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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9.9. 진급 및 교사 임명예배/워싱톤서(19) - 조영진 목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로마서 8:28-34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서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을 누가 정죄하며 누가 대적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로마서 8장은 로마서 전체에서 가장 힘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말씀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삶으로, 성령님이 함께 하실 때 임하는 승리와 능력의 삶을 사도 바울은 8장을 통하여 감격스럽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세 가지 탄식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피조물된 자연세계의 탄식, 그리스도인된 우리들의 탄식, 그리고 마땅히 구할 바를 알지 못하는 인생들을 향한 성령님의 탄식소리를 살펴 보았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들으신 후 무언가 좀 달라진 것이 있으십니까? 자연세계의 탄식 앞에서 쓰레기를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해 보려고 노력해 보셨습니까? 힘들고 고통스러운 탄식 속에서 살아가지만 희망을 새롭게 찾아 보셨습니까? 나를 향한 성령님의 탄식 소리 앞에서 깊이 생각해 보셨습니까? 내 삶을 주님의 뜻에 따라 새롭게 바꾸어가기 위해서 계획을 좀 세워 보셨습니까?

설교 한번하고 너무 재촉한다고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교우 여러분, If not now, when?(지금이 아니면 언제 시작하실 것입니까?) 아무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후회만은 하시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I.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 보십시다. 먼저 8:29이하의 말씀을 보면 우리 가운데서 이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8:29, 30절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5가지 중요한 단어들을 발견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이란 말 속에 나오는 예지, 미리 아심이고, 둘째는 "미리 정하셨다"는 말인 예정, 셋째는 부르심, 넷째는 의롭다하심 그리고 다섯째는 영화롭게 하심입니다. 이 부분은 예정교리의 황금의 연쇄로 불리웁니다. Warfield 교수 같은 분은 구원의 이 다섯 단계를 "끊어질 수 없는 다섯 개의 고리로 이루어진 금사슬"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 저는 이 아침에 예정론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을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정론이 강하게 외치는 한 멧세지에 우리 모두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역사 속에 나타나는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조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역사이기에 받는 우리들에게는 전적인 은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미리 아셨고, 정하셨고, 부르셨고, 의롭다 하셨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구원의 과정은 하나님의 행동,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행하신 은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미리 아셨고, 정하셨고, 부르셨고, 의롭다고 하셨으며,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은혜의 역사를 행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역사의 주인공이십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는 모두가 동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은 하나의 개념이 아니십니다. 추상적인 이론의 주인공도 아니십니다. 그분은 살아계셔서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며, 영화롭게 하신 분이십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먼지에 불과한 미미한 저희들을 기억하시고 우리들을 건져내시기 위해 오늘도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이 은혜의 역사 앞에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건져주신 이 은혜 앞에 어떻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맹송맹송한 채로 세월을 보낼 일이 아닙니다. 참으로 이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깨닫고, 체험해야 할 때입니다.

II.

이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게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 그 은혜와 깨달음 앞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좋은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1) 먼저 "모든 일"이 선을 이룬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일만이 아닙니다. 궂은 일도, 고통스러운 일도 하나님 안에서는 선을 이룹니다. Augustine 같은 사람은 "성도의 죄까지도 저의 구원에 유익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선을 이룹니다. 고통도, 실패도, 쓰라린 패배도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저는 이 사실을 삶의 고통스러운 경험 속에서 깨달은 적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제가 1966년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을 지원, 시험을 봤을 때입니다. 고등학교 들어간지 두 달만에 자퇴를 하고 독학을 한 저는 이 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신체검사에서 폐결핵이 상당히 진행 중인 것이 발견되어 합격이 취소되었습니다.

연세대학교 백양로를 걸어나오면서 저는 많이 울었고 또 하나님께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합격이 되지 않게 해주시지,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게 해주시고 며칠 뒤에는 보류도 아니고 합격이 취소되게 하시니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붙었다가 취소된 것이 제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 뒤에 저는 좋다! 짧게 살아도 굵게 살자고 열심히 봉사하고 교회를 섬기다가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요양원에 가서 6개월 여를 쉬었지만, 결국은 외과적인 치료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갔는데, 돈이 없으니 수술 받을 길이 막연했습니다. 그런데 고향 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만난 세브란스 병원 원목께서는 제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사실을 들으시고는, 이 사실을 근거로 사회사업과의 도움을 받도록 소개해 주셨습니다.

시험 보았다가 합격이 취소될 당시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20개월이 넘어서야 그 합격 취소가 어떤 의미를 갖게되는 지를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 좌절, 그 처절함도 합동하여 선을 이룸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 그런데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의 의미를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선"을 이룬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모든 일이 다 잘된다는 의미입니까? 무엇이 선입니까?

어떤 분들은 이 말의 의미를 만사 형통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사형통이란 말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잘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김진홍 목사님의 말씀처럼, 진정한 만사형통은 되어야 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되는 것이 만사 형통입니다.

모든 일이 선을 이룬다는 이 말씀 속에서 "선"이란 하나님의 뜻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어지는 8:29, 30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결국 모든 일이 선을 이룬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이 우리의 구원을,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한다는 뜻을 갖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성공이든 실패이든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룹니다. 모든 일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인생의 가장 좋은 길을 아시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III.

