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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29. 장찬영 목사
승리를 위한 두가지 원리
사사기 6: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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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오늘의 시대 속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까?
원리를 붙잡습니다. 원칙을 다시 새겨 봅시다.
내가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사사 기드온을 통해 승리를 위한 그 원리들을 찾아봅시다. |
I
어찌 보면 성경은 온통 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의 처음 창세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렀던 실제적인 전쟁으로부터 성경의 마지막 요한계시록의 구원받은 백성들이 치르는 영적인 전쟁에 이르기까지 실로 성경은 온통 전쟁 이야기입니다.
이미 이 성경의 전쟁사는 인류역사를 통해 모든 전쟁의 교과서가 되었고, 최근 한국의 한 장교는 이스라엘의 전쟁사를 근거로 최첨단 전쟁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전쟁이야기가 주는 교훈 중 가장 특색 있고 특별한 이야기는 이 모든 전쟁의 승패의 이유 즉 그 주도권은 사람의 수나 최첨단의 무기, 혹은 고도의 전술이나 작전에 있느냐가 아니라 전적으로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계신 하나님.
이런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하나님은 때로 무모하리만큼 그러나 오고가는 세대 속에서 변함없이 붙잡고 있는 하나의 원칙, 원리였습니다.
수많은 이방민족들과 끊임없이 치러야 하는 전쟁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오직 한가지 일은 "이 전쟁의 승패는 오직 여호와께 있다"라는 이 단순한 원리의 기본을 되새기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이 원리, 이 원칙의 기본을 붙잡은 자들에게 결단코 승리를 주셨습니다. 기본을 잊지 않는 것, 여기에 승리의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분열의 조짐이 보일 때, 사도들의 해결책이 무엇이었습니까? 기본으로 돌아가 그 기본을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행6:4). 이스라엘의 히스기야왕이 국가의 위기와 함께 자신의 죽음을 예언 받고 절망할 수밖에 없을 때 그는 어떠합니까? 벽을 향해 앉아 하나님의 낯을 구하며 엎드립니다. 생명의 근원은 아니 나아가 국가 존폐의 모든 것이 어디에서부터 왔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자였으나 그 더욱 지혜로웠던 것은 자신의 최선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 그에게는 잊혀질 수 없는 가장 기본의 마음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최고의 지휘관이었던 백선엽 장군이 있습니다. 국가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그에게 위기 돌파의 해법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상상태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위기일수록 변칙은 실패의 첩경입니다. 위기의 시대에는 조조 스타일로는 안됩니다. 나는 실패할 때마다 '지금 내가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 무엇인가?'를 세심히 살피고, 그 본질을 강한 한 후 다시 대비했을 때 항상 승리하곤 하였습니다."
과거에 '형사 콜롬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였는데, 사건이 미궁에 빠졌을 때, 형사 콜롬보가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 "사건의 현장에는 영감이 있다"
그는 사건이 풀리지 않고 오리무중일 때 다시 현장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기본부터 다시 점검을 합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번뜩이는 통찰력을 얻고 사건을 해결하곤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든 문제의 실마리는 기본에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물리나 화학분야 즉 이공계열은 대단히 무지합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마다 도대체 이 무거운 쇠덩어리 비행기가 어떻게 공중에서 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신기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더 더군다나 물에 뜨는 배를 보면 그 엄청난 크기의 선박이나 항공모함이 도대체 어떻게 떠다닐까 생각하면,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즉, 저의 말은 "도대체 150파운드밖에 안되는 저도 물에 들어가면 여지없이 맥주병인데 어떻게 수백, 수천 톤 무게의 쇠덩어리가 물에 뜨는가?"였습니다. 제가 얼마나 무지합니까? 저의 이런 무지를 불쌍히 여겨 주신 교인 한 분이 저의 무지를 깨우쳐 주시려고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그때 그분이 말씀하시는 게 다른 복잡한 게 아니었습니다. 종이에다 그저 단순한 중학교 1학년 때 배웠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의 공식을 쓰시면서 "목사님 바로 이 원리 때문에 비행기가 날고 배가 뜨는 겁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까지 말씀하시니 더 이상 모르겠다고도 할 수 없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은혜 받은 것 하나는 "그 단순한 원리가 비행기가 날고 배가 뜨는 것 외에도 오늘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모든 첨단 과학의 기본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원리는 정말 무섭구나"였습니다.
