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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3.25. 사순절 넷째주일 - 이효중 목사
"하나님을 신뢰하고 마음을 잘 다스리면"
누가복음 6:20∼26 / 예레미야 1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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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살며 우리가 정말 행복하다고 만족스럽다고 감사하다고
느끼며 사는 날은 며칠이나 될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놀라운 평안을, 기쁨을 약속하셨는데, 우리는 아직도 왜 그리 힘든 인생을 살아갑니까?
혹시 우리의 행복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까?
혹시 우리는 잘못된 것, 행복을 줄 수 없는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크리스챤이라고 하면서 아직도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대로
행복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분명히 우리가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
김재진 이라는 시인이 "가슴 아픈 것은 다 소리를 낸다"는 시를 썼습니다.
별에서 소리가 난다.
산 냄새 나는 숲 속에서 또는
마음 젖는 물가에서 까만 밤을 맞이할 때
하늘에 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자작나무의 하얀 키가 하늘 향해 자라는 밤
가슴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
겨울은 더 깊어 호수가 얼고
한숨짓는 소리.
가만히 누군가 달래는 소리,
쩌엉쩡 호수가 갈라지는 소리,
바람소리,
견디기 힘든 마음 세워 밤 하늘 보면
쨍그랑 소리 내며 세월이 간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가슴 아픈 날들이 많은데 그 인생이 참 빨리도 간다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폴레옹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정복하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와 쾌락과 명예와 권력을 누렸지만 마지막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어가며 자기 생을 통틀어 진정 행복했던 날은 고작 엿새에 불과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데니스 홀리라는 사람은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저서에서 미국인들 중 에 20% 정도만 행복하게고 느끼며 산다."고 보고했습니다. 크리스챤 인구는 20%는 넘는데 나머지 크리스챤들은 어떻게 된거지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주님은 "인자가 온 것은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려하심이라" 말씀하셨는데,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는데,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은 그 날이나 년 수와 상관없이 정말 행복하고 만족스런 복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까? 정말 그렇게 행복하고 복된 날을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선뜻 대답하기가 주저되고 자신이 없다면, (1)혹시 우리가 행복이란 말이나 행복의 상태를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2)혹시 우리는 행복을 주지 못하는 엉뚱한 것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3)혹시 우리는 말로는 크리스챤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세상의 방식으로,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그대로 좇아가며 행복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오늘 이 아침에 이런 주제들을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누가복음 6:20이하를 보십시다. 이 본문을 읽으며 우리는 어떤 위로나 안도감을 느끼기보다는 엉청난 부담과 충격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말씀은 우리가 평소 생각하고 살아오는 방식과는 너무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 대로라면 우리가 통상 "저 사람 저 가정 참 불쌍하다 안됐다" 싶은 가난한 사람들, 먹을 것도 없고 억울한 일 많이 당하고 가정에 우환이 겹치는 그런 사람들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복 받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반면에 우리 대부분의 삶은 안정되어 있고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안하는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우리는 예수님의 기준대로 하자면, 실상 저주받은 불행한 사람들 쪽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던 가난한 자들 그리고 부자들은 도대체 누구를 말합니까?
