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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7. 위싱톤서(21) - 조영진 목사
큰 근심
로마서 9:1-13
사도 바울은 종족의 구원을 위하여 큰 근심과 끊임없는 염려를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가슴이 있습니까?
Korean-American으로서 이 땅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염려가 있습니까?
이 땅의 구원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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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로마에 살고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써 보낸 편지인 로마서, 아니 오늘 세계의 서울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낸 워싱톤서의 연속 설교도 벌써 스물 한 번째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드리려는 9장부터 로마서는 새로운 단락에 접어듭니다.
1:1-17에서 인사와 로마서의 주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1:18-3:20에서 온 인류의 불의함, 인간의 죄인됨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3:21- 5:21에서는 이같이 죄인된 인간을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하나임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6장-8장에서는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누리는 삶을 증거한 사도 바울은 이어지는 9장-11장에서는 이같은 구원의 은총에 등을 돌려대고 있는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8장 마지막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은혜를 거절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 것입니까? 오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아직도 희망이 남아있는 것입니까? 이 문제를 사도 바울은 9장부터 11장까지의 말씀 속에서 씨름하고 있습니다.
I.
먼저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야말로 그의 동족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누리는 특권이었습니다.
(1) 먼저 9:4 이하를 보십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족장들은 그들의 조상이요, 그리스도도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표준새번역)"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갖가지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으로 예배할 수 있고, 영광을 누릴 수 있으며,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또 하나님의 여러 가지 약속을 받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을 자랑할 수 있으며, 또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적으로는 유대인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2) 그런데 이같은 은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을만한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9:6 이하를 보십시다. 이 부분을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도 그 가운데서 이삭이 택함을 받았으며,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서도 동생인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음 주일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때문입니다. 인간 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히 나은 것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만큼 도덕적으로 선한 백성도 아니었습니다. 또 특별히 부요한 백성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당시 중동지방의 역사에서 보면 미미한 족속들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떠돌이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모세는 그의 백성들에게 신명기 7:6 이하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너희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의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음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되었던 집에서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
잘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똑똑한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자비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3)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능력있는 증거와 놀라운 역사들을 통하여 생명의 복음은 외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 백성들은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고 있습니다. 박해하고 있습니다,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대적함으로 갚고 있습니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이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II.
바울은 이같은 심정을 오늘 본문 9:1 이하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도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도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의 가슴 속에는 이 아픔이 있었습니다. 이 고통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동족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져있는 이 현실이 너무나도 답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오죽하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내 동족,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라면,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달게 받겠다고 기록하고 있겠습니까?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제 자신에게는 큰 도전과 일깨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제 가슴 속에는 이러한 사랑, 이러한 안타까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족, 여러분의 친척, 이 땅의 Korean-American들의 구원을 위한 안타까운 가슴이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염원하는 이 간절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멧세지가 있습니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는 나의 가족,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 친척들의 구원을 위한 안타까운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믿음이란 각자가 알아서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라고 해도 자녀들에게 믿음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녀들을 존중하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기다리는 지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신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예수는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믿으면 좋고, 안 믿으면 그의 선택이니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도, 우리 인생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다고 믿으십니까?
교우 여러분, 믿지 않아도 괜찮은 것입니까? 안 믿는다는 것은 그들의 선택으로 끝나는 것입니까? 안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것임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이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거부에 대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 영원한 멸망을 맞게 되리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스는 그가 살던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 이웃의 영혼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영국의 성도들의 눈을 열어주소서. 지옥을 보게 하옵소서."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놀라운 은혜를 증거할 뿐 아니라 이 구원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경험하게 될 지옥의 참상을 계속적으로 잊지 말아야 한다."
저희 집에서도 아들과 종종 의견 충돌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목사의 아들이니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목사이지 그 녀석은 목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신앙의 근본문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에는 양보와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엄마와 아빠의 삶의 원칙이고, 나는 아빠로서 가장 귀한 이 재산, 이 길을 떠나는 것은 받아드릴 수 없다고 분명히 경계선을 긋습니다. 물론 더 자라봐야 알 것입니다. 그러나 믿어야 산다는 것만은 분명히 각인시켜 주고자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안 믿어도 괜찮은 것입니까? 안 믿어도 그의 선택이기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면서 그들의 영혼을 걱정조차 안하시지는 않습니까? 그들의 영혼을 위한 큰 근심과 끊이지 않는 고통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바울처럼 말입니다.
(2) 둘째로 사도 바울의 큰 근심은 우리의 동족들의 구원을 위한 안타까운 가슴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가 도전합니다. 한국에 있는 동족들, 북한땅의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 모두는 염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는 특별히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동포들,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을 염려하는 가슴이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는 모든 Korean-American들이 구원을 얻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염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이 아침 드리고 싶은 것은, 입으로는 믿지만 삶으로는 믿지 않는 죽은 믿음을 지닌 사람들의 생명을, 저는 목회자로서 크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인 크리스챤들만큼 열심히 기도하는 민족들 없을 것입니다. 미국사람들 보고 새벽기도 하라면 "Are you crazy?"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한국사람들 열심히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 흩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살아가는 죽은 믿음의 사람들이 특별히 Korean-American 가운데는 많은 것 같습니다. 차라리 예수 믿는다는 이야기를 안하면 좋으련만, 예수 믿는다고 큰소리 치면서도 삶은 엉망이니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만 망신당하면 좋겠는데, 예수님까지 망신시키니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입술만의 한인 동포 크리스챤들,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만큼 간절하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바울만큼 크게 염려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 걱정해야 합니다. 이름만의 Korean-American 크리스챤들이 온전함에 이르도록 염려해야 합니다. 머리만이 아니라, 생각만이 아니라, 손과 발로, 그의 삶 전체가 참으로 구원받은 백성의 삶에 이르도록 염려해야 합니다. 주일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주간 중에도,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크리스챤의 삶을 살아가도록 염려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그 가슴, 큰 근심의 가슴을 지니고 말입니다.