그 후, 제가 한 친구로부터 수영을 배웠는데 그 친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수영이 개헤엄이었습니다. 스승을 잘 못 만난 이유로 제가 처음 배우게 된 수영도 개헤엄이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개헤엄이지만 150 파운드도 물에 뜰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 후 좀 물에 뜬다고 이쪽라인에서 저쪽라인으로 온 수영장을 설치면서 다니는 저를 보다 못한 수영장 코치가 저에게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수영하면 운동도 안되고, 수영도 더 이상 안 늘고, 자연히 재미도 못 부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만 됩니다." 결국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열 받아서 "그럼 어떻게 하면 되냐"고 했더니 "기본동작부터 다시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 개헤엄을 전수 받느라고 얼마나 재정적으로 정신적으로 고생을 했는데 말입니다. 그 후, 개헤엄의 제 방식을 버리고 기본동작을 배우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사건 또한 기본 원리가,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원리입니다.
오늘 본문은 신앙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II
사사 기드온이 살고 있었던 시대는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침략을 받았던 때였습니다. 절대적으로 나라를 잃어버릴 수 있는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 기드온은 일종의 의병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래서 군사를 모집했는데 3만 2천 명이 자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숫자가 너무 많다 좀 돌려보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미디언과 싸우기 위해서는 3만 2천 명도 오히려 부족한 숫자인데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고 돌려보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준비 안된 사람 그리고 참으로 마음속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 2만 2천 명을 돌려보냈습니다. 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야! 만 명도 아직도 너무 많다 좀 돌려보내라" 그래서 또 돌려보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일종의 어떤 테스트, 즉 개울가에서 물을 먹을 때 얼마나 적군을 의식하면서 먹느냐 아니면 아무 생각없이 먹느냐를 구별해 최후까지 남게 된 사람이 바로 300명입니다. 바로 이 300명을 쓰셔서 이스라엘 나라를 구출하시고 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 놀라운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승리가 있기 직전의 일들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전쟁의 이면에는 그 전쟁을 하기 전의 일들로 이미 결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쟁에 임하는 기드온이 붙잡는 이 신앙의 원리, 원칙들을 오늘 아침 추적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기드온이 붙잡았던 승리의 원리에는 "승리를 위해서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대가지불의 법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드온이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위대한 사사로서 서게 되는 사건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고 바알과 아세라 상을 만들며 우상숭배에 젖어 있을 때, 하나님은 기드온을 만나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당신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기드온도 자기자신이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받는 자로 선택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가 얼마나 하나님을 슬프게 근심하게 하시는지 그는 심각하게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느 날 밤 자기수하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자기 아버지가 섬기는 그 우상들을 깨부숩니다.
어찌 보면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이런 기드온의 행동은 황당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훗날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된 기드온을 볼 때 그 당시 일은 그의 분명한 믿음과 더 나아가 심지어 그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어떠한 대가라도 치르겠다는 단호한 각오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슬퍼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분명한 분별이 있었고, 거기에 따르는 어떤 어려움도, 고통도 기꺼이 치르겠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무릇 작은 모임에서부터 한 나라를 다스리는 모든 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철학과 열정'입니다. 철학이 그가 가진 꿈, 이상이라면, 열정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 대가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금세기 전무후무한 세계최대의 갑부로 뛰어 오른 일명 컴퓨터 황제 빌게이츠에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꿈을 말하는 사람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현실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계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자를 나는 가장 두려워합니다."
꿈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얼마나 소유했냐는 한 시절 그를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소유한 사람은 영원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유정란과 무정란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어미 닭이 21일 동안 품고 나면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유정란은 생명이 탄생되고, 무정란은 썩어서 나옵니다.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시간이 그의 미래를 화려하게 만듭니다. 반면에 꿈이 없는 사람은 시간이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사람의 크기는 꿈의 크기입니다.
그런데 꿈을 가지고 있다고 다 꿈을 실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꿈을 실현하는 자가 됩니까? 그것은 '대가를 치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Visionary란, 꿈을 소유하고 있고 또 그 꿈을 위해서 기꺼이 대가를 치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모세에게는 민족의 대탈출, 출애굽이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을 위해서 바로 왕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버리고,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며 낮아지는 대가를 치릅니다. 요셉에게는 자기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꿈, 어렸을 적에 보여주셨던 꿈이 있었습니다. 이 꿈을 위해서 그는 오랜 시간 억울한 감옥생활의 대가를 인내하며 치를 수 있었습니다.
