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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8. 워싱톤서(11)/종려주일 - 조영진 목사
아담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로마서 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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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으로 인하여 죄와 죽음이 임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용서와 생명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아담 안에서 죽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생명의 진리를 내가 체험하고 있습니까?
죄를 깊이 깨달을수록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게되는 이 진리를
체험해 보셨습니까? |
지난 주일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임한 은혜, 그것은 하나님과의 평화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질 때, 우리에게는 진정한 평화, 참된 기쁨이 임함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평화가 임할 때 우리는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과의 평화의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서 5:8의 말씀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당신의 사랑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바로 하나님과의 평화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원수가 되었던 상태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한 새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은 이 같은 말씀에 이어지는 사도 바울의 증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인 로마서 5:12 이하의 말씀은 신약성경 속에서 제일 난해한 말씀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해석에 대하여 여러 가지 입장들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 속에서 어떻게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라는 이 은혜의 사건이 온 인류에게 새 삶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씨름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한다면, 2000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으심, 그 은혜의 사건이 어떻게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그 십자가의 사건이 어떻게 내 인생에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라는 이 문제를 밝히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이해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본문의 초점은 분명히 여기에 있습니다.
I.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다룰 때, 아담과 예수님을 비교함으로 해명해 보려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은 이 본문을 가리켜서 온 인류의 역사가 바로 이 말씀 속에 요약되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우리의 조상되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문장으로는 간단합니다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내용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여러 곳에서 아담의 범죄와 우리가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원죄의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5:12을 보십시다: "이러므로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또 5:15절 이하에서는 각 절마다 아담을 통하여 임한 정죄와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임한 의롭다 하심과 생명을 대비시켜서 밝히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또한 사망이 임하게 되었다는 성서의 증언은 합리적인 설명이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과 같은 개인주의 시대에서는 왜 아담이 잘못한 것 때문에 나도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하여 몇 가지 설명하는 입장들이 있어 왔습니다.
(1) 첫째는 아담은 바로 우리 모두를 뜻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We are Adams라고 보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과일을 따먹은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지 않는가? 라는 주장입니다. 사실 우리 자신을 깊이 있게 살펴보면, 오늘 우리도 아담과 다를 바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불순종이라는 열매를 따먹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 같은 해석은 모든 인간이 갖고있는 죄인된 모습의 실상, reality와 죄의 보편성, universality of sin을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죄와 나와의 연관성에 대한 설명이 분명하지 않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2) 둘째는 아담은 바로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 보는 입장입니다. 인류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아담이 범죄하였기에, 우리 모두도 함께 이 짐을 지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대표성의 원리에서 적절한 해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합니다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그를 우리의 대표자로 세웠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같은 민주주의 시대에서는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3) 셋째로는 우리 모두는 아담으로부터 죄를 짓게되는 경향, tendency to sin을 이어받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표현을 빌리면 범죄하기 전 아담은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안 지을 수도 있는 존재였는데, 범죄한 이후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굴러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부패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우리 모두가 이어 받았기에 우리 모두도 죄인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는 귀를 기울일만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4) 넷째로 이 문제를 다루는 입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모든 인류와의 연대성, Solidarity 속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이 같은 사실은 강하게 표현되어 지고 있습니다.
아담의 죄는 아담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담과 연대성을 갖는 온 인류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여호수아 7장에서 발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을 공격할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리고성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3,000명의 군대를 보내어 아이성을 쳤습니다. 쉽게 이기리라는 예상을 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배하고 돌아왔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온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깨우쳐 주셨습니다. 패배의 원인은 바로 아간이라는 사람이 여리고성을 빼앗을 때, 아름다운 외투 한벌과 은 200세겔, 그리고 50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이 나서 숨겨둔 데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간과 그 자녀들을 아골 골짜기로 데려가서 처형한 후 다시 아이성을 공략합니다.
여러분, 죄는 아간이 지었는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패배한 것입니까? 왜 아간 때문에 그 자녀들이 다 죽어야 했습니까? 그것은 연대성 때문이었습니다. 이 연대성을 우리는 오늘 점차 좁아지는 세상 속에서 실감나게 느끼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일어난 황사 현상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아마존강 유역의 울창한 삼림을 개발하는 일은 세계의 기상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대통령 한사람 잘못 뽑으면 온 백성들이 고생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경험해 보았습니다. 버스 운전사의 실수는 승객들의 생사에 영향을 미칩니다. 잘못은 버스 운전사가 했는데, 왜 승객들이 죽고, 다쳐야 하며, 그 가족들이 또한 슬픔을 안고 일생을 살아가야 합니까? 인생이 갖는 연대성 때문입니다.
이 같은 연대성의 빛에서 아담과 인류와의 관계를 보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는 바로 우리 모두에게 연결되어 있고 그러기에 우리 모두에게는 사망이, 죽음이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100% 만족할만한 해답이 못될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파스칼은 일찌기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죄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이성을 가지고는 이것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성에 위배되는 것이며, 이성은 자기의 방법으로 그것을 생각해 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바울의 주장, 아니 성경의 증언 속에서 분명히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인됨에 대한 실재성, reality와 모든 인간은 바로 죄인이라는 죄의 보편성, universality of sin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실상입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인간이 죄인됨을 부정할 만큼 그렇게 선한 존재라면, 왜 그렇게 많은 범죄가 오늘도 신문지상과 TV의 화면을 장식하고 있습니까? 인간 죄의 문제가 교육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과학기술이 발달한 시대인데도 왜 이 문제를 해결짓지 못하고 있습니까? 왜 인간의 도덕의식은 점차 쇠락해 가고 있는 것입니까?
