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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 워싱톤서(26) - 조영진 목사
거룩한 산 제물
로마서 12:1-2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믿음과 삶, 교회와 윤리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삶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땅히 드려야 하는 진정한 예배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거룩한 제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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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속에는 사도 바울이 써 보낸 편지가 13권이 있습니다. 각 편지마다 특징들이 있습니다만, 한가지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의 편지들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단순한 이론이나 설명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그의 편지는 복음의 내용을 밝히는 부분도 있지만, 그와 함께 이같은 믿음을 간직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권고와 일깨움이 담겨져 있습니다. 교회와 윤리 혹은 믿음과 삶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로마서 역시 이러한 균형을 지니고 있습니다. 1장-11장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외친 사도 바울은 12장부터는 이같은 복음을 믿는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믿는 것과 사는 것이 따로 따로 분리될 수는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믿는다면, 그 믿음대로 살아야함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과 삶을 연결시켜 주는 단어가 바로 "그러므로"라는 말입니다. 1장-11장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임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밝힌 사도 바울은 이런 은혜를 받았다면, 이런 구원의 복음에 참여했다면, "그러므로" 12장 이후에 기록된 삶을 살아갈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이러한 사실을 좀 더 풀어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나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12장 이전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맛보고 체험하였다면, "그러므로" 그 사랑에 응답하는 삶, 그 사랑에 감사하는 새로운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I.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로마서 12:1,2의 말씀은 바로 12장-15장에 기록된 실천편, 혹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가르침의 서론이면서 또한 결론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권고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 세상의 풍조나 가치관이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인생,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우리는 "성도"라고 부릅니다. 거룩할 "성(聖)"자에 무리 "도(徒)"자를 사용합니다. 거룩한 무리,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거룩하다는 말은 무슨 뜻을 갖습니까? 그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속에서 다른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이 다른 인생을 살아가라는 부르심에 대하여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꼭 그렇게 티를 내어야 하는가? 좋은 것이 좋다고 둥글 둥글 섞여서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은가?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입니까?
오늘 이 시대에, 미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핍박은 예수 믿기에 목숨을 잃어버리는 옛날의 그런 핍박은 아닙니다. 오늘의 핍박은 세상문화와 가치관에의 동화를 요청하는 다수의 말없는 압력입니다. 좁은 길을 포기하고 넓은 길을 걷자는 유혹입니다. 고독한 길 걷지 말고 많은 사람이 걷는 길을 가자는 유혹과 압력입니다.
여러분, 죽은 물고기는 물에 떠밀려 내려갑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늘의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잃어가는 것은 복음의 내용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이 말씀을 잊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패한 가운데서 더욱 필요하고, 더욱 간직해야되는 소금의 맛을 그리스도인들이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백성이 될 때, 그 효용가치가 있습니다. 구별된 백성이 될 때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맛을 잃어버린다면 그리스도인이 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적당히 섞여서 살아가려면 그리스도인이 되실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어느 도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신문사의 기자 두 사람이 자동차 정비사들이 얼마나 정직한가를 테스트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잘 가는 온전한 차 엔진의 Spark plug wire를 빼어놓고 자동차 엔진에 고장이 생겼다고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여러 정비소에서 수리비로 175불이 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정비소를 찾아 갔더니 그 주인은 "아, 여기 wire가 빠졌습니다." 하고 wire를 연결시켜 주고는 돈 한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이 다른 정비소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했더니 그 정비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살라고, 이렇게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라고 주님께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렇게, 좀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II.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점에서 세상의 사람들과 다릅니까? 무엇이 이 세상의 풍조와 다릅니까?
(1) 오늘 말씀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다릅니까? 어떤 기초 위에서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물결이 아니라, 세상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다름, 거룩함의 기초이며 또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 때문에 우리는 세상과는 다르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살아가기에 세상사람의 삶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이며 또한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난다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되기를 그칩니다.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다면, 그분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독일의 신학자였던 본 회퍼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야 하는 삶의 모습을 그리스도를 가운데 두고 만나는 삶으로 표현했습니다. 대단히 적절한 지적입니다. 나와 세상이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가운데 두고 만나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을 내 생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직장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라보면, 직장은 단순한 돈벌이의 터전이나 나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을 넘어서게 됩니다. 직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곳으로 바뀌게 됩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내 자녀,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맡겨주신 귀한 보배로 이해하게 됩니다. 자동차 사고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보면, 그 어느 곳보다도 정직함이 요청되는 자리가 됩니다.
