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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25. 워싱톤서(25) - 조영진 목사

크시도다 주님의 은혜여

로마서 11:25-36

바울 사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발견합니다.
이방인들의 수가 차면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측량할 길 없습니다.
그 은혜는 넓고도 깊습니다.
오직 찬양할 뿐입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은 로마서 연속설교의 또 하나의 단락을 매듭짓는 주일입니다. 로마서 1:1-17에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들을 향한 문안의 인사와 이 편지의 주제를 전한 사도 바울은 1:18-3:20에서 인간의 죄인됨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3:21-5장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죄인된 우리 인생들을 받아주시고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소개한 후, 6장-8장에서는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누리는 은총의 삶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9장-11장에서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를 놓고 씨름을 합니다. 이제 오늘로서 11장의 말씀을 끝내면 다음 주일부터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살아야하는 구체적인 삶의 교훈들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I.

9장-11장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을 논의한 사도 바울의 증언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이 은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함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권적인 하나님의 선택 때문입니다. (2) 그런데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사도 바울에게 큰 근심과 고통이었습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문을 열었습니다. 참 감람나무인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얼마가 믿지 아니함으로 그 가지가 잘리우고, 그 자리에 돌 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이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4) 이같은 이방인들의 순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기하게 해서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앞으로 나아오는 길을 열 것입니다. 이상이 지금까지 드린 9장-11:24에 이르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의 문제에 대하여 한가지를 더합니다. 11:25과 26a를 보십시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스라엘이 오늘 완악하게 복음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한시적,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찰 때까지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계속되리라는 것입니다. 얼마의 숫자가 충만한 숫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온 땅에 복음이 전파되고, 이방인들 가운데서 구원받는 숫자가 다 차게 될 때까지 이 완악함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차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외칩니다. 여기서 "온 이스라엘"이라는 이 말씀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이스라엘, 즉 모든 믿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택하심을 받은 사람을 뜻한다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로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한사람도 빠지지 않고 라는 의미보다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구원이 이루어 질 것으로 봅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의 구원의 숫자가 충만하게 차게 되는 때가 이르면,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등을 돌려대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주님 앞으로 나아올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사도 바울이 11:26b-27에서 인용하고 있는 구약성경 이사야 59:20-21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 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도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구원의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하나님, 한 복음 안에서 손을 잡게 될 것입니다.

II.

이같은 사도 바울의 증언 속에서 여러분들은 좀 거리감을 느끼실 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 문제가 먼 남의 나라 이야기 같고 오늘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리실 지 모릅니다. 또 과연 그렇게 될까? 라는 의심도 드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므로, 사도 바울이 느끼는 그의 동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의 안타까운 심정, 동족들의 영혼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려는 마음이, 뜨거운 가슴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이 말씀 속에서 주목해야 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동족들의 구원에 대하여 갖는 확신의 근거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슨 근거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침내는 구원의 은총에 이를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오늘 불신앙의 안타까운 현실을 넘어서서 민족의 구원을 확신하는 사도 바울의 이 증언은 어떤 기초 위에 세워져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한번 맺으신 약속을 변함없이 지키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바로 사도 바울이 갖는 동족의 구원에 대한 확신의 근거입니다. 그는 11:29에서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의 부르심을 철회하지 않으십니다.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변덕스러워도 하나님께서는 변덕스럽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드렸다가 찾았다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 변덕을 부려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요동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사랑, 그의 은혜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이 변함없는 사랑, 이 신실하신 은혜가 바로 우리에게 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처음 로마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믿었던 하나님이 오늘 워싱톤에서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오늘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조금 잘못했다고 우리를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어려운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거들떠보시지 않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넘어짐과 실패 속에서도 여전히 신실하십니다.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여전히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지난 주일 예배 후 저는 어린이교회의 한 소년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미리 연락을 해서 만났는데, 만나게 된 동기는 이 소년이 다시 세례받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우리 교회에서 영아세례를 받았는데도, 이 어린이가 또 세례를 받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왜 다시 세례를 받으려고 하니? 어린이는 대답했습니다. 어떤 때 잘못도 하고 또 나쁜 생각도 해서 용서받고 싶어서 세례 받겠다고. 저는 처음 이 어린이에게 저희 교회 전통, 아니 대다수의 교회들이 동의하지 않는 Rebaptism, 다시 세례 받는 일이 적절치 못함을 이야기했지만, 어린 소년이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5장에 있는 탕자의 비유, 아니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잘못했으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용서를 부탁드리라고. 그리고 또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하나님은 오늘도 기다리시며 맞아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마음이 답답하면 언제든지 찾아와서 나하고 같이 기도하자고 권고하면서 이 맑은 영혼과 함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 한번에 얼굴을 돌리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부족, 우리의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은혜 베풀어주신 것을 물리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신실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오늘도 약속을 성실히 지키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믿을만한 분이십니다.

