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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8.5. 김상근 목사

첫 월급을 받은 날

마가복음 10:17-27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어떤 부자가 예수님께 달려와 꿇어앉아 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 부자는 계명을 충실히 지키던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예수님은 "네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는 부자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답을 실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슬픈 기색으로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뿐 아니라 부자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김상근 목사입니다. 아직도 제가 누군지 모르는 분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김상근 목사입니다. 지난달부터 와싱톤 한인교회의 새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는데 주제넘게 오늘도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벌써 네 번째 주일 설교를 맡게 되었는데, 참 죄송스럽습니다. But Please don't blame me. 설교하는 저도 힘들지만 제 설교를 듣는 여러분도 참 힘드시겠다 싶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조 목사님 건강회복을 위해서 자꾸 기도하자고 하지 않습니까? 조 목사님이 빨리 돌아오셔야 그것이 제가 살고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이주 전 주일날, 은혜롭게 전교우 수양회를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새신자 환영 전화를 드리기 위해서 늦은 시각에 교회 사무실로 나왔습니다. 사무실의 불의 켜고 제 책상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제 책상 위에 흰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열어 보니, 저의 첫 달 Pay-check이 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딴 길로 샜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13년간의 징글징글한 신학 공부를 마치고 첫 Full-time 목회지에서 첫 월급을 받은 겁니다. My first pay-check! 참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여러분, 첫 월급 받은 날을 기억하십니까? 한국에서는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속옷을 사주는 풍습이 있죠?

따지고 보면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것이 제게는 뭐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목사님이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교회에서 주는 사례를 받아 살아온 셈입니다. 한국에서 아버님이 목회를 할 때 교인들이 저희 식구들에게 무얼 자주 갖다 주곤 하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직 교회당에서 새벽기도를 하고 계실 때, 기도를 마친 교인들이 사택에서 잠들어 있는 절 깨우시고는 "이거 우리 밭에서 익은 첫 호박인데 목사님 드리래이."” 심지어 어떤 분은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를 갖다 주시면서, "이놈이 이번에 우리집 어미개가 놓은 7마리 중 첫 놈인데 토실토실 잘 키워 가지고 올 여름에 푹고아 드시라 케라이."”

저는 교회 사무실에서 그 Pay-check을 들고 우두커니 서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들 중에 하나는, 이제 제가 마침내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지난 4년간 학교에서 생활비로 살았는데 프린스턴과 코넬에서 각 12,000불 씩 받았습니다. 학비가 면제되니까 둘이서 1년에 2만 4천불로 지난 4년간 살은 셈입니다. 맨날, 1로 시작되는 Check을 받다가 2로 시작되는 제 Check을 받으니까, 이게 "따불"이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항상 '따불'로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지난주 마침내 제 처도 가르치고 있는 코넬대학에서 첫 Pay-check을 받았습니다. 제가 슬쩍 물어보니까, 제가 교회에서 받은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엄청난(?)”금액이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아내보다 작게 번다고 생각 하니까 두 가지 기도가 되더라구요. 첫 번째는, "주님, 쫀심이 무지 상하나이다."”그리고 두 번째는 "주님, 그래도 이게 웬 떡입니까? 저는 '따불'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따따불'”이군요." 어쨌든 저는 이제 부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우리교회 교인들이 제가 부자라고 하니까 자꾸 웃으시는 데, 여러분이 왜 웃으시는 지 잘 압니다.

제가 마침내 부자가 되었다고 처음 생각이 드는 순간 처음 떠오른 성경말씀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입니다. 부자 청년에 대한 이야기지요. 솔직히 제가 처음 와싱톤 한인교회에로 파송이 결정된 다음 처음 떠오른 말씀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입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리라."

