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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18. 워싱톤서(24)/추수감사주일 - 조영진 목사

접붙임을 받았으므로

로마서 11:1-24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의 멧세지 앞에 불순종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불순종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진 가지가 되었습니다.
이 은혜에 대한 진실된 감사가 우리 안에 있습니까?

지난 주일 저는 로마서 10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식없는 열심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율법을 지킴으로,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려는 열심, 그러기에 하나님의 의보다 자신들의 의를 구하는 그들의 닫혀진 마음을 전해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늘도 외쳐지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이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그런데도 주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 자신의 동족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탄식과 한숨을 우리는 9장부터 계속해서 대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이 갖는 의미를 증거하는 사도 바울의 멧세지를 함께 살펴 보시겠습니다.

I.

외쳐지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이스라엘 동족들을 향해 안타까운 가슴을 털어놓았던 바울 사도는 이제 결론적인 질문을 제기함으로 11장을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쉽게 말씀드리면,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거절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께서 포기하신 백성들입니까?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입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하여 곧 바로 대답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복음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닫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지도, 버리지도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같은 확신의 근거로 두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1) 첫째는 이스라엘 사람인 자기 자신을 예로 듭니다. 11:1 후반부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분명히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또 이스라엘 왕국의 첫 번째 임금을 배출한 베냐민 지파의 후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기하셨다면, 이스라엘 사람인 사도 바울 자신도 버림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2) 두 번째 예로는 엘리야 때의 일을 11:2-6에서 소개합니다. 엘리야가 아랍왕의 아내인 이세벨의 위협을 받고 도망 길에 올랐을 때입니다. 그는 광야 길을 거쳐서 호렙산에 이르러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엘리야는 그때 하나님께 불평을 털어 놓았습니다.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을 다 죽이고 나만 남았는데, 이제는 내 목숨도 찾고 있습니다." 이같은 엘리야의 탄식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 "너는 너 혼자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직도 바알신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000명을 남겨 두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온 세상이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느라고 난리 법석이지만, 그 땅에는 아직도 하나님을 신실히 믿는 사람들이 7,000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 땅에는 남은 자들(Remnants)이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너는 결코 외롭지 않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런 과거의 역사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오늘 외로워하고 안타까워 하지만, 아직도 그 땅에는 신실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남아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것은 결코 아니라고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미리 아시고 택하신 백성들을 오늘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불순종에 대해서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같으면 벌써 포기했을 그런 인생들을 향해서도 끈질기게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괴테의 말처럼 우리가 하나님이라면 벌써 분통이 터져서 죽었으련만 하나님께서는 용케도 참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처럼 그렇게 발끈 발끈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등을 돌려대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인간을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잊어버려도,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시는데 도가 통하셨습니다. 그분은 끈질기게 참으시며 기다리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오늘도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II.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마음을 닫아걸고 있는 이 현실, 이 거절은 하나님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아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 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순종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그렇게 가슴 아픈 상황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그는 읽습니다.

(1)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부는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는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교회에서 복음은 먼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중심으로 증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반대가 점차 심해지면서 복음은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좋은 예를 발견합니다. 첫 번째 전도여행 중 바울과 바나바가 오늘날의 터키지역에 있는 비시디아의 안디옥이란 곳에서 전도할 때였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유대인들은 시기심에서 바울의 설교를 변박하고 비방했습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복음을 믿었더라면, 아마도 이방인에 대한 관심이나 전도는 훨씬 뒤로 미루어 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하니까, 복음의 전파는 자연스럽게 이방인에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라고 늘 고백했습니다.

(2) 이렇게 해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자극, 그들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바울은 이해했습니다.