III.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문제로 씨름하다가 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발견한 사도 바울은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9:1,2에서 마음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을 털어놓음으로 시작했던 사도 바울은 11장의 마지막 부분을 찬양으로 매듭짓습니다. 그는 11:33 이하에서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부유하심이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습니까?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으며, 누가 주의 조언자가 되었습니까?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표준새번역)"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인간이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인간의 제한된 머리로는, computer를 만들어 내고 우주를 왔다갔다 해도,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 되십니다. 만물이 주님께로부터 시작되었고 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십시다.
(1)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하심은 창조의 역사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보면 주님의 지혜가,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를 보아도 그의 지혜와 능력은 참으로 놀라우십니다.

요즈음은 늦가을이 되어 기러기들이 V대형을 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이 새들이 왜 V대형을 지어 날아가는가? 비행기와 망원경으로 기러기 떼를 추적하고 연구한 조류학자들에 의하면 여기에도 놀라운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로 기러기들은 혼자 나는 것보다 떼를 지어 날 때 71%나 더 오래 날 수 있다고 합니다. 둘째로 V대형을 이루어 날면 공기대가 형성되어 뒤따르는 기러기들이 훨씬 날기가 쉽다고 합니다. 따라서 가장 앞에 나는 기러기가 쉽게 지치기 마련인데, 이것을 아는 기러기들은 가끔 교대하면서 나른다고 합니다. 셋째로 기러기들은 날면서 계속 우는데, 이것은 힘들어서 지르는 비명이 아니라, 자기 위치를 알림으로 방향을 알려주고 서로를 격려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넷째로 만일 기러기 가운데 한 마리가 아프거나 부상으로 함께 여행을 못하게 될 경우에는 반드시 서너 마리의 동료가 낙오한 기러기와 함께 머문다고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지혜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입니까?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지식이요 지혜입니다. 이 자연세계를 보아도 오묘하지만, 우리 사람들을 지으신 역사를 눈여겨 바라보면, 정말 신묘막측합니다. 똑같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독특할 뿐 아니라, 그 지으신 손길, 우리의 몸이 얼마나 오묘하고 신비한지 모릅니다. 우리 몸이 움직여질 때 이루어지는 그 연결과 조화, coordination은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사랑이 내게 임했으니, 어떻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오묘한 주님의 손길이 나를 빚으셨으니,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의 지혜와 신실하심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의 역사 뿐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고 새 삶으로 인도해 주시는 구원의 역사 속에 또한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는 인간의 지혜로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기에서 우리 모두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된 이면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우리의 인생을 어루만지시고 붙들어주신 것을 기억하시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경로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 놀라운 지혜와 지식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한국에서 고구마 전도왕으로 널리 알려진 김기동 집사님의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전도할 때 늘 하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먼저는 "예수 믿으십니까?" 라는 말로 상대방의 마음밭을 알아본 후, 반응이 적대적으로 나오면, 아차 생고구마로구나 깨닫고 다음 단계의 말을 합니다. "그래도 예수 믿어 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만날 때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만날 때마다 찌르다가 보면, 하나님이 구원하시려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돌아오게 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김 집사님 아파트에 빨래감을 가지러 온 세탁소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김 집사님은 수고하신다고 위로하고 세탁물을 건네면서 찔러 보았습니다. "아저씨 혹시 교회 다니세요? 예수 믿으십니까?" 그때 아저씨는 "전 유교예요, 유교! 우린 예수 그런 거 안믿어요. 제사드릴 때 보통 밥그릇 14개 놓고 합니다. 우리는 교회와 전혀 상관없어요." 집사님은 바로 상대방이 생고구마인 것을 파악하고는 말했습니다. "그래도 한번 믿어 보십시오. 너무 좋습니다." 그 다음부터 세탁소 아저씨를 볼 때마다 이야기 했습니다. "아저씨, 저 아저씨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러기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탁소로 바지를 찾으러 가서, 또 한번 찔렀습니다. "아저씨,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세탁소 아저씨가 다리미를 내려놓더니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 아저씨 되게 질기네! 