저는 이 본문말씀에 나오는 부자관원을 생각하면, 우리 와싱톤 한인교회의 전형적인 교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늘 읽은 마가복음에서는 "부자"로 묘사되었지만, 누가복음(18:18)에는 "부자관원"”Rich Ruler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19:20)에는 "청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합하면, 교육을 많이 받고 자기 캐리어에서 성공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Confident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우리 교인 중에 많은 분들이 이 사람과 같이 교육을 많이 받고,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 대접을 받는 분들이십니다. 부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와싱톤 한인교회 교인들에게 참 듣기 거북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도대체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오늘 말씀의 등장인물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자일 뿐 아니라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착실히 준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9-20절 말씀을 보면,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착실히 준수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와싱톤 한인교회 교인들도 그렇습니다. 처음 온 제게 교인들은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우리교회 교인들은요, 참 Nice하고 Gentle해요. 신앙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항상 상식이 통하는 분들이지요."”

그런데, 이 Nice 하고 Gentle 한 부자에게 예수님은 충격적인 요구를 하십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 와싱톤 한인교회 교우님들께 하시는 요구의 말씀인지 모릅니다. "네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21절)

그 부자관원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신앙생활도 잘하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Nice 하고 Gentle 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여러분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여러분들처럼 부자였습니다.

남부러울 것이 없는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는 오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가 살았던 불운의 시대가 저를 그렇게 이해하도록 강요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모든 부자들을 한국 땅에서 싹쓸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던 위험하지만 낭만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뭐 그렇게 심각한 소위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신학생으로서, 가난하고 억눌린 민중들의 아픔에 동참하겠다는 의미에서 1983부터 군대 갈 때까지 서울 난지도 쓰레기 하치장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난지도에는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플라스틱이나 병을 주워 팔던 600 가구 정도의 넝마주이들, 속칭 양아치들이 살았습니다. 신학생시절, 저는 그 곳에 살면서 밤에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을 모아 놓고 야간학교를 열었습니다. 서울 서문교회 대학부 학생들과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교사로 자원해 주셔서 함께 난지도 야학을 이끌었습니다. 난지도 시절의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저도 설교 밑천을 좀 아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제 동생이 난지도에 사는 형을 보고 나중에 진짜 골수 운동권이 되어서 결국에는 나중에 2년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감방살이를 했습니다.

어쨌든 그 시절 저는 부자들을 미워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은 저는 아예 그 바늘로 낙타가 죽을 때까지 자꾸 찔러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당시에는 국민윤리라는 희한한 과목이 필수 과목이었습니다. 독재정권을 유지하고 학생들의 사상적인 탐구를 방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쓸데없는 과목이었습니다. 항상 그 시간에 결석을 했는데 마지막 시험날이 다가왔습니다. 시험치는 교실에 가서보니 문제가 뭐냐하면, "우리 나라의 실정에 비추어 Karl Marx의 공산주의 사상을 비판하라"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딱 한 줄만 쓰고 실험장을 나왔습니다. "Karl Marx는 비판할 것이 전혀 없음."”당연히 F를 받았지요.

난지도에서 그 가난한 이웃들과 살면서 제가 어떻게 주기도문을 외운 지 아십니까? "주님, 저희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안 주셔도 좋습니다. 일용할 비타민만이라도 주옵소서." 저는 그 순진했던 20대 시절, 부자만 미워한 것이 아니라 부자교회도 미워했습니다. 우리교인 중에 서울충현교회를 다니시다 오신 분이 있으면 참 죄송합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서울 충현교회가 강남에서 성전 건축공사를 한창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돈 100억인지 200억인지 들여서 교회를 건축하는 것을 저는 도저히 신학적으로 받아 들일 수 없었습니다. 내 가난한 이웃들은 배가 고파서 수돗물로 허기를 채우고 있는데, 교회 짖는다고 그 엄청난 돈을 써? 1982년, 서울 충현교회가 강남에서 한창 건축될 때 가끔씩 짱돌이 날아와서 교회당 유리창이 깨진 적이 한 두 번 있었을 겁니다. 그 범인이 누구냐?

