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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6. 3. 워싱톤서(16)/성령강림절 - 조영진 목사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

로마서 8:1-11

그리스도인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뜻에 따라 생명과 평안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까?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교회력에 따르면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이 땅위에서의 사역을 매듭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늘에 오르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이 말씀에 따라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렀을 때입니다. 오순절이란 유대인들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로서 첫 곡식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절기였습니다. 유월절 후 7주만에 맞이한다고 해서 칠칠절이라고도 불리웠습니다. 제자들이 모여 열심히 기도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온 집에 가득하게 되었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며 각 사람 위에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싸여있던 제자들은 승천하신 주님께서 이제는 거룩하신 영으로 그들과 함께 하심을 체험하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용기있게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고, 구원의 기쁜 소식은 능력있게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아 로마서 8장의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8장은 로마서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중요한 말씀으로서, 그리스도인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에 대하여 증거해 주기 때문입니다. 또 로마서 8장안에는 "성령"이란 단어가 20회 가까이 등장하므로, "성령장" 이라고 불리우기 때문입니다.

I.

먼저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선언으로 8장을 시작합니다. 7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율법의 심판과 저주로부터 해방된 삶임을 증거합니다. 거듭난 이후에도 경험하게 되는 갈등과 무력함을 호소하지만, 그러나 이런 거룩한 갈등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7장을 끝맺습니다. 그런데 그가 감사하는 이유는 8장에 와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정죄함이란 우리의 삶에 대한 심판과 그 심판의 결과로 단죄 받음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부족한 삶을 살았으면 거기에 대한 징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겼으면,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죄함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고 불완전한 우리 모두지만,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케 된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임한 놀라운 사랑, 놀라운 은혜 때문입니다. 이 은혜의 역사를 사도 바울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습니다. 바울은 8:3-4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신이 연약하므로 할 수 없던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에다 죄를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완성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표준새번역)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이로서 우리에게는 율법이 요구하는 거룩함, 온전함에 이르는 길이 열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와 죽음의 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에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해방된 백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길을 걷게 된 자유자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용서함 받고 새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II.

그런데 이렇게 정죄함으로부터 해방된 우리들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좀 거북스럽게 느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손뼉치고 박수하는 열광적인 모습을 연상하며 엘러지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교회가 보여온 성령에 대한 치우친 이해 때문입니다. 건강한 성령 이해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도우심과 역사 없이는 우리의 믿음은 시작도, 성숙도, 열매도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서 8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한 멧세지를 전해줍니다.

(1) 먼저 사도 바울은 9절에서 선언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여러분, 그리스도인과 성령과의 관계를 이만큼 명확하게 제시하는 본문 말씀도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성령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사상을 영접한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이 말씀은 지식을 받아들이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부활하셔서 오늘도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모셔들임을 뜻합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 오십니까? 성령으로 오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불리우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만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우리는 더 이상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다고.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여러분, 그리스도인 이십니까?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지식의 content, 내용이 되시는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성령님과의 교제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령님과의 관계는 I - It와 같은 삼인칭이 아니라, I - You와 같은 인격적 관계여야 합니다.

(2) 그런데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단순한 교제의 차원을 넘어서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입니다. 이 삶을 말할 때, 사도 바울은 육신을 좇는 삶과 영을 좇는 삶, 이 두 길을 대비시켜서 증거합니다.

육신을 좇는 삶이란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 중심적인 삶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관심, 시간과 정력을 자신의 만족,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에 쓰는 삶입니다. 그러기에 육신의 생각은 7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과 대적하게 되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 법을 따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으며(8절), 결국은 죽음에, 멸망에 이르는 길입니다.(6절)

반면에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의 생각과 관심, 시간과 정력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씁니다. 이 길이야말로 생명과 평안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바로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비록 갈등이 있고 끝없는 유혹에 부딪쳐도 싸우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때 우리는 생명을, 진정한 평안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삶이란 이렇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분과 교제하면서 그분께 내 인생을 드리는 삶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J. Edwin Orr라는 전도자가 어느 대학에서 설교할 때였습니다. 그분은 의도적으로 한 여학생을 일어나라고 하고 물었습니다:"Do you believe in marriage? (당신 결혼을 믿습니까?)" 여학생이 대답했습니다: "Yes." 그러자 Orr는 "Why?(왜 결혼을 믿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학생은 결혼은 삶에 안정감을 주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터전이고, 고독에서 해방시켜준다는 등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Orr 박사는 "You are married!(당신은 결혼을 했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여학생은 "No, I am not(아닙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Orr 박사는 당신이 정말로 결혼을 믿는다면, 결혼한 것이 아닌가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은 "나는 아직 남편될 사람을 못 만났고 Commitment를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Orr 박사는 "바로 그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기독교의 진리에 동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바로 그 진리에 헌신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기독교의 교리에 동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교리의 주인공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드리고, 그분의 영을 모셔드리고, 그분의 인도하심 앞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이렇게 성령 안에서 살아가게 될 때 우리에게 임하는 또 하나의 은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8:11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면,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죽을 몸도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몸과 영혼의 2원론을 주장하는 희랍사상과는 달리 전인적 구원을 말하는 기독교 신앙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도 신령한 몸으로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전존재가 바로 생명에, 평안에 이르는 구원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III.

