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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1. 워싱톤서(10)/사순절 다섯째주일 - 조영진 목사
하나님과의 평화
로마서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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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설 때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정상화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깊이 음미해 보면 많은 것을 생각게 해주는 말입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관계 속에 있게 됨을 말해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한자에서 사람 "人"자를 보면 역시 두 획이 서로 기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희랍의 철인이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 것, 또 현대의 실존 철학자가 인간을 세계 내 존재라고 말한 것 모두가 관계를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태어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 속에서 우리 모두는 태어납니다. 모태에서도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10개월을 보냅니다. 세상 속에 태어나면 새로운 관계 속에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버지,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또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자라가게 됩니다. 이 같은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고, 또 영향을 주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성년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와의 관계가 중요성을 가지고 등장하게 됩니다. 직장, 일터에서의 관계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자녀들이 태어나면 이 자녀들과의 관계 역시 삶의 중요한 요소들로 등장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게되면, 한없이 넓고 다양하게 보이던 관계도 차츰 차츰 좁아지고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이 모든 관계에도 종말이 찾아오게 됩니다. 결국 인생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서 관계의 종말과 함께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I.
그런데 이같이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인생 속에서 제일 중요한 관계가 있다면, 누구 혹은 무엇과의 관계이겠습니까? 어떤 관계가 우리의 인생 속에 가장 깊고, 가장 넓은 영향력을 발휘합니까?
여러가지 관계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왜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1)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이 우리 인생과 우주 만물을 만드셨다면, 그분과의 관계는 피할 수도 없고, 가장 중요한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우리 모두가 존재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하시기에 오늘도 살아 계신 분입니다. 그분은 세상과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과의 관계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념이나 사상의 유희가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바울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그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2) 그리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내 삶에 영향을 미치기에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계시다면, 내 인생의 목적과 길은 그분의 뜻에 따라 세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이 나를 지으시고, 이 세상 만물을 만드셨다면, 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하나님 안에서만이 찾아질 수 있습니다. 내가 세운 목적, 내가 세운 계획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세운 내 계획, 내 목적은 내 인생을 그릇된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인생을 살아가면, 결국 헛된 인생을 살기 마련입니다. Atlanta를 가야할 사람이 Boston에 갔다면 잘못 간 것 아닙니까? 헛된 여행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과 길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잘못 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헛된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는 내 인생의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주기 때문에 이 관계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3)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한 운명과 직결되기에 또한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의 생명은 이 땅 위에서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세계로 이사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이 영원한 미래는 바로 오늘 여기에서 갖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화해를 한 생명들은 '영원'이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아니 기다리고 기대해온 소망의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리되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해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미 그 생명의 세계를 거절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그러기에 이 관계처럼 중요한 관계는 없습니다.
II.
그런데 인생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삶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인간 현실을 성경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5:10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삶이라는 생각, 이 생각이야말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5:1∼11에 있는 말씀은 이 같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역사를 말해줍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5:6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본문 말씀은 로마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깨어진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먼저 시작하셨습니다. 세상을, 인생들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직 사랑 받을만한 자격이 없지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이 사랑을 받아들일 때, 바로 그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아직 부족하지만,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며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5:9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깨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됨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I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앞에 믿음으로 응답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인생이 누리는 삶,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화해한 삶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찾게될 때, 우리 인생 속에 어떤 변화가 찾아옵니까?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됩니까?
(1) 무엇보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 5:11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기 전과 비교해 볼 때 무엇이 달라졌느냐?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대답합니다. 마음에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고.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평화의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그 주님의 평화가 우리 마음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평안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은 결코 empty promise, 알맹이 없는 빈 약속이 아닙니다. 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외부의 조건이 충족되면 기쁨이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돈이, 출세가, 성공이, 집이, 자동차가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얼마동안은 기쁨을 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기쁨일 뿐입니다. 영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라. 일주일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한달 행복하려면 말을 사라. 일년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한 사람이 되어라." 결혼이 일주일 행복을 가져다주는 반면, 말을 사면 한 달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어쨌든 외적 조건이 주는 행복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원히 행복하려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라."
(2) 그런데 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에서 환난과 역경을 만나도 즐거워 할 수 있는 평안입니다.