(2) 다음 주일을 우리는 청지기 주일로 지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우리 스스로를 보면 우리는 주인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청지기, 관리인일 뿐입니다.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시간이라는 귀한 선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로 관리하고, 사용하는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재능도,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귀한 하나님의 선물을 자신만을 위해서 쓰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재능과 은사의 달란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여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과감히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재물과 소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재물과 소유를 바라보면 이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시고 나는 관리인입니다. 주인이라면 내가 영원히 소유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우리는 죽기 전까지만 가질 수 있습니다. 혹시 어떤 분들은 내가 땀흘리고 벌었는데,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냐고 물으실 지 모릅니다. 이런 예상문제를 미리 감지한 모세는 일찍이 신명기 8장에서 해답을 말했습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돈벌 수 있는 능력, 힘도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착각하고 주인 행세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재물의 봉헌, 특별히 수입의 1/10을 드리는 십일조를 드리면서 이 믿음을 고백합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하여금 선한 관리인의 삶을 살라고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시간, 재능과 은사, 또 물질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로 관리하고 쓰라고 일깨워 주십니다. 우리 모두는 주인이 아니라 관리인, 청지기임을 잊지 말고 살라고 권고하십니다.
(3) 그런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를 일깨워 줍니다. 그것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면 하나님의 뜻을 보다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되지 못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구하지 않습니다. 그 뜻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변화되지 못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 차이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변화되면, 하나님의 뜻이 그만큼 더 분명히 깨달아지게 됩니다. 더 거룩하게 변화될수록 하나님의 뜻은 그만큼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됩니다. 그만큼 더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III.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지막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분별한 하나님의 뜻 앞에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 권면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마땅한 예배입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멧세지를 듣습니다.
(1) 첫째로 진정한 예배란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몸을 드린다는 말씀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생각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면서 어떤 분들은 귀만을 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마저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앉아 계시지만 생각은 태평양을 왔다갔다 하시는 경우도 있으십니다. 여러분, 진정한 예배,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분별한 하나님의 뜻 앞에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삶을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은 사울왕을 통해서 오늘도 우리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나님의 뜻 앞에서 말 많이 하는 사람, 별로 실속이 없습니다. 몸을 드려 순종하는 사람이, 거룩한 산 제물로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2) 둘째로 몸을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는 이 말씀은 진정한 예배란 주일날,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로만 국한될 수 없음을 깨우쳐줍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가 되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한인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신앙생활의 약점 가운데 하나는 믿음의 삶을 교회 혹은 주일로만 국한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배 역시 주일에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로만 제한해서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주일의 생활 따로 있고,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생활이 따로 있습니다. 예배당에서의 생활이 따로 있고, 가정과 직장에서의 생활이 따로 있습니다. 이것은 병든 신앙입니다. 성경은 그 어느 곳에도 예배당에서 드리는 주일 예배시간에만 제물이 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우리는 분별한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1주일, 168시간, 어느 곳에서도 산 제물로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은혜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이것이 "그러므로" 이전에서 구원의 감격을 느낀 사람이 "그러므로" 이후에 펼쳐가야 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은혜 받으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되셨습니까? 이제는 세상을 본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분별한 하나님의 뜻 앞에 몸을 산 제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입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분별하는 것만으로는 온전치 못합니다. 머리만 드리는 것으로는 모자랍니다. 깨달은 하나님의 뜻 앞에 몸을 드려야 합니다. 삶을 걸어야 합니다. 역사는 이 거룩한 제물들을 통하여 새로워져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헌신의 사람들을 쓰셔서 높으신 뜻을 세상 속에 펼쳐오셨습니다. 오늘도 제물을 찾고 계십니다. 거룩한 산 제물을 찾고 계십니다.
하루는 공자께서 제자들과 함께 한때 왕성했으나 이제는 폐허가 된 성읍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자 한사람이 공자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한때 번영하던 이 성읍이 왜 이렇게 몰락하고 말았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했습니다: "이 성의 성주는 악을 악으로 알고, 선을 선으로 알았던 사람이었느니라." 제자가 물었습니다: "악을 악으로 알고 선을 선으로 알았으면 선한 사람이었는데, 왜 이렇게 망했습니까?" 그때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는 선을 선으로 알았지만 행하지 않았고, 악을 악으로 알았지만 피하지 않았느니라."
선을 선으로 알고 악을 악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뜻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 뜻 앞에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산 제물을 찾고 계십니다. 산 제물로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룩한 산 제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나눔과 적용을 위한 물음
1. 오늘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본받지 말아야 할 것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무엇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까?
2.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넘어서서 산 제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3. 우리 모두가 드려야 할 참된 영적 예배란 어떤 것입니까? 어떻게 그 예배를 드리며 살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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