그게 그렇게 원이면, 교회 나가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처하고 같이 나가도 되나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아저씨가 한번은 밍크코트를 세탁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어느 날 그 밍크코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서 가만히 계산해보니까, 두 달 장사해서 번 돈이 그만 다 날아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낙담하고 있을 때, 김 집사님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 "아저씨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그때 이 말을 듣는 순간 저 사람이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혹시 내가 교회에 안나가서 밍크코트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세탁물 속에 쌓여있던 밍크코트를 다시 찾았다고 합니다.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그때 다시 김 집사님이 오고 가면서 하던 말, "기도하고 있습니다"란 말이 생각나더랍니다. 그래서 그 아저씨 따라 한번 교회 나가봐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탁소 아저씨는 김 집사님과 밍크코트가 계기가 되었지만,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신 이면에는 여러 가지 계기가 있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신실하신 사랑이 여러분을 불러내신 역사들이 있지 않으십니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던 그 작은 일이 우리의, 나의 인생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한 사실도 있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인간이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분의 신실하신 사랑, 놀라운 은혜는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까? 그러니 어떻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 신실하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3)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은혜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의 역사, 우리를 새로운 인생으로 불러주신 구원의 역사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걸음을 이끌어 주시는 인도하심의 역사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한 주님의 손길을 발견합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한 사건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준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첫걸음이 되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희 딸 은하가 지난 9월부터 Michigan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면서 느끼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오묘하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군데 관심있는 기관에 interview를 했지만, 경험이 없다고 해서 직장을 찾지를 못했습니다. 원래 공부를 더하려고 했으니까, Starbucks같은 coffee shop에서 일하다가 곧 대학원에 갈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면서 그런 가게에서 일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우연히 D.C.에 있는 정책연구기관인 Brookings 연구소에 E-mail로 자기 소개를 하면서 월급을 안 받아도 좋으니까 인턴을 할 수 있냐고 문의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연구소에서 마침 연구 보조원 자리가 났는데, 너도 한번 apply해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2년을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 경력은 좋은 대학원에서 전액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와 집사람이 은하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길은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길이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길,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인생이야말로 최선의 길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오묘하고도 신비합니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오늘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니 어떻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분의 신실하신 은혜, 그분의 위대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9장에서 동족들의 구원을 염려하는 안타까운 가슴으로 시작했던 사도 바울은 11장 마지막 부분에서 감격에 넘치는 찬양으로 끝을 맺습니다. 성서학자 가운데는 이 11장 마지막 부분이야말로 1장에서 11장에 이르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대단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은혜, 그 신실하신 사랑이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임했습니다. 우리도 그 은혜, 그 지혜, 그 사랑 안에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인도하심을 받아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 위대하심, 그 신실하신 은혜, 그리고 그 부요한 지혜를 높이지 않을 수 있습니까?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 나눔과 적용을 위한 물음

1. 내 삶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지난 한 주간의 삶 속에 그 사랑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2. 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3.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11:29)"는 말씀을 함께 묵상해 보십시다. 이 말씀이 내게 주시는 멧세지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