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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15. 워싱턴서(12)/부활절 - 조영진 목사

거룩한 삶

마태복음 28:1-10 / 로마서 6:1-11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기에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새 생명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과연 내 삶 속에 살아 계십니까?

오늘 기쁜 날입니다. 오늘 감사한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의와 진리, 그리고 사랑과 정의의 승리를 확실하게 보여주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여전히 빌라도와 대제사장들, 아니 이 세상 어두움의 세력은 기고만장해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승리를 노래하고 있을 것입니다. 진리는 불의에 가리워진 채 빛을 잃고 있을 것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종착점으로 허무가 판을 치는 희망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역사는 어두움 속에서도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캄캄하여도 우리는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죽음너머 영원한 생명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과연 다시 사셨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십시다. 감사하십시다. 주님은 결국 이기셨습니다.

이 부활절 아침 우리는 계속해서 로마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아니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낸 이 편지는 먼저 1:1-17에서 문안과 서론의 말씀을 전한 후, 1:18-3:20에서는 우리 모두의 죄인됨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3:21부터 4장 마지막절까지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증거합니다. 그리고 5장-8장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삶을 소개합니다.

먼저 5장에서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저는 지난 두 주일에 걸쳐서 5장의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에는 6장을 말씀드리겠는데, 6장은 바로 A Life characterized by sanctification - 거룩함, 성화로 특징지어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바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름 받았음을 일깨워 줍니다.

I.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십시다. 사도 바울은 6:1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습니다.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느끼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봅니다. 그렇기에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지을 것입니까? 큰 은혜를 맛보기 위하여 더욱 큰 죄를 저질러야 합니까?

이에 대한 바울의 답변은 분명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오."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이기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거룩한 삶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계속 죄에 거하겠다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도록 부름받았는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II.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살펴보십시다.

(1) 먼저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산사람이라고 외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누가, 어떤 모습이 죽은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은 옛사람입니다. 죄에 매인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등진 채 살아오던 나의 옛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처럼 우리의 옛사람이 죽은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됨은 자기 실현이 아니라, 자기 부정임을 발견합니다. 사람들은 인간을 너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 많다고 말합니다. 옛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옛사람을 잘 훈련시키고, 수양을 해서 좋은 사람,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 사도 바울이 이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좋다고, 그 길이 옳다고 말하겠습니까? 물론 그의 직접적인 대답을 들으려면, 이 다음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물어 보아야겠지만, 그가 보낸 이 워싱톤서에 의거하면 저는 그의 대답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가 그의 대답이 될 것입니다.

인간은 물론 중간자입니다. 선과 악, 시간과 영원의 중간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옛사람의 죽음에서 시작됩니다. 옛사람을 그대로 간직한 채 조금 수정하고, 고쳐 보겠다는 것은 바울이 외치는 복음의 길이 아닙니다. 옛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선하게 보여도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죽어야 합니다. 인간이 그렇게 선하다면 그리스도께서 왜 오셨겠습니까? 인간의 수양과 노력으로 해결지을 수 있는 문제라면, 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습니까?

그러나 옛사람이 죽어야 하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새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새 생명에 이르기 위해서입니다. 새 생명은 옛사람의 죽음 위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새사람이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이 죽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해결해 보려고 하기 때문에 새 생명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믿음의 생활도 엉거주춤하게 됩니다. 믿는지 안 믿는지 애매모호한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믿는다해도 옛사람의 죽음이 없기에 새로운 생명의 탄생도 없습니다. 내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니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도 맛보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삶에 이르는 것입니다. 자기 부정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은 진정한 자기 긍정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부정만을 말하는 동양의 종교들과는 다릅니다.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의 죽음으로 새로운 인생, 새로운 생명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2)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우리 인생의 새로운 태어남을 세례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6:3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다: "무릇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함이니라."