야고보서 5장 1-6절을 보면 '부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그것들이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본문이 말하는 부자는, 자기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노력해서 된 그런 부자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르스 말리나'라는 학자는 성서의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하여 논하면서, "예수님 당시 중동 내지는 지중해 연안에서 '부자'라고 할 때 그 말은, 그 사람이 부당하게 돈을 모았거나 혹은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모은 자의 자손이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그 당시에 '부자'라는 말은 단순한 경제적인 용어가 아니었고, 사회적인 도덕적인 의미를 갖는 말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에 비추어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자는 권력이나 사회적인 제도를 악용하여 힘없고 연약한 이들의 것을 탈취해 자기 재산을 증식시킨 탐욕스런 사람들을 의미했다고 이해해야 좋을 듯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리세인이나 세리인데, 그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많지 않은 땅을 경작하여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농부들에게, 땅에 대하여는 모든 수확의 십분의 일을, 그리고 포도주와 기름에 대해서는 오분의 일의 세금을 과세했습니다. 이 외에도 그들은 도로 사용료, 마차의 소유권 그리고 마차의 바퀴와, 말에 대한 세금을 납부해야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로마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에게 그리고 헤롯에게도 세금을 내야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으로도 가난했지만, 그 보다 더 현실적으로도 가난했고, 배고프고, 한숨과 눈물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너무 과중한 세금을 내지 못해 어떤 사람들은 집을 버리고 도주하는 일이 있었고 그런 경우에 세리들은 연좌제로 사돈에 팔촌 모든 연관되는 가족을 괴롭혔습니다. 만약 세금을 못내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을 시장이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 끌어내고 그 사람 목에 모래 자루를 메어 달고 뙤약볕에 세워두고 하루종일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도록 고문하고 구타했습니다. 이런 너무 지독한 고문이나 치욕을 염려해 세리에게 잡혀 고생하는 신세가 되느니,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런 가난하고 가슴아픈 사람들과 같이 우시며, 그들을 붙들고 "용기 내라고, 실상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들의 것이라고" 위로하신 것입니다. 그런 상처 많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받아주시며 "하나님이 너희들의 고통과 눈물을 아시고 꼭 갚아주신다고 힘내라고" 위로하셨던 것입니다. 반면에 사회 정치적인 제도를 악용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혈을 빨며 종종 타국에서 휴가도 즐기는 세리와 바리세인들에게는 너희들은 저주받는 불행한 자들이라고 마구 욕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남이야 어찌 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더 많이 모으고 더 많이 쌓으려는 인간의 이기심을 꾸짖으신 것이고 그 무뎌진 양심을 탓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행복의 근원되신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세상의 물질과 재물에 행복이 있다고 믿고, 더 많이 모으고 쌓기에 급급했던 잘못된 행복관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나 물질에서 행복을 찾는 일은 죽었다 깨나도 안되는 어림없는 일이라고" 경고하시는 겁니다.
예레미야서를 보십시다.
1절을 보면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자녀가 높은 산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며......"
예언자 예레미야가 유다의 죄를 지적하고 꾸짖습니다. 하나님의 다가올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그 들의 죄는 무엇입니까? 본문에 "높은 산 위 푸른 나무 곁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산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목상 즉 아세라 여신상을 섬겨 우상 섬기는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그게 뭐가 그리 심각한 죄라고 예언자들마다 수없이 그 우상 섬기는 죄를 실날하게 공격했나?" 하고 의아해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아세라는 주로 나무에 새겨진 목상이었는데 사람들은 그 여신을 숭배하면, 그 여신이 모든 것 곡식 땅 전쟁 등에서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습니다. 고대세계에서 자녀를 특히 아들을 많이 낳는 것은 축복의 척도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출산하지 못하는 것은 저주 혹은 신의 노여움의 결과로 여겼습니다. 모든 축복과 번영은 출산과 연결 지어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세라라는 여신을 섬기고 예배하면, 어떤 여인이 어느 가정에 많은 자녀를 낳아 집안에 번영과 안정을 가져다주는 듯이, 여호와 대신 아세라 신을 섬기면 엄청난 번영과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세라 여신을 섬기고 예배하는 행위의 일부로 아세라 성전에서 창녀들과 난잡한 성행위를 하는 것을 예배의 일부로 여겨졌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죄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영적으로 번영이나 풍요를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기서 행복을 찾는다는 우상숭배의 죄였고 또 다른 것은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 성적 부도덕한 삶을 살았다는 죄입니다.
어떻게 보면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말씀과 예레미야의 말씀은 전혀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 본문은 공통적으로 물질적인 눈에 보이는 풍요와 권력을 추구하며,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것들에 모든 정성과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는 인간들의 죄악을 지적하는 경고의 말씀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많은 것이 행복한 것이고, 더 많은 권력을 누리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쾌락을 추구하며 사는데, 심지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착취든 우상 숭배든) 더 많이 모으며 쌓으려고 살아가는데 그것은 실상 저주요 화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가난한 것 자체가 아름답고 영광스런 것이라고 부축이지 않습니다. 부 자체가 죄이거나 저주의 대상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부의 축적이나 권력의 축적에 행복이 있다고 착각하고 갖은 수단과 시간과 노력을 기울려 그것들을 좇고 그것들에 얽매여 사는 인생들을 화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에 와보니 우리 교포들이 정말 바쁘게 사십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 정도면 안정되었고 살만하신 대, 뭐 굶는 것도 아니고 입을 것이 없는 것도 아닌데, 참 바쁘게들 사십니다. 좀 신앙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하실 것을 부탁 드리면 "지금은 제가 너무 바빠서,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지금 말고 나중에 시간이 좀 한가해 지면 하겠습니다."그러십니다. 물론 부득이한 사정상 일주일 내내 일을 하실 수 밖에 없는 그런 안타까운 사정에 계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왜 그리 바쁘고 분주한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까? 꼭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혹시,
- 남들이 그러니 지금 잘 달리고 있는 차를 체면도 생각하고 해서 좀 더 좋다는 차로 바꿔야 하기에 그리 바쁘지는 않으십니까?
