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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8. 장찬영 목사

겨자씨. 그것은 숨고 싶은 절망감, 겨자나무. 그것은 품고 싶은 넉넉함

마가복음 4:30-32

겨자씨, 그것은 모든 씨 보다도 작고 미미한 것입니다.
겨자씨, 그것은 숨기고 싶은 우리의 절망과 열등감입니다.
그러나 땅에 심긴 후, 겨자씨에서 자라난 겨자나무는 모든 새들이 깃들이는 아름다운 생명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모든 사랑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이 되었습니다.

I

오늘 아침에는 먼저 디즈니와 경쟁해온 만화영화사 드림워크가 최근 내놓은 애니메이션 만화영화 한편을 소개하면서 오늘 말씀을 열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 자녀들이나 손주들과 함께 보신 분이 계실 터인데 그 제목은 바로 [슈렉(Shreck)]입니다.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밖의 늪지대에는 엄청 못생기고 몸집이 큰 괴물모양의 슈렉이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슈렉의 거처에 온갖 동화의 주인공들, 백설공부, 신데렐라, 피터팬, 피노키오 등등이 대거로 몰려듭니다. 알고 보니, 악덕 성주 파콰드가 이들을 모조리 내쫓고 늪지대를 차지해 버린 것입니다. 파콰드는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말하는 거울을 통해서,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그리고 이 영화 슈렉에 새롭게 등장하는 피오나 공주의 거울 선을 보고는 피오나를 선택합니다. 세 명의 공주 가운데 하나와 결혼하면 왕이 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한편, 슈렉은 늪지대의 문제로 파콰드 성주와 담판을 짓다가 용암이 흐르는 용의 섬에 갇힌 피오나 공주를 데려오면 늪지대를 돌려주겠다는 말에, 피오나를 구하러 떠납니다. 슈렉에게는 동행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말하는 당나귀였습니다. 이 당나귀는 [바보 이반]이야기가 있는 러시아 동화에 등장하는 당나귀를 연상하게 합니다. 슈렉이나 당나귀나 모두 세상에서 못나고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받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차여차 하여 용의 섬에서 피오나를 구하여 성으로 돌아오던 슈렉은 그만 피오나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그러나 자신의 못난 몰골을 생각하면 사랑을 고백할 수 없습니다. . . 한편 피오나의 성격도 매우 재미있습니다. 얌전한 척 내숭을 떨지만 사실은 격투기까지 할 줄 아는 굉장한 왈가닥입니다. 하지만 피오나 공주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습니다. 해가 지면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로 변하는 것입니다. 마법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피오나는 자기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파콰드 성주가 자신에게 키스를 하면 이 마법에서 풀려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슈렉은 피오나 공주에 대한 연정에 마음을 태웁니다. 드디어 공주를 맞이한 파콰드 성주는 그 날 해가 지기 전 결혼하자는 피오나 공주의 청에 의해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데, 도저히 사랑의 진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 슈렉은 마치 영화 [졸업]의 더스틴 호프만처럼 나타나서 사랑을 고백하고, 결국 피오나는 악덕 성주 파콰드를 물리치고 태양이 지는 창문 옆에서 자신의 못생긴 모습을 드러내고 맙니다. 속으로는 슈렉이 이런 자신의 모습에 놀라 정나미가 떨어져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슈렉은 도리어 피오나가 자기와 같은 과(科)에 속한다고 여겼는지 크게 기뻐하고 키스합니다. 그러자, 마법이 풀리는 찬란한 장면이 연출되더니 피오나가 하늘에 들렸다가 내려오는데 . . .아! 기가 막힌 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못생기고 뚱뚱한 모습 그대로가 되어서 슈렉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 . 그리하여 슈렉과 피오나는 마침내 결혼하게 되고, 늪지대와 성채는 잃었던 평화를 되찾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어찌 보면 늘 애니메이션 만화영화가 그렇듯이 흥행을 위주로 한 유치한 이야기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단순한 재미 이상의 여러 가지 생각할 문제들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II