(3) 셋째로 저는 조금 더 범위를 넓히고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이 미국이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 모두는 염려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그 가슴으로 염려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살게 된 것이 단지 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신다면, different story, 다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우리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미국을 위하여 염려해야 합니다. 이나라 이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걱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내가 선택한 이 땅의 황무함을 고통으로 느껴야 합니다.
오늘 이 땅의 백성들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물질주의, 상업주의의 물결은 백성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고 있습니다. 필라델피아에 계신 Tony Campolo 목사님이 쓰신 Wake up America!(미국이여 깨어나라!) 라는 책의 서두에서 목사님은 미국사회의 문제를 예리하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비주의 사회, 계속되는 상업광고는 인간들로 하여 인생의 만족을 은연중 더 많은 소유, 더 많은 소비에서 찾도록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영적 차원의 갈망을 물질적인 소유나 단순한 entertainment에서 해결해 보려고 헤매입니다. 이것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이 지닌 착각입니다. 오해입니다.
많은 부부들이 조금 더 좋은 자동차, 조금 더 좋은 집에서 살면 조금 더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고, 조금 더 벌려고 바쁜 세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 더 큰집의 mortgage, 조금 더 좋은 자동차의 payment를 위해서 조금 더 많이 일하기도 합니다. 물질주의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상업주의, 소비문화에 세뇌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더 많이 소비해야 더 많이 산업이 발전되고, 산업이 발전되어야 실업자도 줄고, 소득도 많아질 수 있다고 주장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소득이 많아진다고 해서 그만큼 더 행복해 지겠습니까? 저는 언젠가 저희 교우 한 분이 제기했던 질문을 잊지 못합니다. 목사님, 오늘 우리는 100년 전의 사람보다 훨씬 더 넉넉하고 훨씬 더 편하게 살아가는데 그때 사람들보다 그만큼 더 행복할까요?
물질적인 충동이 채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이 채워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영적인 욕구를 채워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착각 속에서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들의 영혼을 염려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땅, 미국, 그리고 이니라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서 큰 근심을 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말입니다.
III.
다음 주일은 우리 교회 설립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저는 이 뜻깊은 주일을 앞두고 오늘 본문 말씀이 주는 멧세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사랑하는 자녀들의 영혼을 걱정해야 합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염려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족보가 끊기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한인 community, 우리의 동포들을 염려해야 합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걱정해야 합니다. 특별히 생각으로만 믿고 손과 발이 따르지 않는 사람들, 입으로만 믿고 삶으로는 살지 않는 반쪽 그리스도인들, 아니 죽은 믿음을 안고있는 오늘의 많은 Korean-American 크리스챤들을 참으로 염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 미국을 깨우기 위하여 우리 모두 염려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미국을 염려하는 교회로 뿌리 내려가기를 원합니다. 한국사람들 끼리 모여 예배 드리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미국사회에 담을 쌓고 살아갈 것입니까? 50주년을 맞으며 우리는 이 땅, 미국을 깨우고, 이 땅의 백성들, 세계 각 곳에서 모여온 이 백성들을 복음 안에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교회로 자라가야 합니다.
이런 교회로서 우리는 적은 것부터 시작해 가면 좋겠습니다. 우선 Korean-American 크리스챤으로서 최소한 법을 지키는데는 선수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법이란 사회를 지탱해 가는 최소한의 규범입니다. 거창하게 하나님의 법을 말하기 전에 Korean-American 크리스챤들은 나라의 법부터, 세금법을 포함해서, 정직하게 지켜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땅이 힘 때문에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럼이 없는 백성들이 되도록 기도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금번 9.11 테러참사 이후 ABC Nightline이 한번은 왜 미국이 세계 속에서 미움을 받는가? 라는 문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중동지역 나라들에서 이 문제에 대한 답변들을 소개하고 또 NJ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가 끝난 후, 교인들을 모아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대단히 복합적인 이유로 미국이 미움을 받는데,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 그리고 회교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들이 머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서 스쳐 지나갔지만, 다국적 기업에 의한 경제적인 식민지화 같은 문제들이었습니다. 특별히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다른 나라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밀어 부친다는 이야기도 문제가 되어졌습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담배 판매가 점점 어려워지는데,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3세계에서는 열심히 파는 것 과연 양심적인 것입니까?
테러의 참사를 일으킨 범인들,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무고한 생명과 재산의 피해를 가져온 범법행위는 정의롭게 응징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서 우리는 왜 미국이 미움을 받는지? 왜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왜 테러의 대상이 되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 다시는 테러가 일어나지 않도록, 이 나라 미국이 세계의 모든 백성들로부터 감사와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되도록 하는 이일을 우리는 염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이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치 않도록 걱정해야 합니다.
새로운 역사는 언제나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제는 한인 그리스도인들이 염려해야 할 때입니다. 크게 걱정해야 할 때입니다. 자녀들, 한인동포들, 그리고 미국의 구원을 위해서 마음 아파하면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그 가슴을 안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그 큰 근심을 이제는 우리도 해야할 때입니다.
* 나눔과 적용을 위한 질문
1. 내게 자녀들의 영혼을 위한 큰 근심이 있습니까? 무엇을 어떻게 염려하고 있습니까?
2.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 이 나라 이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바지 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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