11:11을 보면 바울 사도는 이스라엘은 결코 온전히 망한 것은 아니며, 그들의 불순종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게 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질투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게 하려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11:14에서는 자신의 동족에게 질투심을 일으켜서 그 가운데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하고 싶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생명, 참된 평화와 살맛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고, 이방인들을 통하여 또 한번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불러내게 될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의 불순종, 완악함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실 뿐 아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선하게 바꾸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지혜, 그의 사랑은 인간이 감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 분명히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의 가슴 속에 큰 근심과 끊임없는 고통을 안겨주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불순종 속에서도 역사하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지혜와 능력으로 이 죄악 속에서도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펼쳐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III.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사도 바울은 11:17 이하에서 감람나무, 즉 올리브 나무의 비유를 사용하여 다시 한번 깨우쳐 줍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감람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참 감람나무 가지들이 꺾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돌 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접붙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참 감람나무, 하나님의 백성의 은혜와 능력을 맛보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유를 소개하면서 로마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니 오늘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 권면합니다. 이제 믿음으로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 하십시오. 참 감람나무 가지도 꺾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꺾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귀중하게, 감사하게 여기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비교하면 이방인들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참 감람나무 가지로 접붙임을 받아 새로운 인생,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끈질기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죄악됨에도 불구하고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참 감람나무 가지가 되었다는 이 은총의 역사가 일깨워 주는 몇 가지 멧세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 먼저 우리는 이제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인생으로 변화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돌 감람나무란 어떤 존재입니까? 제멋대로 자란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돌봄을 맛보지 못한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돌 감람나무의 가지가 꺾이고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던 인생은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존재로 바뀌어졌습니다. 복음 안에서 접붙여진 인생입니까?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제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한다면 부자유해서, 답답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염려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마음대로, 욕심대로 살아가실 때 얻으신 것이 무엇입니까? 바라시던 것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8:5 이하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또 8:13에서는 우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지만,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으셨습니까?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가지인 우리들을 보전하는 뿌리의 중요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1:18의 말씀처럼 가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가지를 지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접붙임을 받았으면 우리 가지를 지탱해 주는 뿌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뿌리를 통해서 우리는 영양을 공급받게 되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뿌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논의를 합니다만, 다수의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들로 이해합니다. 참 감람나무가 바로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주장들은 물론 아브라함, 이삭, 야곱같은 이스라엘 역사의 족장들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내 믿음의 밑거름이 되어준 신앙의 선배들, 혹은 부모님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헌신, 그분들의 기도가 오늘 우리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여기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의 믿음생활을 격려하고 영양을 공급해 준 우리의 형제와 자매가 있습니다. 혹은 믿음을 전해주신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그분의 믿음, 그분들의 기도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들의 기도, 그분들의 사랑이 내 믿음의 가지를 지탱해 주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셋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제 돌 감람나무인 우리가 참 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임을 받았으면, 참 감람나무의 열매를 맺어 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돌 감람나무와 참 감람나무의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열매에 있습니다. 열매를 보면 참인지 돌인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접붙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셨습니까? 삶의 모습이 달라지셔야 합니다. 이제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 가셔야 합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 이 열매들을 삶 속에서 맺어 가셔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만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그리고 직장에서도 맺어가셔야 합니다.

성경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들을 향해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꾸짖으셨습니다. 포도나무의 비유 속에서 열매맺지 못하는 가지는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힐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도 들포도를 맺는 그 나무를 향해 깊은 실망과 탄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인생이 바뀌어야 합니다. 변화된 삶이라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변화된 인생, 풍성한 열매야말로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야할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 길이 주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응답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우리는 농사를 짓지 않기에 추수감사절이란 말보다는 그냥 감사절이란 말이 적절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가장 큰 감사는 무엇입니까? 정말로 감사드려야 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어둠에 있던 우리 인생이 그리스도 안에서 빛을 찾는 것 아닙니까? 돌 감람나무로 내 마음대로 살던 우리 인생이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져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이 놀라운 은혜가 아닙니까? 기다리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감사의 내용이 아닙니까? 우리의 죄악 속에서도 여전히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 감사의 내용이 아닙니까? 우리의 삶 속에 조그마한 변화의 열매라도 있다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주님의 역사 하심이야말로 참으로 감사드려야 할 내용이 아닙니까?

몇 해전 저희 교회에서 부흥사경회를 인도하신 장학일 목사님께서는 청소년기에 많이 방황하면서 헤매셨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학교를 다닐 때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특별히 수업료를 제때에 못 내서 시험을 보지 못할 때는 참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선생님께 내일 등록금을 가져올 테니 오늘 시험보게 해달라고 4시간 동안이나 울면서 호소했지만, 선생님은 "이때까지 등록금 못 가져온 XX가 언제 해가지고 오냐" 하면서 끝내 시험보는 것을 허락치 않았습니다.

이런 상처는 부모님을 향한 반항으로 이어졌습니다. 자식에게 등록금은 못 주어도 십일조를 바치는 아버지, 먹을 것 못 주면서도 성미쌀을 갖다 바치는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항변하면서 아버지 어머니도 보기 싫어졌습니다. 교회도 그만두고 그만 가출해서 구두닦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의 등록금을 뺏고 못살게 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충격을 받아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가 보니 정말 어머니는 머리를 싸매고 누워 계셨습니다. 장 목사님이 들어가니까 뛰쳐나오시면서 통곡을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고생했니? 얼마나 배고팠니? 얼마나 힘들었니?" 어머니의 눈물 앞에서 목사님도 우셨습니다. 아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도 달려 오셨습니다. 아버지한테 매맞고 야단 맞을 각오했던 목사님에게 아버지는 두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배고팠니? 밥 먹자" 그러더니 밥상 앞에서 아버지는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 애비를 잘못 만나서 이 자식이 이런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애비를 용서해 주시고 이 애비를 때려 주십시오." 울면서 드리시는 아버지의 기도 앞에서 장 목사님도 울고 온 가족이 울었습니다.

그날 목사님은 깨달으셨습니다. 가난 때문에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나를 진정 사랑해 주는 분은 구두닦이들이 아니고, 바로 부모님과 형제와 자매, 가족이라고. 그 뒤에 목사님은 새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고비를 넘어서서 참으로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인생을 살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지금도 자신의 오늘이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 주신 부모님들, 그 새 인생의 뿌리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돌 감람나무 가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놀라운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십시다. 우리 모두 그 사랑을 찬양하십시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 나눔과 적용을 위한 질문

1. 금년 한해를 돌아볼 때 참으로 감사한 일은 무엇입니까?

2. 나의 부족과 죄에도 불구하고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함께 나눕시다.

3. 접붙임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