우리는 솔직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직면하게 되는 좌절감, 나름대로 열심히는 뛰어보지만 자신도 믿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때로 같이 뛰어온 동료들과 비교해보면 늘 부족하기만 한 자신의 현실, 때로 한없이 작아져버린 자신의 모습 등등 마치 겨자씨와 같은 존재로 고뇌하게 일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꿈같은 동화 속에서 축복의 미래를 구하곤 합니다. 그것이 분명 허구인줄 알지만, 동화의 주인공처럼 이 고된 현실의 마법이 풀려 멋진 성채에서 모두가 떠받드는 가운데 왕처럼, 여왕처럼 되는 것을 꿈꾸는 것입니다. 마치 생각지도 못했던 수 천만불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웃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장면들을 꿈꿔 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동화는 언제나 그렇듯이 "그렇게 해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노라" 라고 끝나는 해피엔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양의 민담은 그런 현실세계에서 이룰 수 없는 동화의 세계를 무한히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특징 몇 가지는, 이 모든 스토리의 주인공은 마음씨는 아름답지만 못생긴 공주가 나오거나, 또는 정의롭고 용감하지만 키가 작거나 땅딸한 왕자가 나온다든지 하는 법이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멋진 몸매, 인형같은 얼굴, 성우같이 기가 막힌 목소리까지 거기다 비단결 같은 마음씨, 정의에 불타는 마음, 거기다 무술에도 능수 능란한 완벽한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백설공주가, 인어공주가, 신데렐라가, 미녀와 야수가 다 그렇습니다. 또한 이러한 동화의 메시지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그것은 "당신도 잘만하면 왕자와 공주의 선택된 축복에 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스토리는 일반적인 평범한 삶을 사는 백성들에게는 전혀 실현 불가능한 그림의 떡이거나 열등감만을 자극하기 십상입니다. 오직 거기에는 '선택된 소수의 행복'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각도에서 다시 새겨보면, 영화 슈렉의 메시지는 이렇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바로 "남들보다 잘 생겨야 하고 예뻐야 하고 높아져야 하고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걸린 마녀의 마법이다" 라고 말입니다. 본래 주어진 삶의 가치를 스스로 열등하게 여기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축복을 구하기보다는 단 한번의 키스로, 또는 단 한번의 선택으로 굉장한 운수를 잡았으면 하는 헛된 꿈을 꾸는 것입니다. 피오나는 자신의 못생긴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슈렉과의 사랑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못생겨진 것이 아니라, 진실해진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진실의 땅에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악의 마법은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 .

세상은 온통 선택된 소수자로서 왕자가 되고 공주가 되며 혼자 성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무수한 인생을 곤고하게 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삶에 대하여 상처와 열등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아침이 되면 누구나 아름다운 피오나가 될 줄로 알지만, 밤이 되면 자신의 정직한 현실로 돌아와 못생긴 피오나의 모습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분노하기도 절망하기도 슬픔에 빠지기도 합니다.

III

오늘 여러분들이 읽은 성경의 본문은 특별히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의 현실세계를 디즈니영화사나 드림워크사가 '동화'로 표현했다면, 이미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이 땅위에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인가에 대해, 즉 이 땅의 백성들이 어떻게 이 땅위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살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중 오늘 말씀은 '겨자씨' 비유입니다. 겨자씨란 말씀 그대로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입니다. 누구와 비교해도 여전히 움츠려지고 작게만 보이는 존재입니다. 저는 이 겨자씨를 본적이 있습니다. 학생시절에 다니던 교회에서 당시 담임목사님께서 성지순례를 다녀 오셨었습니다. 그리고 주일 날 교우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선물들 잘 받으셨지요" 하는데 언제 선물 주신 적이 있었어 야죠. 그런데 그 선물이 주보에 있다구해서 주보를 뒤져 보니까 주보마다 한쪽 끝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놓았는데 테이프 안에 티 눈 만한 것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겨자씨였습니다. 그냥 보면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깨알같은 작은 씨였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겨자씨가 땅에 심기워 지니까 모든 나무보다 커지고 큰 가지가 나와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커진다는 것입니다.

