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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8.19. 김상근 목사
황수관 박사와 한바탕 웃기 전에
마가복음 1: 12-13
오늘 우리는 광야에 서 계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받으셨고, 들짐승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셨습니다.
사무치는 외로움과 처절한 고독을 감내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모진 고초를 인내하고 계실 때 또 누가 그분 옆에 있었습니까?
천사들이 수종들더라"고 오늘 본문 말씀은 끝나고 있습니다.
예수님 곁에서 천사들이 수종 들었습니다.
광야에 서있는 우리 이웃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아십니까?
무엇이 가장 큰 슬픔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삶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하는 우리 이웃은 광야에 서서 사단에게 시험받고 들짐승 같은 현실 앞에 주눅든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 광야에 서있는 이웃들에게 "수종드는 천사"가 되십시다.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황수관 박사와 한바탕 웃기전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한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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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께 간절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만 좀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설교가 조영진 목사님 7월 8월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 제가 여러분께 하는 마지막 설교입니다. 좀 불편하시더라도 오늘 하루만 인내하시면, 저나 여러분의 고생이 이제 곧 끝날 것입니다. 솔직히 지난 두 달간, 조 목사님이 안 계시는 동안 교회를 섬기면서 저는 한가지 분명히 결론을 내린 것이 있습니다. "목회라는 게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받은 은사대로 주님과 교회를 섬겨야 하는 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목회나 특별히 설교에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불편하시더라도 오늘 하루만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
제게는 연합 감리교회와 장로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친구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저보다 목회경험이 많기 때문에 저는 목회현장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전화로 그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하곤 합니다. 한번은 제가 목회나 설교에 소질이 없다고 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까 그 친구가 제게 이런 위로를 했습니다. "김 목사, 너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설교가 뭔지 알아. 그건 말이야, 교인들이 예배를 마치고 교회 주차장에서 자기 차에 올라 앉았을 때, '오늘 우리 목사님이 무슨 설교를 했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설교가 제일 잘한 설교야. 교인들이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설교가 제일 잘한 설교야, 왜냐하면 그래야 똑같은 설교를 다음에 또 써먹을 수가 있거든."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만 인내하시고 빨리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의 설교 제목은 "황수관 박사와 한바탕 웃기 전에"입니다. 이런 황당한 설교 제목하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하고 어떤 관계가 있느냐? 황수관 박사하고 마가복음 1장하고 어떤 관계가 있느냐? 죄송하지만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럼 왜 제가 이런 설교제목을 잡았느냐? 그 답을 아시려면 여러분이 먼저 저의 질문에 답하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 중에,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서 계십니까? 예수님은 오늘 광야에 홀로 서 계십니다. 철저한 외로움과 사무치는 고독 속에서, 사단에게 시험받으시고 계십니다. 들짐승과 함께 Wild Beast와 함께 계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철저한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배고픔과 목마름을 참고 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예수님은, 낮 동안의 뜨거운 태양아래서 가쁜 숨을 몰아 쉬다가, 어두운 밤과 함께 찾아오는 살을 애는 추위에 벌벌 떨고 계신 광야의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새까만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이 예수님의 밤을 지켜보고 있었고, 이슬 맺은 바위에 웅크리고 누워서 새우잠을 청하는 고독과 외로움의 사나이,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 우리는 만납니다.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철저한 고독 속에서, 사무치는 외로움 속에서 예수님은 40일을 견디셨습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자주 광야의 시련과 연관되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간의 방랑생활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홍해를 무사히 건넜을 때, 애굽 군사들의 추격을 따돌렸을 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했습니다 - "고생 끝, 행복 시작."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4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광야의 방랑, 끊임없는 전쟁, 배고픔, 정치적 혼란, 그리고 종교적 방황이었습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났을 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Promised Land가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약속의 땅은 고사하고 40년간의 광야생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광야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육적인 의미에서의 약속된 땅에 이르기 위해서 밤낮으로 고된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용어로 말한다면, 소위 American Dream을 이루기 위해서 밤낮으로 고된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밤늦게 차를 몰고 가다가 불이 켜져 있는 빌딩을 보면 착잡한 마음이 듭니다. 저 빌딩 안에서 걸레와 총채를 들고, 큰 쓰레기 통을 끌면서, 무거운 공업용 베큠을 밀면서 청소하느라 땀흘리는 우리 한국 동포들이 있겠지. 저는 밤에 빌딩 청소하시는 분들의 애환을, 그 분들이 어떻게 힘든 이민 생활을 견뎌 가시는 지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분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했던 유학생시절 아틀란타에서 하루에 네 시간씩, 이년간, 빌딩청소를 했습니다. 입에서 단내가 팍팍 나도록 뛰어 다니는 힘든 광야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래봐도 한때는 아틀란타를 휩쓸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문제는 우리가 광야에 서있을 때, 철저한 고독과 외로움에 처해 있을 때, 척박한 이민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에, 우리가 처해 있는 위치를 잊어버리고, 가야 할 방향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광야에 무슨 길이 있으며, 광야에 무슨 이정표가 서 있습니까? 우리는 광야에서, 고독과 외로움에 처해 있을 때, 생존의 문제에서 허덕이다가, "과연 내가 누구인가"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를, 그 Identity를, 잊어버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극단의 외로움과, 철저한 고독 속에서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누군가를 잊어버릴 뿐 아니라,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저 멀리 어디엔 가에, 분명히 약속된 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삶은 고독합니다. 광야의 삶은 외롭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광야의 삶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게 할 뿐 아니라 저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약속의 땅이 있음조차도 잊어버리게 합니다.