여러분, 세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무엇이 죽습니까? 그리스도 밖에서,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살아온 옛사람이 죽습니다. 무엇이 살아납니까? 그리스도의 생명,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새로운 삶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서 침례, 물 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모습으로 세례를 베푼 것은 이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줍니다. 물 속에 잠길 때, 바로 죽는 것입니다. 옛사람, 죄에 매인 우리 과거의 삶이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 속에서 일어설 때, 이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삶,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 받으시는 여러분, 이제 세례 받음으로 여러분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과 함께 여러분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세례를 받으신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옛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시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실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사망의 굴레에 매어 사실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6:6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

(3) 그렇다면 우리에게 제기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면, 왜 우리가 아직도 죄의 모습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죄의 사슬에서 해방된 우리들이 여전히 죄에 매여 살고 있습니까? 왜 변화되지 못하고 있습니까?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 주일에 다시 다루게 되겠습니다만, 두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한성 때문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인생이지만, 우리는 천사와 같이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도 인간의 약함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계속해서 거룩한 삶을 향해 자라가야 합니다.

둘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본문 6:11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여러분 무슨 말씀입니까? 비록 오늘 삶의 현실이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산자답게 보이지 않아도 그렇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영어성경으로 그렇게 count하라, 혹은 그렇게 consider하라고 옮겨놓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 인생으로 자신을 여기는 것과 그런 의식이 없는 삶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인생으로 여길 때는 그만큼 유혹이 따라와도 이길 수 있고,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 생명으로 자신을 여겨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뉴욕에 거주하던 변호사가 텍사스의 변호사에게서 남부 텍사스에서 사망한 어떤 부호의 가장 가까운 친척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미국 각 주들 사이의 전쟁의 말기에 서부로 이주했는데 거기서 방대한 박토를 구입한 것이 행운의 시작으로 그 땅에서 석유가 터져 나와 금새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거대한 재산을 남기고 죽어가면서 유서 한 통도 남기지 않아 이제 그의 가장 가까운 근친을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추적하고 추적한 결과 그 대부호의 누이가 필라델피아에 살았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 역시 손자 하나만 남기고 별세한지 오랜데 그 손자는 그 당시 거리의 거지였더랍니다. 그리하여 일자무식한 무일푼의 알거지가 일약 그 당시 돈으로 3천만불 상당의 텍사스 유전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 거지 자신에게는 백만장자가 될만한 자격이란 전혀 없었으나, 다만 알지도 못하는 먼 친척의 은혜로 꿈같이 천만장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거지에게 그가 이미 거지가 아니고 천만장자가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리는데는 이만저만 애를 먹은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처음에 그 거지는 3천만불의 돈이 얼마나 많은 액수인지 감도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막대한 재산이 자기의 것이라는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권리증을 손에 쥐어 주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상속된 자기 재산이 자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많은 재산이 자기의 소유인줄을 믿었다 할지라도 어떻게 갑자기 그 막대한 재산을 관리해 나가야 할지를 알았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억만장자였지만 당분간은 그냥 거지같이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부자는 부잔데 부자노릇을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새 생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옛 생활에 젖어서 새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엄청난 은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III.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날입니다. 이 날에 사람들은 묻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을까? 부활은 2000년 전에 과연 일어났을까? 그것은 역사적인 사건인가?

물론 이 질문이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사신 이 부활의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은 거짓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바울도, 오늘 우리도 단체로 거짓에 우롱 당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의 구원자와 주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아침 우리 모두가 물어야 할 또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때, 그렇게 다시 사신 주님께서 내 안에서, 내 인생 속에서 부활하셨는가? 의 질문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부활하시지 못하셨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아직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먼 옛날,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한 사건을 돌이켜보고 있을 따름입니다. 부활 기념식을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부활하셨습니까?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았습니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였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부활하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우리 안에 오늘 살아계십니까?

* 적용을 위한 물음

1. 속원 가운데 세례 받으신 분이 있으면 함께 축하하고 세례 받은 경험을 함께 나눕시다.

2.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다는 부활이 나의 인생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까?

3.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내 삶 속에서 아직도 변화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