5:3의 말씀을 보십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평안은 환난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환난이라는 말은 특별히 믿음 때문에 받는 고난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합니다. 환난이 찾아와도 우리의 평안은 동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환난은 인내를 낳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없으면 어떻게 참는 힘이 길러지겠습니까? 환난은 인내를 낳아주는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인내는 연단을 낳습니다. 연단이란 말의 어원은 불 속에서 정제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인내가 연단을 낳는다는 말은 인내를 통하여 우리의 인격이 다듬어지고 성숙함에 이름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연단은 바로 우리에게 소망을 안겨줍니다. 진정한 소망, 흔들리지 않는 소망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물론 환난은 괴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 속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보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인내와 연단, 그리고 소망은 바로 환난 속에서 정제되고 가다듬어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합니다. 환난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보화를 알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3)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의 평안은 소망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본문 5:2을 함께 읽으십시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내일이 있는 백성들입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내일은 그저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영광에 가득찬 비범한 내일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한 그의 자녀들이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는 영광의 내일입니다. 이 내일이 있기에 우리는 또한 웃을 수 있습니다. 이 내일을 생각하면, 우리의 가슴은 벅차 오르기 때문입니다.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우리들이지만, 우리에게 이 같은 내일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저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회복한 인생들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기쁨과 평안이 임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 평안은 환난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환난 속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선물들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환난 속에서 기뻐할 뿐 아니라, 영광의 그날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또한 기뻐합니다. 소망은 우리에게 기쁨의 문을 열어줍니다.
IV.
지난 3월28일자 한국일보의 건강면에는 "웃음은 인체 면역력을 높이는 보약" 이라는 제목 하에 재미있는 기사들이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Smile과 Laughter(웃음)는 다르다. 사람이 웃을 때는 우리 몸의 650개의 근육 가운데 231개의 근육이 움직이게 된다. 많이 웃는 사람은 심장병 발병이 적다. Indiana주 볼 메모리알 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하루 15초씩 웃으면 수명이 이틀 더 연장된다고 합니다. UCLA 대학병원 프리드 박사는 하루 45분 웃으면 고혈압이나 스트레스 등 현대적인 질병의 치료도 가능하다고 소개했습니다. Baltimore에 있는 Johns Hopkins 병원에서는 웃음은 바로 Internal Jogging, 우리 내부를 움직이는 jogging과 같다고 환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웃음은 병균을 막는 항체의 분비를 증가시켜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서 웃음을, 어디에서 진정한 기쁨을 찾을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웃으면 좋은 것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서 웃음을 찾을 수 있습니까? 어디에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는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해하면 진정한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빼놓고 재물에서, 소유에서, 명예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노력은 솔로몬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참된 기쁨, 참된 웃음은 오직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데 있습니다.
뇌성마비로 국민학교 한번 가보지 못한 여인,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조차 없는 부자유 속에서 비관스러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기쁨을 찾은 송명희 시인은 그 감격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여 내 마음에
주여 내 마음에 파도가 일 때
나를 잡아 주옵소서
주여 내가 빠져 갈 때에
나를 건져 주옵소서
주여 깨달았습니다
주께만 평안이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의 영혼을 쉬게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뿐이라는 것을
주님의 입술에 참된 진리가 있으며
주님의 눈에 사랑이 흐름을
나는 보았습니다
주여 그 사랑의 샘물로 나를 잠금으로
그 사랑에 이르게 하소서
주님의 숨결에는 아름다운 향기가
있음을 나는 기억합니다
그 생명의 콧김으로 내게 불어주셔서
나를 생령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품에만 기쁨이 있다는 것을
나는 체험하였습니다
주여 나를 다시금 품어서
뜨겁게 하소서
주님께 구원이 있고
주님께만 생명이 있음을
나는 느꼈습니다
주여 햇빛보다 밝은 주님의 얼굴빛으로
날마다 나를 비추어 주소서
주님의 강하심으로 나를 붙들어
반석 위에 굳게 서게 하소서.
* 적용을 위한 질문
1. 오늘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지식을 넘어서는 I & You (나와 당신)의 관계입니까? 함께 살펴보십시다.
2.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느껴보셨습니까?
3.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의 화해에 이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평화에 이르는 길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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