하지만 벌판에 서있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보다 먼저 광야에 서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광야에서 시험받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광야에서 들짐승 Wild Beast들에게 어려움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절망을, 우리들의 고독을, 우리들의 외로움을 잘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고독하셨고, 우리와 똑같이 외로움을 견디셨고, 사탄에게 시험 받으셨고, 들짐승 같은 나쁜 사람들에게 고초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한계를,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우리들의 부족함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도 우리와 똑같이 유혹 받으셨고 고난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짜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부터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철저한 고독과 사무치는 외로움을 묵묵히 견디시는 동안, 그 광야에 누가 있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 주위에 사탄이 있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 주위에 들짐승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또 예수님 옆에 있었습니까? 13절입니다. "광야에서 40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시험받으실 때, 모진 들짐승들에게 쫓기며 고난받으실 때, "천사들" 이 옆에 서서 예수님께 수종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 살아가시면서 이런 천사를 만나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현실 앞에서, 두 무릎을 지탱할 힘을 잃고 쓰러졌을 때, 천사같은 식구가, 천사같은 친구가, 천사같은 교인이, 천사같은 목사님이 여러분 곁에 묵묵히 서있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멕시코 단기선교 때의 일입니다. 첫날 밤 전도집회를 시작하기 전이었습니다. 선교단원들은 기억하시겠습니다만, 첫날 밤 설치해놓은 서치라이트 때문에 체마시 마을에 있는 모기들이 총 출동을 해서 단상에 오를 준비하고 있던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저 단상에 서면 오늘은 완전히 저 모기들에게 헌혈하는 날이구나,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 선교단원 한 명씩 한 명씩 제게 와서 인사를 하는 데 그 손에는 모두 모기 쫓는 스프레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네 분이 차례로 제게 찾아 오셔서, "목사님 뿌리시지요." 마지막에 한 자매님은 한국에서 가져오신 모기향까지 준비해 오셔서 제게 주셨습니다. 그 모기약을 들고 찾아 오셨던 분들은 제가 들짐승들에게 둘려 쌓여 있을 때 저를 도와 주셨던 천사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삶을 괴롭혔던 들짐승같은 인간들이 아니라, 사단과 같은 사악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의 고단한 삶의 곁에 서서 수종들었던 천사같은 분들을 만난 경험이 있으십니까?