겨자씨. 그것은 보기에는 모든 씨보다도 작고 미미한 것이지만 주님은 그 겨자씨에게서 생명의 신비를 보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 겨자씨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의 비밀을 보셨습니다. 겨자씨 그 자체는 절망과 열등감으로 숨고 싶은 존재이지만, 예수님은 자기만의 거울 앞에 드러난 밤의 피오나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아름다운 은총에 눈을 뜨고 하늘의 생명과 축복을 흠뻑 받아 자라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파콰드 성주가 겉모습만 보고 반해버린 아침의 피오나가 아니라, 못난이 슈렉이 감히 사랑을 고백하기 어렵도록 아름다운 눈부신 공주 피오나가 아니라, 태양이 뜨건 지건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기자신의 가치에 대하여 진실한 자신감을 가지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진실로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축복을 누리도록 해주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한 믿음의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안에 믿음이 들어오면서 나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가치관의 변화일 것입니다. 자신을 보는 눈이 그리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실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은 모두가 겨자씨와 같은 인생임에 분명합니다. 그것은 분명 땅위에 모든 씨보다 작은, 절망과 열등감의 숨고 싶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더 이상 좌절과 슬픔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침내 겨자씨는 생명을 잉태하고 자신을 땅속에서 죽임으로 겨자나무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 한 신문의 인터넷에서 이런 기사의 제목이 나왔었습니다. - '자폐증 아들 마라톤 완주시킨 어머니.' 여러 곳에서 나온 이 기사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네 살 때 자폐증을 앓기 시작해서 이제는 18살이 된 박미경씨의 아들 형진군이 마라톤 풀 코스를 2시간 57분 7초에 완주한 기사였습니다. 정상인이 아닌 2급 정신지체 장애인으로서, 일반인 1만 153명과 함께 달려 48등한 결과였습니다. 어머니 박미경씨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아들이 마라톤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정신장애 치료를 위해 아이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주려는 거였습니다. 운동을 하면 아이의 얼굴이 밝아지니까요. 98년 봄 우연히 형진이를 운동장에 데리고 나와 뛰게 했는데 한시간을 뛰어도 지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라톤을 시켜 볼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해 처음으로 단축 마라톤 대회 10Km 코스를 뛰었는데 완주해 들어오는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장애인대회에는 그전에는 참가한 적은 있어요. 하지만 일반인 틈에 아이가 끼여 있었어요.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마구 울었어요. 아이는 물론 힘들다고 했어요. 그러나 얼굴표정은 밝았어요. 그 전까지는 맨 날 똑같은 생활이었어요. 아이는 스스로 변화를 못 만들죠. 결혼한 뒤로 저는 아이에게 묶여 있었죠. 제게도 무척 힘든 시기였어요. 봉제공장을 하는 남편도 어려웠어요.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어요. 아이 스스로가 자신이 정상인이 아닌 장애인이라 생각하여 낙심하고 포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장애인이라고 놀려도 손가락질해도 괜찮지만 무엇보다 형진이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자신감, 성취감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숨을 골라야 하는 형진이. 마라톤이 끝난 뒤에도 식당에서 물을 마시다가 옆에 있는 사람을 밀어 뜨려 그 사람의 안경을 떨어뜨렸지만 물을 마시겠다는 집착에 사로잡혀 그냥 지나가 버리는 형진이. 대처능력이 전혀 없는 아들을 데리고 여러 병원에 데리고 가서 언어치료도 받는 등, 최선을 다해 가르쳤지만 아이에게는 모방학습능력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모두 무너졌고, 가족 모두는 절망했던 것입니다. . . 어머니는 이렇게 얘기를 계속 합니다. "처음엔 줄넘기와 자전거, 롤러스케이트를 가르쳤죠. 또 매일 산에 데리고 다녔어요. 일부러 배낭을 무겁게 했어요. 몸을 지치게 하면 잠이 잘 들고 이상행동이 덜 나와요. 처음에는 안 따라오려고 하죠. 아이는 집착과 고집이 세요. 그러나 사정을 봐주지 않고 운동을 시켰죠. 아들을 너무 혹사시킨다, 심지어 계모라는 소리도 들었죠. 그러나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며 겪는 제 고통을 어떻게 알겠어요. 아이는 다행히 좋아지고 있어요. 요즘 일상적인 것은 혼자서 해요. 학교도 혼자 다녀요. . . 형진이가 어렸을 적에는 아이를 때리고 같이 절망적으로 울었어요. 제 인생이 없어졌어요. 우울증에 걸렸죠. 오랜 시간 위장병을 앓았지요. 어린 시절, 둘째 아이가 학교친구들을 생일파티에 초대했어요. 생일 상을 다 차려 놓았죠. 그런데 아무도 안 왔어요. 자폐증에 걸린 형이 있다는 이유였죠. 한 아이로부터 "우리 엄마가 정신병자와 어울리지 말라고 했어요"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때 저는 속으로 울면서 정말 이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 아이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언제까지 제가 이 아이를 돌봐줘야 하는지는 몰라요. 그러나 이 아이를 통해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많은 어머니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 마라톤 완주를 하고 난 아이의 표정은 뿌듯해 보였어요. 자기가 자신을 보아도 놀라워하는 거지요. 저는 삶이 무엇인가를 종종 생각해요. 그냥 숨만 붙어있다고 살아있는 걸까요? 형진이에게도 의미 있는 인생이 있을 거예요. 그걸 찾아 주고 싶어요. 남들은 웃을 줄 모르지만, 기회가 닿으면 철인 삼종 경기 에도 도전시켜볼 작정 이예요. . . 물론 현실은 너무 암담해요. 현실적으로 제게는 아이를 떠넘길 사람이 없어요. 아이에게 희망을 주기로 결심하면서 다른 것은 다 포기했어요. 아내로서의 역할도 포기했어요. 평생을 이렇게 산다는 것은 너무 불행하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어요. 그러나 저보다 더 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걸 떠 올리죠. 그들에 비해 우리는 여전히 행복하지요. 그리고 형진이가 보다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확신하지요. . ."