이제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이같이 놀라운 은혜 앞에서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좀 더 긴 안목으로 오늘의 문제들을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실패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 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 괴로운 일들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 속에서 선을 이루는 과정은 시간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끈기있는 기다림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에 빠져서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오늘의 고통에 노예가 되어서,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주저앉아서는 안됩니다. 오늘의 고통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내일이 있음을 기억하고,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오늘의 문제를 보다 긴 안목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중국의 고사성어에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대로 풀면 변방 새, 늙은이 옹 자이기에 변방에 살던 한 노인이 기르던 말의 이야기입니다. 중국 북방에 점술에 통하는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르던 말이 도망 가버렸습니다. 이웃사람들이 찾아와 위로를 하니까 노인은 말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복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과연 몇 달 후 이 말은 다른 좋은 말 한 마리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를 보고 축하하자 노인은 말했습니다: "이 일이 어찌 재앙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말타기를 즐기는 아들이 그 말에서 떨어져 허벅다리가 부러지면서 그만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이 노인을 위로했습니다. 노인은 이번에도 말했습니다: "이 일이 어찌 행운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일년이 지난 후, 북방호인들이 이 마을을 쳐들어 왔는데, 이 마을의 젊은이들은 싸움터로 나가서 싸우다가 많이 죽었는데, 노인의 아들은 불구자였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만사는 새옹지마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옹지마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좀 멀리 내다 보아야 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영원을 내다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혹은 운명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 사랑 안에서 모든 일이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선의 의미, 그 내용도 물론 다릅니다.

어쨌든 우리는 오늘에 매이는 포로의 삶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좀 더 긴 안목에서 오늘을 보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2) 둘째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확신 위에 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8:31 이하의 말씀은 이 사실을 증거해 줍니다.

이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네 가지 질문을 묻습니다. 첫째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b)이고, 둘째는 8:32절 말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입니다. 셋째 질문은 8:33절 말씀, 누가 우리를 송사할 것입니까? 이고, 네 번째 질문은 8:34절 말씀, 누가 하나님의 백성을 정죄하겠습니까? 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이 말씀은 장로교회를 세우신 Calvin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셨던 말씀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고소하고 정죄할 것입니까?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좀 심각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는 이 일이 보통 일 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 일이 보통 일입니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시든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모르시든지, 바로 깨닫지 못하시니까 그렇지, 이 일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일입니다.

이 믿음, 이 깨달음 위에 서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 위에 서면 우리는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음 위에 서면 우리는 기쁨과 감사가 샘솟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고난, 어떤 어려움, 어떤 실패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담대히 역경의 물결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Baltimore에 있는 Johns Hopkins 의과대학 병원의 유명한 소아 신경외과 의사인 Ben Carson의 이야기를 쓴 Gifted Hands 라는 책을 읽으면서, 저는 그의 인생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앞에 진한 감동을 느껴보았습니다.

디트로이트 시내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Ben은 8살 되는 해에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홀어머니 밑에서 형 Curtis와 함께 자랐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국민학교 3학년 정도 밖에 공부를 못했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두 아들을 훌륭히 키웠습니다. Ben은 처음부터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반 친구들로부터 Dummy라는 조롱을 받으며 자랐는데, 무료로 안경을 받아 끼게 되면서 학습에 의욕을 갖게 되었습니다. Ben의 어머니는 일찍이 두 아들에게 TV Program은 일주일 두세 편만 보게 하고 늘 도서실에 데리고 가서 1주일에 두 권씩 책을 읽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불평이 많았지만, 엄마의 말씀처럼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지식의 세계를 헤쳐갈 수 있음을 뜻하기에 점차 학교 공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그도 청소년기에 한번 삐끗한 때가 있었습니다.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 때문에 한번은 함께 Radio를 듣던 친구가 channel을 바꾸자 화가 나서 칼을 꺼내서 친구의 배를 찔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칼이 친구의 ROTC 허리띠의 buckle과 부딪치면서 친구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당황한 Ben은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에 틀어박혀 이 엄청난 사건을 돌이켜보며 탄식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Ben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며 평화를 주십니다. 그 이후 그는 마음 속에 쌓인 분노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될 꿈을 안고 Yale 대학교에 입학, 공부를 합니다. 첫 학기 화학공부를 하는데, Detroit 시내 가난한 동네에서 smart boy로 이름을 날린 그였지만,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 그곳에서 색다른 공부 style 때문에 그는 고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기말 시험이 내일로 다가왔는데 그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평소처럼 암기하는 것으로는 턱도 없었습니다. 내일 시험을 망치면 의사고 뭐고 다 때려치워야 하는 절대절명의 시점에서 그는 주님께 또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다가 잠이 듭니다. 그런데 꿈에 그는 출제된 여러 화학문제들을 풀게 됩니다. 이상하게 여긴 그는 깨어나자마자 그 기억을 더듬어 문제를 적고 다시 풀어봅니다. 학기말 시험지를 보았을 때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꿈에서 풀었던 문제가 그대로 출제된 것입니다. 그는 화학과목을 97점, 최고의 점수를 받고 마치게 됩니다.

그의 책 속에는 이 같은 좌절, 절망의 순간들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Ben은 이 화학과목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들어 주심을 확신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사가 되는 길을 열어주고 계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Ben Carson은 여러해 전 머리가 붙은 쌍둥이의 분리 수술을 성공적으로 집도해서 온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늘 수많은 African-American 청소년들의 Role Model로 존경을 받으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 속에 행하신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셨고, 택하셨고, 부르셨습니다. 부르신 우리들을 의롭다고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에 참여한 우리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고난이든, 실패이든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니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 감사할 일입니다.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니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 적용을 위한 물음

1.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함께 나누십시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를 갖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실 때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