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 Swinks Mill Road, McLean, Virginia 22102    Tel: (703)448-1131   Fax: (703)448-5384  contact@kumcgw.org

Mission Statement
History of KUMCGW
Worship Services
Directions to Church

Korean Ministry
English Ministry
Children's Church
Youth Church

Profile and Photo

Photo Album
Sharing


Sharepoint Home
Contact Information
Resources and Links
Connectional    Churches
Korean Bible Study


Archive | Home | audio video-56K video-230K

2001.11.11. 워싱톤서(23) - 조영진 목사

지식없는 열심

로마서 10:1-21

로마서 연속 설교가 중간, 중간에 끊어져서 비연속 설교가 되어 죄송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을 전하지 못할 때, 더욱 귀한 말씀들이 이 강단에서 전해져서 오히려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이제 남은 시간들은 중단 없이 전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계속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니 워싱톤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써보낸 이 편지의 9장부터 11장에 이르는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마음을 열지 않는 그의 동족들을 향한 안타까운 가슴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의 선택함을 입었지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외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크게 근심하고 있는 그의 심경을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발견합니다.

이같은 염려는 10장에서도 계속됩니다. 10:1을 보십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9장 1에서 자신 안에 동족들을 향한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음을 밝혔던 사도 바울은 10장에서도 다시 동족들을 향한 기도와 소원을 피력함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I.

여러분, 지금 사도 바울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느 민족보다도 먼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 앞에 등을 돌려대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무엇이 사도 바울의 가슴에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까? 10:2의 말씀을 보십시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있지만,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모르고 열심만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역사를 모른 채 열심만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10월 21일 주일에 말씀드렸던 9장의 30절부터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말씀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 갖고있는 문제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하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데는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에는 등을 돌려대고 있었습니다. 9:32의 말씀처럼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행하고 있지만, 지식이 없었습니다.

(2) 그러기에 그들은 10:3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의, 자신의 행함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 여지가 없습니다. 의는 내가 율법을 지켰기에 얻게되는 당연한 대가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대가없이 주시는 은혜, 선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열심히 율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의를 구하고 있을 뿐,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3)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의 하나님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의 하나님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거 모세를 통해서 이룩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열심히 알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암송하며 기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행하신 역사는 몰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구원의 역사, 그리고 주님의 사도들을 통하여 오늘 선포되고 있는 구원의 길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어제의 하나님을 알뿐, 오늘의 하나님은 몰랐습니다. 10:4의 말씀처럼 예수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데, 그의 동족들은 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은 있었지만, 지식이 없는 열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들을 염려했습니다. 그들의 지식없는 열심,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지 못한 채, 열심만 있는 그의 동족들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II.

지식없는 열심에 사로잡혀 있는 그의 동족들을 염려하는 사도 바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역사,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지식을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다시 소개합니다. 그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여러분, 본문 10:9-10절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십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여러분, 구원의 길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함께 읽은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원칙을 발견합니다.

(1)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성서학자에 의하면 "주(Kurios)"란 말은 네 가지 의미를 가지고 쓰였습니다. 첫째는 "Sir"와 같은 의미로 상대방을 존경하는 말, 둘째는 로마황제를 가리키는 말이 있고, 셋째는 희랍의 신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으며, 넷째는 구약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부를 때 거룩하신 이름대신 사용되어졌습니다. 어쨌든 예수께서 주님이시라는 말을 그분은 로마 황제보다도 더 위대하신, 내 삶과 역사의 주인이 되심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예수님 그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인정함이 구원의 첫걸음입니다.

(2) 둘째는 그분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합니까? 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모두 헛것이라고 말합니까?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부활을 믿음은 2000여 년 전 유대 땅 한 모퉁이를 살아가셨던 그분이 오늘도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예수님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분명히 이 땅 역사를 살아가셨을 뿐 아니라, 그 역사를 초월해 계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2000년 전 과거의 예수님을 추모하는데 머물고 말 것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그분은 우리의 모범, 우리의 스승은 될지언정 결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실 뿐 아니라 오늘 우리를 건져주시는 분,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다가오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목숨을 걸고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을, 아니 하나님께서 그분을 다시 살리신 이 놀라운 역사를 외쳤습니다. 전했습니다.