- 지금 사시는 집이 가족 수에 비해 보면 결코 비좁지 않은데 큰 집으로 아니면 새 집으로 이사 가야 되서 그리 바쁘지는 않으십니까?
-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가구들이 멀쩡하고 아직도 쓸만한데 구색을 맞추느라 새것으로, 아니 "어디 어디 제로"바꾸느라 그래서 바쁜 것은 아닙니까?
- 연봉이나 직위가 그 정도면 된 듯 싶은데 그래도 누구만큼은 돼야지 그래도 누구보다는 좀 나아야지 해서 그렇게 바쁜 것은 아닙니까?
- 노후 계획도 해야합니다. 그런데 그 정도면 된 듯한데, 이 정도로는 안심이 안돼 그래도 자식들한테 아쉰소리 안하고 편안히 살려면 조금 더 모아야지 그래서 바쁜 것은 아닙니까?
열심히 부지런히 일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일이나 일을 통한 부의 축적을 하나님보다 중요시하고 거기에 얽매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리고 성경이 정죄하는 부는 다른 게 아닙니다. 내가 필요한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탐욕 greed라 할 수 있고 그 탐심의 다른 이름은 "쪼금만 더"입니다.
* 어떤 사람이 동굴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너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기도하던 사람이 처음에 너무 좋아서 정신을 못 차리다 드디어 말하기를 "제가 마음에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다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안됐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시며 "그게 정 네 소원이면 그대로 되게 해주겠다"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하고 놀랍게 이 사람이 마음에 생각하는 것은 한가지 씩 다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원하면 그 음식이, 돈과 보석을 원하면 그 보석이. 너무 좋은 나머지 한참 생각을 하다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가 하면 "이거 참 기가 막히게 좋은데 혹시 이 동굴이 갑자기 무너지면 난 어떻게 되지"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동굴에 깔려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방금 들려드린 동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시며 많이 웃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좀더 조금 만 더 하며 물질과 부와 권력을 좇아갈 때, 거기 "조금만 더"에 행복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정신없이 좇아가는 동안 우리의 가정이라는 동굴이 무너지고 그 아래 우리의 자녀들이 압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우리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정말 좋은 친구들과 좋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 가버리고 우리는 외톨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자식은 예외겠지 겐 믿어"했던 아이들이 마약과 SEX에 갱에, 그리고 학교에서의 퇴학이라는 동굴이 무너지는 사건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아라비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탐심은 벗어난 욕망이다. 그에게는 딸이 있는데 그 이름은 '부정'이고 친구가 있는 대 친구의 이름은 폭력이다." 여러분 '조금만 더'와 '행복'은 결코 얼굴을 마주 치는 법이 없습니다. 연봉을 더 많이, 권력을 좀더, 좀 더 넒은 집을, 좀 더 흥분되는 쾌락을 좇는 사이 우리의 동굴이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나 잘 살피십시오.
지금까지 "좀더 많이"에는 결코 행복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까요. 예레미야서로 다시 돌아갑시다. 본문은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은 7-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니라."
성도의 행복은 아무 문제도 없고 모든 게 항상 내 뜻대로 잘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8절 말씀처럼 인생에 "더위도 오고 가뭄도 오겠지만", 그런 가뭄과 더위와 한숨과 눈물 속에서도 넉넉히 이기는 그런 행복을 말합니다. 그게 크리스챤의 행복입니다.
