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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5.13. 워싱톤서(14) - 조영진 목사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로마서 7:1-13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심판의 두려움 때문입니까?
옳은 길이라는 깨달음 때문입니까?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까?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두 주일만에 다시 로마서의 말씀을 들고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4월 마지막 주일은 장찬영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해주셨고, 지난 주일은 단강교회 한희철 목사님께서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빌립집사의 선교활동을 중심으로 "길을 만드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설교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아니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문안의 인사를 전한 후, 로마서의 중심 멧세지를 외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16, 17절의 말씀입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1:18에서 3:20에 이르는 말씀 속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3:21과 4장에서는 이같은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증거합니다. 이어서 5장부터 8장까지에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삶에 대해서 말합니다. 5장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 6장은 거룩한 삶, 그리고 오늘 말씀 드리려는 7장은 율법의 사슬로부터 자유한 삶, 앞으로 말씀드릴 8장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삶에 대해서 각각 증거합니다.

I.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 보십시다. 먼저 사도 바울은 6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 사람들로서 이제는 우리 몸을 거룩한 도구로 하나님께 드려야 됨을 강조하면서 6:1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의 의미를 이어지는 7장에서 좀더 깊이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인생이라고 선언합니다(7:4). 그는 이 사실을 7:1-3에서 결혼의 비유를 통하여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과 아내는 사랑의 약속에 기초하여 서로가 매인 바 됩니다. 두 사람이 정조를 지키며, 어떤 환경 속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의무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나 아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이 법, 이 의무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부부가 살아 있을 때, 다른 상대방과 관계를 갖게되면 그것은 간음의 죄를 범하는 것이지만, 어느 쪽이든 한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 법으로부터 자유하였기에 다시 출발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별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상대방을 찾는 것은 좀 덕스럽지 못합니다만.

사도 바울은 이 비유를 통해서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율법의 저주와 사슬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제는 옛 언약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성령의 새로운 법에 따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이 말씀의 의미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가 있습니다.

(1) 먼저 우리는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분석한 사람들에 의하면 구약에는 모두 613가지 명령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하라"는 명령이 248가지이고, "하지 말라"는 명령이 365가지입니다. 율법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모든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는 더 이상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2)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을 때 오는 심판과 저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불순종함으로 받아야 할 심판과 저주를 십자가 위에서 대신 져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와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 주셨습니다.

(3) 또한 율법을 지킴으로 가능했던 하나님과의 교제에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우리는 모든 율법을 지킬 때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으면, 반드시 제물을 드려 용서함을 받은 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때,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다 지킴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율법에 대하여 죽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새로운 길,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II.

그렇다면 율법이 죄악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 하는 율법이라면, 그 율법은 왜 주어진 것입니까? 그 율법은 인간 구원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1) 이미 앞에서 지적된 것처럼 율법은 우리의 죄인됨을 깨우쳐 줍니다. 율법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요구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요구와 기대에 온전히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율법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인생, 죄인된 모습을 깨우쳐 줍니다. 오늘 본문 7:7 이하를 보십시다:"그런즉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렇습니다. 율법에 "네 이웃의 소유나 사람들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탐내는 것이 죄인 줄을 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임을 율법이 밝혀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탐내는 것이 죄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2) 그런데 율법은 한 걸음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더욱 자극하는 일도 합니다. 인간은 참으로 묘한 존재입니다. "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해보고 싶은 심정을 느낍니다. 창세기 3장의 기록을 보아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과일을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분명히 들었는데, 그것을 먹는 날에는 죽는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는데, 그런데도 인간은 따먹고 싶어하고, 결국은 따먹은 것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하지 말라는 명령이 오히려 죄를 짓도록 자극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거스틴도 참회록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열 여섯 살 되던 해에 어느 날 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남의 집 배나무를 흔들어 배를 몰래 땄습니다. 그가 배고파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딴 배를 돼지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란 것은 도둑질을 해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도둑질이나 잘못된 일을 할 때 얻는 짜릿한 흥분을 즐기려는 것이었다." 그는 해서는 안된다는 그 이유만이 불법적인 일을 행하는 가장 큰 이유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청개구리 심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러기에 율법은 죄를 자극하고, 죄를 짓도록 유도한다고 바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죄를 짓도록 자극한다고 해서 율법이 잘못된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분명히 대답합니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아무리 율법이 죄를 자극하고, 죄를 짓도록 한다고 해도, 율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유혹을 받는, 그렇게 죄를 짓는 우리 인간의 죄인됨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역시 율법은 인간의 죄인됨을 깨우쳐 줄 뿐 아니라, 깊은 곳에 숨어있는 인간의 진정한 모습, 죄인된 모습을 드러내 줍니다. 율법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통해서 드러나는 인간 존재의 모습, 죄인된 인간, 바로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III.

