여 깨달아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다 은사를 주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은사가 무엇인지, 내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근자에 이르러 많은 교회들이 은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회의 사역도 은사에 따라 헌신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교회를 섬길 때 은사에 따라 사역하게 되면, 그만큼 열매도 풍성하고 헌신하는 사람도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301 "섬김의 삶"을 통하여 은사를 발견하고 사역을 준비하도록 안내해 드립니다. 지난주 이 클래스에서 자기 이름을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손으로 써본 적이 있습니다. 오른 손을 쓰는 사람은 왼손으로, 왼손으로 쓰는 사람은 오른 손으로 썼는데, 쓰는 것인지 그리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얻게된 결론이 있습니다. 쓰지 않는 손으로 이름을 쓰면 시간과 노력을 훨씬 많이 들이는데도, 부자연스럽고 또 써놓은 것도 신통치 못합니다. 받은 은사와 전혀 관계없는 사역에서 일하다가 보면 이같은 결과를 보게도 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각자 받은 은사에 따라 헌신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은사에 따라 사역하는 많은 모습들을 뵙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새교우들을 환영하는 바나바 사역에서 열심히 하실 뿐 아니라, 또 효율적으로 사역을 하십니다. 중보기도 사역에서도 기쁜 마음으로 헌신하시는 모습을 뵙게 됩니다. 속회사역에서 속장의 직분을 감당하는데도 은사에 따라 기쁘게 사역하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은사에 따라 사역하면 마지못해서 부담스럽게 섬기시는 모습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역은 은사를 깨닫고, 그 은사에 따라 헌신하는 것이 적절하고도 중요합니다.
III.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다양한 지체로 은사에 따라 섬길 것을 권고한 사도 바울은 교회를 섬기는 이 믿음의 길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또 한가지를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 줍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 안에서, 사랑의 마음을 안고 섬기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에 의하면,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공허한 이야기가 됩니다. 모든 비밀,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9-21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몇 가지로 요약해 줍니다.
(1) 첫째는 12:9의 말씀처럼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꾸밈도, 악한 동기가 게재되어서는 안됩니다. 사실 참된 사랑에는 거짓이 깃들 여지가 없습니다. 사랑이란 진실할 때 참 사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과 꾸밈이 있는 사랑은 사랑의 겉모습은 있을지 모르지만, 사랑일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 아니 사랑은 꾸밈과 거짓을 배격합니다. 위장된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2) 그리고 사랑은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 삶이어야 합니다. 12:10, 13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사랑한다는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행동, 삶으로 고백될 때 진정한 사랑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입으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고백이 동반하는 희생, 자기를 잘라서 주는 이 희생에는 무관심하고, 인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찬송하다가 "형제를 사랑합니다. 자매를 사랑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는 가사가 나올 때, 저는 가슴이 뜨끔합니다. 과연 내 가슴 속에 진정 사랑이 있는지, 이 사랑이 요청하는 희생의 각오가 있는지 돌이켜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사에 있으니 그냥 따라 부른다면, 이것은 생각없이 부르는 것입니다. 아니 너무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니면 사랑을 입술의 움직임으로만 생각하는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좀 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지극히 적은 것부터 행동으로 고백되어야 합니다. 말로만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3) 세 번째로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 주님께서 권고하시는 사랑의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폭의 문제입니다. 너희를 핍박하고, 대적하고, 아픔을 주는 사람과도 평화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고민스러운 문제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사랑해야 합니다. 악을 이기는 길은 선밖에 없음을 우리는 압니다. 왜냐하면 악을 악으로 이기려면 그 사람보다 더 악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악해지면 그 사람은 가만히 있습니까? 나보다 더 악하게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악을 악으로 이기려면 끝없는 보복의 악순환만을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분명히 악을 이기는 것은 선입니다. 대적하는 사람을 이기는 길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대상에서 무한하십니다. 선인도 악인도, 의인도 죄인도 다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지와 힘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도 바울이 12:12에서 권고하는 것처럼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소망을 안고 사랑 안에 굳게 서야합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기 위해서 평화를 구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은 청지기 주일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 재물을 주인되시는 주님께 새롭게 드려 헌신하는 주일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다양한 교우들, 다양한 사역들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살피면서, 자신에게 임한 은사를 기억하면서 봉헌에, 사역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섬기는 삶입니다. 또한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선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 사랑을 훈련하고 실천함으로서 가정에서, 세상에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준비를 쌓아갈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사랑, 말뿐이 아닌 행동하는 사랑 그리고 대적하는 사람까지도 끌어않는 이 사랑을 배워 갈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크리스챤 타임스라는 신문에 Jimmy Carter 대통령을 방문한 한 기자의 글이 소개된 적이 있는데, 아마도 카터 전대통령 만큼 자신이 받은 은사, 특히 가르침의 은사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Atlanta에서 세시간 정도 떨어진 Plains라는 작은 농촌마을은 전체 인구가 700여명 밖에 안되지만, 매주일에는 많은 외부 사람들이 카터 전대통령이 가르치는 장년주일학교에 참석하기 위하여 이 마을을 방문합니다. 기자가 방문했던 10월 28일 주일에도 300여 명이 가득히 교실을 메웠습니다. 카터 대통령이 입장할 때 박수치지 말라는 사전 광고가 있었는데 카터 대통령이 입장하자 여기 저기서 박수를 쳤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이들을 제지한 후, 최근 니카라과에 다녀온 근황을 말하고, 믿음이라는 주제를 놓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믿음이란 삶 자체임을 강조 한 후, 요한1서 4:8, 마태복음 25장의 최후의 심판의 비유를 봉독했습니다. 그리고는 지금 예수님께서 Plains에 오신다면, 냉장고를 열어서 음식도 드리고 집으로도 모시겠지만,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목마르고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갇힌 사람들을 주님께 하듯 사랑하고 봉사해야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떠난 후에 더 존경받고있는 대통령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Time 잡지는 카터 대통령을 "The only President who used White House as the stepping stone"(백악관을 디딤돌로 사용했던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대통령이 최고인 줄 알지만, 그분은 대통령직을 발판 삼아 더 고귀한 삶을 추구한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주일학교에 참석했던 기자는 그분이 들려준 마지막 말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우리에게 이웃을 위한 사랑과 봉사를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 명령대로 살았는지에 대한 심판이 뒤따를 것입니다."
* 적용과 질문을 위한 물음
1. 우리 교회를 통하여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어떤 훈련을 받았습니까? 어떤 훈련이 내 가정과 세상에의 삶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2. 오늘 내가 헌신하고 있는 사역은 무엇입니까? 그 사역은 내가 받은 은사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3. 나는 오늘 교회 안에서 얼마나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사랑의 폭을 넓혀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시작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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