* 작년에 저희 교회 나오시기 시작한 이광숙 자매님이 계십니다. 사순절 새벽기도에 나오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도넛 공장을 하시는 분입니다. 이 분 말씀이 "전에 교회 나오기 전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다 좀 이상한 사람들로 보였고, 나는 교회나 예수 믿는 것과는 아무 연관이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인생을 사셨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 열쇠를 안에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근 바람에 교회에 전화 좀 빌려쓰러 오셨다가 그 이후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자매님을 만나면 항상 하시는 말씀이 "감사합니다. 참 기뻐요. 예수 믿으니 이렇게 편안하고 좋은 걸 진작 믿을 걸 그랬어요." 그러십니다. 이 분 만나 보세요. 이 분의 행복은 진짜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 믿고 예수 의지하면 행복이 있습니다. 가짜로 말고 진짜로, 형식적으로 말고 제대로, 졸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십자가의 고난과 대속을 통해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그 주님과 같이 사십시오. 그러면 행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우리가 할 바는 최선을 다하지만 궁극적인 것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유대 지도자들에게 당당하게 선포했습니다. "천하 만민에 예수 외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맞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그리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죽었다 깨나고 세상이 천번 만번 변해도, 예수 믿고 예수 신뢰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두 번째로 9-10절을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행복하려면 하나님을 신뢰할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9절에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라는 말은 '야코브'인데 그 말은 "발 뒤꿈치, 뒤에서 공격함, 뒤에서 공격하는 무기"등을 의미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종잡을 수 가 없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질투하고 비교하고 미워하고..... 그래서 우리에게 상처와 후회를 초래합니다. 우리 마음을 하나님을 신뢰하고 두려워하며 잘 관리고 돌보지 않으면 꼭 나중에 뒤에서 해꼬지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은 부패하기 쉽고 부패라는 말은 병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병들기 쉽고, 우리 마음이 병들면, 아무리 좋은 조건에 놓였어도 모든 것을 다 가져도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병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잘 지켜나가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4:23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마음을 지켜 주변의 적은 일에 감사하고 행복을 찾을 때 거기에 풍성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 IT DOES MAKE YOU FEEL GOOD이라는 제목입니다.
- Falling in love.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
- Laughing so hard you face hurts. 얼굴이 아플 정도로 실컷 웃는 일
- No line at the Super Wal-Mart 샤핑 갔다가 계산대 앞에 섰는데 자기 앞에 아무도 없을 때
- Getting mail. 편지 받는 일
- Hot towels out of the dryer. 드라이어에서 금방 꺼낸 따듯한 수건의 촉감
- Hearing your favorite song on the radio. 우연히 라디오를 틀었는데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듣게될 때
- Having some one tell you that you are beautiful.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내가 멋있게 생겼다는 말을 해줄 때
- Finding a $20 dollar bill in your coat from last winter. 작년 겨울에 입던 옷을 꺼내 입었는데 거기서 이십불 짜리 지폐를 발견했을 때
- Waking up and realizing you still have a few hours left to sleep. 자다가 깼는데 아직도 몇 시간 더 자도 되는 것을 발견했을 때
- Your first kiss. 당신의 맨 처음 키스
- Making eye contact with a cute stranger. 우연히 귀엽게 생긴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 Running into an old friend and realizing that some things never change.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는데 세월이 흘렀어도 전혀 변하지 않은 친구의 여전한 모습을 발견했을 때
- Watching the sunrise. 해뜨는 것 바라보는 것
- Getting out of bed every morning and thanking God for another beautiful day. 잠자리서 일어나 아직도 내가 살아있는 것을 느끼며 또 하루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때
적은 일들에 감사할 수 있는, 적은 일들로 미소 지을 수 있는 마음이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김재진 이란 사람은 "가슴 아픈 것은 다 소리를 낸다"는 시를 썼습니다. 실상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아픔의 소리를 낼 수 밖에 없는 그런 날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우리가 마음을 잘 다스려 주변의 적은 일들에서 행복을 찾기 시작하면, 우리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행복한 사람들이 됩니다. 넉넉히 이기는 사철 푸른 나무 같은 행복한 사람들이 됩니다.
* 적용을 위한 질문
1. 내가 지금 "이것이 있으면 더 행복할 텐데"하며 추구해왔던 것을 한 가지 씩 이야기 해봅시다.
2. 사소한 것인데 하나님 안에서 생각해보고 살펴보면 감사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세 가지 씩 이야기 해봅시다.
3. 어떻게 하면 복잡하고 폭력과 탐욕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지켜나갈 수 있겠는지 이야기 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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