그런데 이런 인간 존재가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제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 새로운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좀 이론적인 말씀을 드려온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오늘은 어머니 주일입니다. 어머니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왜 부모를 공경하십니까?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무엇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은 십계명의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도리이니까, 인간의 윤리와 도덕이니까 공경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때 오는 대가가 두려워서 공경하기도 할 것입니다. 즉 사람들로부터 불효자라고 손가락질 받는다든지, 혹은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실 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부모를 공경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동기들은 아직도 율법에 의해 이끌려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니까, 결과가 두려워서, 해야되는 것이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삶이란 아직도 율법에 매인 인생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 되었다면,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7:6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었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의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이제 우리는 묵은 율법에 매여 사는 인생이 아니라, 새로운 삶, 성령의 새로운 길, 새로운 모습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성령의 새로운 것, 새로운 방법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입니까?

(1) 먼저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이란 결코 무율법주의로서 제 마음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하였다고 해서, 삶의 기준을 낮추고 자기 기준,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이 삶이란 율법에 매여 살던 인생보다 더 높은 수준,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 이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이란 율법에 의해 지배받는 삶이 아니라,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영, 성령에 의해서 지배받는 삶입니다. 그러기에 이 삶은 율법에 따르는 삶보다 더 높은 수준, 더 높은 차원을 추구합니다. 성령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기에, 그만큼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성령님과의 교제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성령님과의 교제가 없으면, 이 삶이란 메마른 샘과 같고, 자칫하면 껍데기만 붙드는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총신대에서 가르치시는 권성수 교수님의 로마서 설교 속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너무도 율법에 매어서 살았던 때를 고백하시는데, 대학교 다닐 때 한번은 행주산성으로 클래스 학생들이 놀러갔다고 합니다. 게임을 하다가 자신이 벌칙을 받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늘 심각하게 사는 권교수님을 골탕먹이려고, 여학생을 업고 무덤을 한바퀴 돌아오라는 벌을 주었습니다. 교수님은 당시에 그런 행동은 무서운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신문지 한 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신문지를 등에 댄 후 여학생에게 업히라고 했답니다. 그러면 여학생과 자신 사이에 신문지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자유의 삶에도 부름받았는데도 율법에 매여 살았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죽은 율법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에 의해 다스림을 받고, 인도하심을 받는 삶에로 부름받았습니다.

(3) 그러기에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에서는 밖으로 나타나는 행동보다도 그 마음의 동기가 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사람은 사랑과 감사의 동기 위에서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 위에서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넘어섭니다.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넘어섭니다.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감사하기에, 오늘도 우리 안에서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그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삶이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입니다. 어거스틴은 이같은 삶을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마음대로 행하라."고 표현했습니다.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의 모습을 잘 묘사해 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의 동기에 의해서 지배되고, 이끌려지는 인생, 이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인생, 새로운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명령이기에, 인간 윤리이기에, 체면이나 두려움 때문에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 사랑에 대한 감사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공경하는 것, 이것이 새로운 섬김의 삶입니다. 성령 안에서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섬기게 되면 부모 공경은 더 이상 부담이 아닙니다. 더 이상 의무가 아닙니다. 이것은 기쁨입니다. 감사입니다.

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고 제 설교를 줄이겠습니다.
1800년대에 한 영국 청년이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를 찾아왔습니다. 수개월만에 그는 많은 금을 모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뉴올리언스를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깜짝 놀란 것은 아직도 노예 매매가 성행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오래 전에 이미 불법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중년 흑인이 팔려갔습니다. 이어서 젊고 아름다운 흑인 여자가 끌려왔습니다. 사람들은 야하고 짙은 농담을 하면서 돈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여인의 몸값은 평소보다 많이 뛰어 올랐습니다. 최종 두 사람이 서로 사려고 다투다가 낙찰되려는 순간 젊은이는 최종값의 두 배를 불렀습니다. 젊은이가 흑인 여인을 인수하려할 때, 여인은 젊은이 얼굴에 침을 뱉으며 "더러운 자식"이라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묵묵히 그 여인의 손을 잡고 법률소로 찾아갔습니다. 젊은이는 직원과 이야기하면서 남은 금가루를 책상에 쏟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종이에 싸인을 했습니다. 여인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젊은이는 그 종이를 들고 나와 여인에게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여기에 노예 해방증서가 있소. 이제부터 당신은 자유인이요. 자 가지고 가시오." 처음 여인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말했습니다: "저를 놀리는 겁니까? 당신은 방금 나를 샀는데, 이제는 저를 자유롭게 내준다고요?" 젊은이는 대답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당신을 산것이요." 흑인 여인은 젊은이 앞에 엎드려 한없이 울었습니다. 젊은이의 구두가 자신의 눈물로 얼룩진 것을 보고는 머리털로 그 구두를 닦았습니다. 그리고 청년을 우러러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당신을 섬기는 것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진정한 자유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새로운 길,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흑인 여인의 고백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주님께 드려야 할 고백입니다: "이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당신을 섬기는 것 뿐입니다." 기쁨으로 섬기는 것 뿐입니다. 감사함으로 섬기는 것 뿐입니다.

* 적용을 위한 물음

1. 오늘 나는 어떤 동기 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습니까? 두려움입니까? 의무감입니까? 체면 때문입니까? 아니면 감사의 마음입니까?

2.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살아라."는 말의 의미를 함께 나누어 보십시다.

3. 어머니 주일을 맞아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함께 나누십시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최선의 길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