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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6.10. 워싱톤서(17) - 조영진 목사
하나님의 자녀들은
로마서 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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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갑니다.
오늘 나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수 있습니까? |
지난 주일 저는 8장을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이 내주하시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삶이란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8:9 하반절에서 선언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이같은 바울의 선언은 8장의 남아있는 말씀들 속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크신 사랑입니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인 된 우리 모두에게 임하는 Amazing Privilege, 놀라운 특권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온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이 소식, 정말 놀라운 일 아닙니까? 정말 감사한 일 아닙니까? 그 의미를, 그 은혜를 깊이 깨닫지 못하니까 시큰둥 하시지, 정말 깨달으신다면 이것은 정말 非보통 일입니다. 내 인생에 혁명을 가져다주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말씀을 지난 주일에 드렸습니다. 오늘은 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만,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I.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강조는 사도 바울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신약 전체의 멧세지이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11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았지만, 영접하는 사람,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오늘 본문 8:15에서 우리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아바, Daddy, 아빠가 되신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모두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요 한 형제와 자매가 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사람입니다.
언젠가 저희 딸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저를 목사라고 부르는데, 자신은 저를 Daddy라고 부를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하면서 다가와 Hug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야 별 볼일 없지만,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Daddy가 되신다는 것, 우리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고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 신앙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이는 신앙입니다. 인간이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음을 외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외치고 주장하는 이 기쁜 소식 보다 더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는 종교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삶의 선택이 아닙니다. 종교에 관심이 있기에 택하는 하나의 길 정도가 아닙니다. 취미생활 정도는 더욱 아닙니다. 문화생활의 한 길도 결단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됨은 진정한 나를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적인 인간의 모습, 존엄스러운 나의 참 모습을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II.
이같이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해주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은 바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이 아침 예배드리는 이 시간, 여기모인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오늘 우리 안에서 어떤 역사를 이룩하고 계십니까?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어떤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계십니까?
(1)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고 가까운 관계로 이끌어 주십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양자라고 하면 우리는 의붓자식이라는 단어가 갖는 어감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 로마의 문화적, 역사적인 배경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주후 1세기 당시 로마에서 입양된 아들은 부모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유산과 이름을 보존하기 위해 선택한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애정을 충분히 받아 누렸습니다.
성령님은 바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우리 안에서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두려운 분이 아니라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분, 우리가 Daddy라고 부를 수 있는 분임을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 이 아침 스스로를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느끼고 계십니까? 아직도 두렵고 피하고 싶은 분으로 느껴진다면, 우리는 자녀가 아니라 종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혀있는 담들이 있는 것입니다. 충분한 사랑의 관계에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깨우신 성령님의 역사와 인도하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바로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깨우쳐 주시며, 더 깊은 사랑의 관계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성령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케 해주십니다. 본문 8:16을 보십시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역사,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우리 영의 의식에 확신하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때문에 많이 고민했던 사람으로, 우리는 감리교 운동을 시작한 John Wesley 목사님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영국 Oxford대학에서 공부하고 성공회 신부가 되어서 Oxford에서 가르치기도 했고 또 선교사로 미국을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1738년 5월24일 Aldersgate 거리에 있는 조그만 교회에서 모인 기도회에서 성령님의 역사를 뜨거운 마음으로 체험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 가셨다고 고백하며 외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이 역사를 행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를 위한 십자가로 깨달아 지고 믿어지는 것, 성령께서 행하시는 역사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케 해주시는 것,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역사입니다.
(3) 세 번째로 성령께서 행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상속자들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자녀들이기에 우리에게는 물려받을 유산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생명과 영광의 그날이 있습니다. 성령께선 이 놀라운 미래, 우리 모두가 이어받을 영광의 그날을 믿게 해 주시고, 또한 깨우쳐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전합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고. 이 소망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고. 여기서 "보증"이란 말의 본래적인 의미는 Downpayment라고 합니다. 이 Downpayment에는 비록 잔금은 여러 해를 걸쳐 내겠지만, 이 집을 분명히 산다는 결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세계, 우리 모두가 상속받을 영광의 나라가 있음을 확실히 해주시기 위하여 성령님을 Downpayment, 보증으로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오셔서 우리가 상속받을 놀라운 유산,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있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땅에 매어 살아가지 않고, 영원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도록 우리를 가르치시고 일깨워 주십니다.