(3) 셋째로 오늘 말씀 10:10은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결국 우리는 행함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마음으로 믿는 것만으로는 온전치 못합니다. 입으로 고백함이 필요합니다. 마음도, 입도 믿음의 고백에 참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마음으로 믿으면 되지 고백할 필요는 무엇인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분명히 권면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고.

여러분, 입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혼자서 고백하는 독백이 아닙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고백입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고백입니다. 원래 믿음은 혼자 믿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한사람, 한사람 개인, 개인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은 함께 믿는 것입니다. 함께 나누며, 고백하며 사는 것입니다. 혼자 믿으려고 하니까 외롭고, 또 잘못되면 이단, 삼단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구원을 받습니다.

이 복음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넓고도 풍성하십니다.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습니다. 지식의 유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도 문제가 아닙니다. 피부 빛깔이 흰가, 검은가, 적당한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부끄러움을 당치 않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주님의 이름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과 그분의 다시 사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 지식이야말로 우리에게 생명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임한 이 지식이야말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합니다.

III.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놀라운 지식, 이 놀라운 은혜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없는 열심에만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직도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합니다. 일찍이 구약 성경의 예언자 호세아는 외쳤습니다: 이 백성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이 백성은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이 탄식, 이 한숨은 바울의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참된 지식을 외면한 율법 준수의 열심만이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이 복음은 결코 멀리서 들려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늘에 올라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음부에 내려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바로 가까이서 외쳐지고 있었습니다. 10:8에 기록된 것처럼 말씀은 그들의 입에 있으며, 그들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길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열고 듣는다면, 믿음을 낳는 복음의 선포가 가까이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치 않고 있었습니다. 옛 언약에 매어서 새로운 언약을 향해서 마음을 닫고 있었습니다. 들으면서도, 온 땅에 선포된 복음을 들으면서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여러분, 이제 오늘 우리를 향해 초점을 옮겨 보십시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구원의 복음 앞에 마음을 열고 있습니까?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과 그분의 부활을 마음으로 믿으며 입으로 시인하고 있습니까? 과연 지식이 있는 열심을 품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도 참된 구원의 지식을 외면한 채 열심만을 내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식있는 열심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이 있습니다.

(1) 먼저는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외면한 채 내 힘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무식함, 오해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의로워야만, 선해야만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대단히 순박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보다 나의 의, 나의 선함을 의지하려는 불신앙이 자리잡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찬송가 188장의 가사처럼 빈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시면 됩니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샘에 나가시면 됩니다.

(2) 그리고 내가 안다는 것의 틀을 부단히 점검하며 열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아는 것 그것에 매이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가로막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는 것 이상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두뇌에 갇히시는 그렇게 제한된, 그렇게 유한한 분이 아니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안다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 때문에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그들은 외면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성장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나사렛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안다는 것의 올무에 걸려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것, 그 내용, 그 한계를 부단히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과 일깨움 앞에 스스로를 열어가시기 바랍니다. 이 문이 닫히면 우리도 지식없는 열심에 빠질 수 있습니다.

(3) 셋째는 이를 위해서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가까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바로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역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모르면 우리는 오늘의 하나님도 알 수 없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는 것은 무식하리 만큼 용감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과거에 이룩하신 역사를 증언해 줄 뿐 아니라, 그 거룩한 말씀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씀을 통하여 살아있는 지식, 생명의 지식을 쏟아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졌던 그 함정에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생명의 지식을 외면한 채, 열심에만 매달리는 그 실패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지식없는 열심, 그 과오를 우리도 되풀이하게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직접 체험해야만 배웁니다. 더욱 어리석은 사람은 직접 체험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를 통해서 배우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고 깨닫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식없는 열심에 빠져 구원의 길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니 이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지식없는 열심에 빠지지 말자. 안다는 것 때문에 참으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입술과 마음을 열자. 이렇게 깨닫고, 믿으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너무 너무 좋은 삶의 길입니다. 진정한 행복, 진정한 풍요함이 여기 담겨져 있습니다. 참으로 의미있게, 그리고 멋있게 살아가는 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주가 되셔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늘도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이 믿음의 말씀은 오늘도 가까이에서 증거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오늘도 우리 모두를 향해 약속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이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9-10)." 아멘.

* 적용과 나눔을 위한 물음

1. 오늘 우리 주변에서 발견하는 지식없는 열심의 모습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외면한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깨우쳐 줍니까?

3.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려면 오늘 내게서 무엇이 변화되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