그리스도인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또한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생명과 평안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의 죽을 몸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은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생명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요석 목사님이 쓰신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에 나오는 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제 설교를 줄이겠습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독일에서 15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귀국하여 대학 강단에 섰지만, 영적인 갈등을 해결할 수가 없어서 나환자 정착촌인 영호마을에 내려가서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목사님과 가까운 사람이 알고 지내는 여의사가 있었습니다. 오십대 초반인 그 의사는 광주에서는 꽤 알려진 교수였습니다. 하루는 친구가 말하기를 "자네가 그 의사와 한번 이야기 해 볼 수 없을까? 벌써 몇 달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군,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왠지 자네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영호에서도 할 일이 많긴 했지만, 이 여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모르는 체 할 수가 없어서 김목사님은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에 갔습니다. 김목사님을 만난 여의사는 두 시간이 넘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로 미국에서 보낸 유학생활과 화려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아주 거창하게 설명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해 좋은 교수 자리가 하나 생겼기에 이 여교수는 그 자리를 꼭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여러 가지로 애를 썼지만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고.

그 실패를 맛본 후 이 여의사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되어 매사에 만족할 수 없었고 두통과 우울증까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상한 마음을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사실 전 모든 걸 소유하고 있습니다. 돈도 많고 이름도 꽤 알려졌죠. 좋은 직장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제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몹씨 불안하고 불행합니다. 목사님,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해야 다시 평안한 마음을 찾을 수 있을까요?" 김목사님은 이 여의사를 영호마을에 초대했습니다.

그 의사 교수는 정말 영호마을에 찾아왔습니다. 함께 마을 주위를 거닐다가 채소밭에서 일하고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목사님 일행을 본 아주머니는 밝은 얼굴로 인사하면서, "목사님, 이것 쪼까 보씨오. 저번 주에 손가락이 세 번째로 끊어져 부렀거든요. 근디 아직 일곱 개는 멀쩡하다니까요. 정말 감사해 죽겠네요." 라고 말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교수는 목사님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저게 무슨 말이에요? 대체 뭘 감사한다는 거지요? 저 아주머니는 늙고 못생긴데다가 문둥병 환자이고 손가락도 일곱 개 밖에 안 남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만족을 하면서 웃을 수가 있는거죠?"

목사님은 놀라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그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른점입니다. 저 아주머니는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손가락도 일곱 개 밖에 없지요. 그렇지만 자기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저 기쁨은 하나님의 값진 선물이지요.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교수님은 건강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큰 하나님의 선물에 대하여 교수님은 이제껏 한번도 감사하지 않았지요. 교수님은 자기 힘으로 기쁨을 만들려고 하지만 교수님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만족 할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하지요."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걸었습니다. 교회 앞에서 그가 멈춰 서서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목사님, 저는 중요한 걸 배웠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그것을 감사할 때 기쁨과 만족이 온다는 것을요. 하지만 전 도무지 누구에게 감사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상황이 나빠질 때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을 질책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식사시간이 되었습니다. 상 위에는 밥 한 그릇과 김치와 맵게 무친 나물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한술도 뜨지 않았습니다. 여의사는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걸로 충분하세요? 고기나 생선 없이 밥 하나 김치 하나로 식사하시기가 어렵지 않으세요? 대체 목사님은 뭘 가지고 그렇게 만족하신다는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목사님이라면 서울에서도 아주 좋은 자리를 얻으실 수 있을텐데 가구도 없는 방 하나에 검정 고무신으로 지내다니... 저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되네요. 목사님은 하나님께 지금의 상황을 감사하시나요? 아까 하나님께 기도하셨지요? 도대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지요?" 목사님은 이 여교수님과 함께 서점에 가서 성경을 한권 사게하면서 말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될 것이고, 평화의 샘을 만나게 될 겁니다."

한 달쯤 지나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갑자기 버스 한 대가 마을 어귀에 들어서며 큰소리로 경적을 울렸습니다. 서른 다섯 명 가량의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 여교수와 조교 의사들, 그리고 의과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우리 마을과 근방에 사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었습니다.

그 의사는 마침내 평안을 찾는 질문의 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도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을 발견했습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 적용을 위한 질문

1.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말씀이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2.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십니까? 성령님을 모시고 살 때 이전의 삶과 무엇이 다릅니까?

3.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성령을 좇아 사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