(4) 네 번째로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십니다. 본문 8:14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일깨워 줍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는 성령께서는 바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길을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을 정해 놓으신 후 저 높은 곳에서 팔짱끼고 가만히 앉아 계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의 삶 속에 오고 계시며, 그들 안에 거하시면서 그들의 인생을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님, 곧 그리스도의 영은 오늘도 가장 좋은 목자이십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야말로 내 인생이 최선의 존재가 되고, 최선의 길을 걸어가는 길입니다. 많은 경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따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는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란 저절로, 자동케이스로 걷게되는 길은 아닙니다. 본문 8:12,13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영으로 육신의 생각, 육신의 행동을 죽일 때 우리는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육신을 좇아 살아가는 길은 죽음, 멸망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영을 좇아 살게되면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생명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의 분별을 위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 첫째로 성령의 인도하심은 세상적인 성취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물론 세상적인 성취에 이를 수도 있지만, 그 성취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성취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으로 쓰여지게 하십니다.
2) 둘째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고통이 없고 평탄한 길보다는 옳은 길, 정의로운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고통이 없는 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정의로운 길, 옳은 길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정의로운 길이기에 고통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3) 셋째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에는 내적인 평안이 있습니다. 비록 염려하고 불안을 느낄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면 우리 영의 깊은 곳에서 내적인 평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험스러워 보여도 무언가 든든함이 느껴집니다. 한쪽 구석에는 불안스러움이 느껴지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평안이 우리 안에 주어집니다.
4)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그 길이 평탄하든지 혹은 고통스럽든지 그 길을 따르고자 먼저 결심하게 될 때 가장 분명히 드러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계획을 인준해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하려면 주님 앞에 백지 위임을 해야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라는 고백 위에 설 때 주님의 인도하심은 가장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III.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약속되어있지만,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영광에 이르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고난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영광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인도하심보다는 내 계획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하여도 어려운 길은, 힘든 길은 요리 조리 피해가려고 합니다. 이렇게 살기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생명의 삶, 흔들리지 않는 기쁨과 보람을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Terry Fox라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유난히도 농구를 즐기던 그가 18세 되던 해 그는 암이 발견되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게 됩니다. Canada British Columbia의 한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1977년 3월 그의 머리를 스쳐가는 한 생각을 그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Canada 암협회에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암연구 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절단된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전장 5,300 mile 되는 Canada 국토를 뛰어서 관통하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암협회는 Terry의 편지를 무시했습니다. 친구들도 그 제의에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Terry는 이 생각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처럼 약한 사람을 쓰셔서 수많은 사람들의 암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시려는 계획을 세우셨다고 확신했습니다.
Terry는 달리기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0.5mile을 가기도 힘들었지만, 8개월 동안 꾸준히 연습하여 하루에 23mile 까지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Garage Sale을 해서 약간의 돈을 마련해 주었고 동네 사람들도 소액의 성금을 내놓았습니다.
Terry는 100만 불을 모금할 계획을 세우고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1980년 4월12일 St. Jones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절단된 다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물집이 잡혔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관심을 가져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금이 들어오기는커녕 경찰서에서는 그가 교통에 방해가 된다고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Terry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 달려갔습니다.
그가 퀘벡에 도착했을 때 미국 Seattle에 있는 한 라디오 방송국이 Terry와 인터뷰를 하고 전파에 실어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Canada TV 방송들은 저녁마다 Terry의 뛰는 모습을 보도했습니다. 다리의 염증은 심해지고, 고통은 가중되었지만 Terry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7월1일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는 몹시 뜨거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1만 명이 나와서 Terry를 맞아 주었습니다. 전국에서 성금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9월1일 온타리오의 선더베이에 도착했을 때 Terry는 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습니다. 병원에서 암이 폐에까지 퍼진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Terry의 마라톤은 그곳에서 끝났습니다. 그는 3,330 마일을 뛰었습니다. 모금한 성금도 목표액의 27배가 되는 2,700만 불이 모금되었습니다.
1981년 5월28일 Terry는 22살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전국에는 조기가 걸리고 당시 캐나다의 수상이었던 피에르 튀르도 수상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Terry야말로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애도했습니다. 그가 마라톤을 중단한 선더베이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어서 오늘도 그의 희생, 그의 고귀한 삶을 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각을 놓치지 않고 살아간 한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한 젊은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믿음의 영웅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까?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성령님께 순종하며 살고 있습니까?
* 적용을 위한 질문
1. 성령께서 내 인생 속에 이룩하신 역사는 무엇입니까? 함께 나눕시다.
2.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까? 네 가지 제안을 중심으로 함께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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