저는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 배고파서 수도꼭지를 입에 대고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난지도 어린이들만 사랑하신다고 저는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좀 철이 들고, 성경을 좀 차분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니까,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중요한 구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본문말씀, 21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세상에 이럴 수가. 예수님께서 그 부자청년을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자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 때까지 저는 참 힘든 신앙생활을 한 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 생각에 맞추어 해석한 잘못을 한 셈입니다.

저는 오늘 사랑하는 교우여러분들과 예수님께서 이 부자관원을 사랑하셨다는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여러분과 같이 많이 배우시고, 성공하셨고, 또 성공하고 인정받고자 밤낮으로 애쓰시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여러분은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그냥 단순한 말치레가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은 진정코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여러분이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참 곤란한 요구를 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만, 21절 말씀입니다. "네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참 껄끄러운 말씀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예수님의 이 요구를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이 말씀 그대로 실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기 재산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서 거지에게 주고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섬겼던 St. Francis도 그랬고, 인도 남부지역에서 평생동안 선교하다가 그 곳에서 죽은 17세기 이탈리아 선교사 Roberto de Nobili 라는 분도 이 말씀대로 산 사람입니다.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소설에 보면 공 목사라는 분이 나오는데 실존인물입니다. 그 공 목사님도 실제로 자기 재산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성경 한 권만 달랑 들고 빈민선교를 시작하셨던 분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께 이런 극단적인 실천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저도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이 중요한 요구를 신학적으로 혹은 추상적으로 윤색을 해서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네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이 말씀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였습니다.”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 삶에 적응하느냐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 껄끄러운 예수님의 요구를 우리 삶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와싱톤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신 글을 읽어보니까, 그 목사님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말한 그 부자청년의 말에 주목하시면서, "내가 무엇을 해서"”영생을 얻으려고 한 그 부자청년의 자세를 비판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의 칼빈주의적인 해석이 정확한 해석이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 부자청년은 16세기 사람인 칼빈을 알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주신 대답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네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이 말씀은 실천의 문제입니다.

제가 이론과 실천의 문제를 분리하고자 애쓰는 까닭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여러분은, 이론의 문제는 더 이상 설교말씀을 들을 필요가 없는 분들이십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이론은 빠삭하신 분들입니다. 이 부자청년처럼 여러분은 사회적으로 성공하셨고, 또 성공을 이루어 가시는 분들이시며, 교회생활도 충실히 하시고, Nice하시고 Gentle하신 분들이십니다. 문제는 실천의 문제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오늘 분명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21절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부자청년을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데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은 자기 목숨까지 주셨는데 여러분은 예수님께 무엇을 주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듯이 예수님은 우리 이웃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신다면, 그러면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여러분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사랑, 사랑, 말로만 사랑말고, 이론적인 것 말고,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이 무엇입니까? 요한 복음 13장 34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최근에야 제자반 성경공부가 One과 Two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자 One과 Two 과정을 이수하셨을 겁니다. 이론적인 제자가 되시지 마시고 실천하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론을 말하면 참 근사해 보입니다. 여러분이 저보고 이런 저런 이론에 대해서, 고상한 신학적인,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설교를 하라면, 저도 남부럽지 않게 할 자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요 솔직히 그 이론에 질린 사람입니다. "실천"을 말하면 뭔가 세련되지 못한 것 같고, 뭔가 지적으로 뒤떨어진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부자청년에게 하신 말씀은 추상적인,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네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모두 실천의 문제입니다. "팔아라" "주라" "나를 따르라"”"아소로메우" Get behind me and follow me! 기억나십니까?

여러분, 가진 것이 많다고 자랑하지 마시고, 가진 것으로 남에게 베풀 것이 많은 참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부자는 가진 것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나누어 줄 것이 많은 사람이 부자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이론가가 아니었습니다. 그 예수님은 행동하는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실천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그 사랑을 실천하셨던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시는 예수님께서 이론에 밝은 그 부자청년을 보시면서, 아니 우리 와싱톤 한인교회 교인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청년에게, 바로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지금 실천을 명하셨습니다. 팔아라, 주라, 나를 따르라.”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실천을 요구 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론이 문제가 아니고 실천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