이 기사를 기록한 기자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기자의 눈에 비친 형진이는 다소 불편하게 보였지만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 . ."

IV

영화 [슈렉]이 암시하는 메시지처럼. 공주 피오나는 밤이 되면 못생겨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못생겼지만 태양이 뜨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는 어떻게든 예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현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하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사는 현대인을 이중적인 모습을 상징적으로 풍자합니다. 그래서 어쨌든 남들보다 더 잘생겨야 하고 예뻐야 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많이 소유해야 하고, 더 높아져야 하고, 더 강해져야한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걸린 마녀의 마법이라면,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비록 초라하고 절망 적인 감추고 싶은 미미한 겨자씨같은 모습일지라도 그 겨자씨 안에는 무한한 생명을 알기만 한다면 그래서 그것이 땅에 떨어져 심기우는 그 신비를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는 비로소 모든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겨자씨 그것은 우리가 숨기고 싶은 절망감과 열등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겨자씨가 진실의 땅에 떨어지면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의 겨자나무로, 그래서 모든 새들이 와서 그 그늘에서 쉬는,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인생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겨자씨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지만 미미하지만 먼지같이 쉽게 날아가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습니다.

누가 형진이보다 내가 더 행복하다고, 형진이는 참으로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불편한 삶을 마치 불행한 삶으로 착각하는 현대인들에게, 그래서 그 불편을 없애면 행복이 찾아 올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 . .진정한 행복은 비록 작고 불편하게 보일지라도 나의 겨자씨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에 있음을, 그 진실함에 있음을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된 모습, 작지만, 부끄럽지만, 그래서 감추고싶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설 때, 주님은 우리를 작다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통해 주님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주님은 겨자씨의 그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날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것들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주님께서는 나의 어떤 모습을 가장 사랑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3.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들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 내가 새롭게 되어야 할 부분이 있으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