비단 인생 전체의 그림을 보지 않더라도 그 어느 것 하나 꿈을 꾸었을 때 그 꿈을 위한 대가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의 승리는 처음부터 숫자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기드온 한 명의 전쟁이었습니다. 3만 2천의 숫자에서 에서 300이라는 숫자에로의 축약은 전쟁의 승패는 결단코 보여지는 숫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단호하고도 분명한 원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성경적 원리대로라면, 지금 우리의 인생을 평가해 볼 때, 과연 나는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얼마나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명성을 듣고 있는가? 얼마나 이 모든 것을 앞으로도 누릴 수 있는가 등의 숫자와 양적인 개념은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반면 나는 정말 꿈이 있는가? 자다가도 깰 수 있는 가슴 벅찬 꿈이 있는가? 나의 온 인생을 드릴 수 있는 거룩한 꿈이 있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꿈이 내게 있는가? 그리고 그 꿈을 위해서 어떤 대가라도 치를 수 있는 자는 지금의 현실과는 관계없이 분명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평생을 아프리카 선교사로 살다 아프리카에서 죽은 영국 선교사 한 분이 있습니다. 죤 스터트입니다. 그분은 영국의 귀족가정에서 태어나 엄청난 명예와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후에 케임브리지 7인중의 한 분으로 추대되었던 분입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한 선교단체 사무실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선교지로 나갔던 선교사들이 찾아가지 않았던 짐들, 이제는 주인 없는 짐들이 창고 가득 쌓여있는 것을 보면서 인생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되고 거룩한 꿈을 꾸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선교훈련을 받은 후, 허드슨 테일러와 함께 중국에 가서 선교를 하다가 중국을 허드슨에게 맡기고 당시 아무도 가지 않았던 검은 대륙 아프리카로 떠나게 됩니다. 그 후 30여 년 후, 노년의 나이로 아프리카 오지의 어느 움막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스터트를 파송했던 선교단체의 사무실에는 지금도 사진 두 장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스터트가 상속받았던 그래서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영국 런던의 3층 저택 사진과 아무도 모르는 사이 쓸쓸하게 죽어갔던 초라한 아프리카 움막의 사진입니다. 그는 누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가 이런 모든 것들을 다 누린다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습니다. 누릴 수 있는데 누리지 않고, 가질 수 있는데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 거룩한 꿈을 위해서 대가를 치렀던 사람, 스터트... 우리는 그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선교는 그를 통해 시작되었고 마침내 그 영적 전쟁은 승리했던 것입니다.
III
하나님의 백성이 치르는 전쟁에서 두 번째 승리의 원칙은 '핵심을 파악하는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의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려는 믿음의 사람 기드온을 통해 서서히 하나님을 향해 눈을 뜨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기드온은 백성들에 의해 지도자로 뽑혀지게 되고 그는 드디어 미디안 족속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원리의 사람' 기드온을 다시 보게 됩니다. 기드온은 전쟁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전쟁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만 하면 그 어떤 것도 문제될 수 없다"였습니다. 이 기본원리 아래 하나님과의 만남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그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한 핵심이었기에 하나님께 두 가지 현상을 요구하게 됩니다. 하나는 새벽에 이슬이 내릴 때 양털 위에만 이슬이 내리고 땅이 말라있으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심을 믿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자 이제는 반대로 양털만 나두고 사방 땅위에 이슬이 내리면 정말 믿겠다고 다시 요청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는 이 기드온의 요청에 응답하시고 기드온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 어떠습니까? 이제 두려울 게 없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전쟁의 핵심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최근까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입니다. 그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어떻게 로마가 1,000년 넘게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로마의 강력한 군사력 때문인가? 아니다. 아무리 강한 군사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10-20년은 통치가 가능해도 1000년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탁월한 제도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다. 아무리 탁월한 제도라 할지라도 100-200년이 지나면 그 효율성이 떨어져 더 이상의 통치수단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로마를 강력한 제국으로 1,000년의 영화를 누리게 했는가? 그것은 바로 '도로'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도로가 국토의 혈맥이라는 것을 알았던 유일한 민족은 로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국부의 대부분을 길을 닦는 데 사용했다.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가? 이 도로라는 핵심이 로마를 1,000년의 로마를 만든 것이다"