저는 1993년에 그런 천사같은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1993년 저는 South Carolina의 수도 Columbia 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제 둘째 동생 도근이가 2년간의 도피생활을 접고 국가보안법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한국으로부터 전해들었습니다. 동생이 소위 운동권이 된 것은 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제 동생 도근이는 참 착한 아이입니다. 언젠가 도피생활을 하고있을 때 부산의 모 식당에서 감시를 피해 잠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도피생활에 지쳐서 몰라볼 정도로 여위었고, 영양이 부족해서 얼굴에 흰 버짐 같은 것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돼지갈비를 시켜서 먹였습니다. 고기를 한 두 점 집어먹더니, 젓가락을 놓으며 동생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님아, 니 돈좀 있나. 혼자 묵을라까이께네 안 넘어간다 아이가. 돼지갈비 10인분만 좀 시키도. 내 때문에 친구들도 같이 고생하고 있는데 글마들 나두고 내 혼자 묵을 수 없다. 행님아 고기 좀 사도. 내 친구들하고 갈라 묵을 란다." 그리고는 싸준 고기봉지를 들고 어둠속으로 조용히 사라지던 참 착한 아이였습니다. 저는 그런 착한 아이가 빵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당시 출석하고 있던 콜롬비아 한인감리교회에 기도를 하러 갔습니다. 그때 저는 천사같은 분을 한 분 만났는데 그분은 지금 하와이에서 목회하고 계신 유양진 목사님이십니다. 그 분은 참 유별나신 목사님이셨습니다. 싸우스 캐롤라이나 콜롬비아에서, 그 시골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일주일간 금식기도를 하시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 분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그 때의 절망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를 격려해 주시면 같이 감옥에 있는 동생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던 목사님의 음성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저의 생활이 어려움을 아시고 자기 집 냉장고에 있던 음식을 전부 꺼내서 제게 주시던 사모님의 천사와 같던 손길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한가지만 더 할까요? 제게는 지성업이라는 참 좋은 친구목사가 있습니다. 지금은 LA의 밸리한인연합 감리교회에서 부목사로 계신데 5-6년 전에 이 교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분입니다. 저는 그 지성업 목사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천사같은 사람"이라고 항상 소개합니다. 대학 3학년 때, 군복무 3년을 마치고 복학한 저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당시 1980년대에 서울에서 버스를 타려면 회수권을 사용했어야 하는데 학교 구매매점에서만 판매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한 달에 사용할 수 있는 회수권을 한번에 다 사게 되어있었습니다. 제 친구 지 목사는 한 달에 한번씩 회수권을 살 때 꼭 저와 같이 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돈으로 산 한달 치 회수권을 어림 잠아 반으로 뚝 자른 다음, 그 반을 제게 주었습니다. 그 때, 지 목사는 제게는 "천사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아내에게 이런 큰 소리를 칩니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봐라 그래."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왜냐하면, 제는 살아온 짧은 삶을 통해서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참 많은 사랑의 빚을 졌는데 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마다 제 곁에 서 있었던 "천사같은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이제 나도 그 사랑의 빚을 갚아야겠다. 혹시 내 주위에 절망과 외로움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이웃의 옆에 서야겠다. 사단에게 시험받고 들짐승같은 척박한 현실에 쫓김을 당하는 내 이웃이 있다면 달려가겠다, 그런 결심을 해 봅니다.
진짜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부터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여러분께 드린 말씀은 다 잊어버리셔도 됩니다. 그래야 제가 다시 써먹죠. 하지만 제가 지금부터 드릴 호소의 말씀에 귀 기울려 주십시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외로움과 절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단에게 시험받은 삶, 들짐승같은 현실에 항상 쫓기는 삶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왜 우리는 광야에서 사무치는 고독과 절박한 외로움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까?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은 무엇입니까? 좋은 차를 타지 못해서? 좋은 집에 살지 못해서? 출세하지 못해서? 아닙니다. 그 것 때문이 아닙니다.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 그 사람은 인생의 가장 큰 비극에 빠져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저는 Full Time 목회 두 달만에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제 겨우 Full Time 목회 두 달만에 저는 네 번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대니를 잃고 그 어머니가 눈물로 쓰신 간증문을 읽으며 저도 같이 눈물 흘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장로님, 깨끗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던 상우를 천국으로 보내고 하염없이 눈물흘리시던 상우 어머니, 한국에서 방문오셨던 아버님을 졸지에 여의셨던 김혜란 집사님의 가족들을 보면서, 우리 믿음의 식구들이 그 극단의 비탄과 절망을 신앙으로 극복해 가시는 것을 곁에서 보면서, 역시 다르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이렇게 다르구나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주위의 불신자들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셔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 절망과 고독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인생이 걸어야 할 참된 길을 잊어버리고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들짐승 같은 현실 앞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그 불쌍한 영혼을 "수종드는 천사"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교회는 황수관 박사 초청전도 집회를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는 토요일의 집회를 위해서 각 속들은 전도 대상자를 정해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중보 기도시간에 전도 대상자들의 이름을 정해 놓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호소드립니다. 죽어가는 이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기도에 동참하는 천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황수관 박사와 한바탕 웃기전에, 그 죽어가는 영혼들, 예수님을 모른 채 광야의 삶을 살아가는 그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천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황수관 박사와 한바탕 웃기전에, 그 불쌍한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리는 천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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