조정호 집사께서 건네주신 글의 일부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글은 Columbine 고등학교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난 후, 한 학생이 친구들에게 보낸 멧세지입니다.
역사상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순은,
건물들은 높아져 가는데 우리의 인내심은 더욱 연약해져 가는 것입니다.
길은 넓은데, 삶을 보는 관점은 좁아져 가고 있습니다.
소비는 더욱 많이 하는데, 갖는 것은 적어가고 있습니다.
사기는 더 많이 하는데, 즐기기는 더 적어지고 있습니다.
지식은 많지만, 판단은 적어지고
전문가는 많지만, 해결은 적습니다.
말은 많이 하지만, 사랑은 적게 하고
수입은 많아지지만, 도덕성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부부가 돈을 벌지만, 이혼은 늘어가고 있고
더 좋은 집에 살지만, 가정은 깨어져 가고 있습니다.
죄의 문제는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역사를 낙관적으로 이해했던 20세기 초의 사람들은 인간의 죄악이 낳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유대인의 대학살 같은 엄청난 죄악의 역사를 보면서 인간 죄의 깊은 모습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이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II.
그런데 바울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말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아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는 생명, 구원의 길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 5:15 이하에서 분명히 주장합니다: "한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5:17 말씀은 "한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또 5:19을 보면, "한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 모두는 죄인이지만, 새 아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용서의 길, 생명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생명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생명의 세계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아담의 죄를 넘어서는, 그 죄를 해결짓는 새로운 내일을 열어 주셨습니다.
(1) 그러나 한가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는 이 주장에서 한가지 다른 점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는 이 사실에는 우리의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가 싫든지, 좋든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 삶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는 생명의 은혜는 이미 모든 인생들에게 임하고 있지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생명의 은혜는 믿어야만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믿어야,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믿어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는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태어날 때 우리 모두는 아담 안에서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여기에는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거듭나면, 다시 태어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는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누리려면 믿어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2) 그런데 이 같은 은혜는 죄의 깊이를 깨달을수록 더욱 깊이 체험케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은 이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5:20을 보면,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함이니라."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여러 주일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효능을 갖고 있습니다.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도 인간들은 범죄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주어짐으로 숨겨졌던 죄악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죄의 깊이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는 역설입니다. 아니 진리입니다. 율법이 죄를 더욱 더 짓게 한다기 보다는, 율법이 죄를 더욱 깨닫게 한다는 것이 보다 적절한 이해일 것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씀은 죄를 많이 지어야 은혜가 넘친다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죄를 많이 깨닫게 되면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보여지는 현실입니다.
죄를 많이 짓고 멀리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일수록, 나중에 예수를 믿게되면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증거하는 것을 주변에서 봅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교회 안에서 순탄하게, 큰 잘못함이 없이 자란 사람일수록 죄의 깊이도, 하나님의 은혜도 희미하게 느껴서 이 문제로 고민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됩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 은혜를 넘치게 하려고 더욱 죄를 지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더 깊이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즈음 고구마 전도왕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김기동 집사라는 분은 아내가 예수 믿는 것에 반대해서 주일날 가족을 데리고 놀러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간증을 하면 사람들이 와서 그런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간증이 분명해서, 구원의 은혜를 분명히 체험하셨기에 부럽습니다." 그러면 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교우께서도 차가 정면 충돌하는 교통사고 한번 당해 보실랍니까?"
문제는 깨닫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우리의 죄인됨을 깨달으면,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죄인된 우리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임한 놀라운 사랑,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III.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오늘부터 예수님의 마지막 주간,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 내게 임한 주님의 사랑을 새롭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아담 안에서 죄인된 우리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십자가 위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죄인된 우리들을 보게 합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우리도 거기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십자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보게 합니다. 그 사랑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은혜는 오늘 내게도 임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열면, 믿으면 아담 안에서 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찾을 수 있습니다.
The Case for Christ , 그리스도의 사건이라는 책을 써서 널리 알려진 Lee Strobel이란 목사님이 최근에 The Case for Faith란 책을 써냈습니다. Lee Strobel 목사님은 원래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분은 Yale대학교 Law School을 졸업하고, Missouri대학에서 Journalism을 공부한 기자로 Chicago Tribune지의 법률담당 editor였습니다. 그는 기독교란 이성적으로 불합리한 것이며, 미신에 가까운 것 정도로 이해하면서 출세의 가도를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1979년 가을, 뜻밖의 사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교회 나가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의 인생이 복음 안에서 변화되는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 나에게는 교회 나가라고 말하지 말라던 Lee Strobel기자는 점차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려고 나간 것이 아닙니다. 신문기자의 호기심으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취재하는 심정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이 과정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아담 안에서 죄인되었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누리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사가 되어 Chicago의 Willow Creek교회에서 Teaching Pastor로 섬기다가, 얼마 전부터는 CA에 있는 Saddleback Community Church에서 역시 Teaching Pastor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The Case for Christ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구주가 되심을, The Case for Faith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갖는 의미를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일하십니다. 오늘도 아담 안에서 죄인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생명에로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의 이론이 아닙니다. 추상적인 사상도 아닙니다. 복음은 바로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 적용을 위한 물음
1. 아담의 범죄로 우리 모두가 죄인 되었다는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정리해 보십시다.
2. 2000년 전의 십자가의 사건이 어떻게 나를 위한 구원의 사건이 될 수 있습니까?
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나와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나 받은 은혜가 있다면 함께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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