바로 핵심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 영국인에게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한국에서 제일 존경받는 왕은 세종대왕이나 광개토왕인데, 영국에서는 어떤 왕입니까?" 그러면 십중팔구 이렇게 대답합니다. "엘리자베스 1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7세기 영국의 왕으로 즉위했던 엘리자베스 1세는 그의 즉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바다를 정복하는 나라가 세계를 정복한다." 이런 통찰력이 어떻게 그녀에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17세기라는 당시 상황에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다'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1세는 이 핵심에 모든 자원과 국부를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최고의 탁월한 왕자들과 귀족들은 모두 해군으로 입대시켰습니다. 결국 16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해상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 이후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영국을 가리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육군이 강합니다.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는 몰라도 육군사관학교에서 대통령이 3명이나 나왔습니다. 누구나 육해공 3군 중 육군을 선호합니다. 옛일이지만 임진왜란 당시, 별 대접받지 못하던 수군 이순신이 전쟁의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오게 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영미 계통의 전통에 따르면, 해군이 최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보았던 '뽀빠이' 만화를 기억하십니까? 만화의 배경이 어디입니까? 배 위입니다. 뽀빠이나 부르터스는 모두 해군으로 등장합니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나 지미 카터도, 영국의 찰스 황태자도 모두 해군 출신입니다. 이것이 엘리자베스 1세 이후 영미 계통에서는 하나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다가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스포츠 중에 볼링을 좋아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볼링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초보자 시절, 볼링을 제대로 배우기 전에, 제 생각에 볼링만큼 쉬운 경기가 있을까 생각했었습니다. 핀 10개 세워놓고 공 굴려서 못 넘어뜨리는 바보가 어디 있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처음 볼링을 치면서 보니까 그것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첫째,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볼링공은 무거웠다는 것입니다. 제 몸무게에 맞는다고 준 공이 16파운드였는데 손가락이 얼마나 아픈지 또 공을 던질 적마다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였습니다. 둘째, 마음먹은 방향으로 공이 잘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보기에는 쉽게 보였는데 소위 양쪽 시궁창 레인에 빠지기가 일쑤였습니다. 세째, 스텝이 비비꼬여 나중에는 제풀에 넘어지고 엎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을 해보았지만 전혀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때 볼링을 오랫동안 쳐왔던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욕심을 부리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핀을 부수어 버린다는 마음으로 힘만 주어 던진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볼링은 한 점 싸움입니다. 1번 핀과 3번 핀 사이를 스핀을 주어서 정확하게 한 점을 맞추기만 하면 나머지 핀은 저절로 넘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에 엄청난 충격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볼링이란 힘의 싸움이 아니고, 한 점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즉, 핵심을 정확하게 치기만 하면 나머지는 넘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생활의 핵심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기드온은 그가 전쟁에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 그 원리, 원칙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바로 '핵심을 파악하는 원리'입니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일 우선이었고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명할 때, 모든 것은 자연적으로, 자동적으로 해결되어 나갔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과연 그 무엇이 여러분을 도미노처럼 괴롭히십니까? 여러분 가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과연 그 무엇이 여러분 가정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나를 끊임없이 목마르게 하는 목마름은 무엇입니까?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있겠지만, 오늘 기드온은 우리에게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승리하게 하는 가장 핵심이 하나님과의 관계였듯이 모든 패배의 이유 역시 거기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핵심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선포하고 확인했습니다.
요셉은 이 핵심을 깨달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노예로 팔아서 그 오랜 세월 고통 속에 지내게 했던 형들에게 마음껏 보란 듯이 복수할 수 있었지만, 복수보다도 그가 경험했던 하나님의 사랑은 컸기에 용서하고 품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 왕은 이 핵심을 이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밧세바 아내와의 불륜이 나단 선지를 통해 드러나자 진실로 죄를 깨닫고 침상이 떠내려갈 정도로 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권력이 하나님의 공의보다 앞설 수 없음을 그는 알았던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은 어떤 것이 가장 우선되십니까?
하나님을 경험하십시오. 하나님을 목말라 하십시오. 모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분만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모든 것 중의 핵심입니다. 직분이 이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봉사가 아니 사역이 이 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또한 이 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 기드온의 하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이시요,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과 지금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까?
* 적용을 위한 질문
1. 당신의 삶을 지금까지 이끌고 온 원리가 있다면, 또 신앙 안에서의 성서적인 원칙이 있으시다면 나누어 보십시오. (성서적 원리와 내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 관료적인 틀을 어떻게 구별하십니까?)
2.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대가'는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십니까?
3. '하나님을 아는 것',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왜 모든 것 중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신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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