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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3.18. 워싱톤서(9)/사순절 셋째주일 - 조영진 목사
아브라함도, 다윗도
로마서 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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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의롭다 하심 받은 구원의 진리는 이미 구약성경 속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좋은 예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아브라함은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내게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습니까?
나는 믿음을 통해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
지난 주일 저는 죄인된 인생들을 향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말씀드렸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함 때문도 아니고 할례를 받았다는 사실 때문도 아닙니다. 율법 외에 우리를 의롭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로서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생들 사이를 가로막는 죄의 짐을 십자가 위에서 대신 지시고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를 가져오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진리를 믿는 사람들, 이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기억조차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행위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믿음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의 법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이룩한 업적 때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행한 선행 때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롭게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저 찬송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이 같은 놀라운 은혜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 성경 속에서 말씀되어졌었습니다. 예고되어지고, 약속되어졌었습니다. 구약의 약속들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남김없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예언자들의 외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 속에서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I.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자신의 외침의 증거를 오늘 본문 4장에서 논의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역사는 이미 구약 성경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증거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1) 먼저 아브라함에 대해서 살펴보십시다. 성경 창세기 15:6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향을 떠납니다.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낳을 전망은 점점 어두워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집에서 기른 엘리에셀이 내 후사가 될 것이라고 제 나름대로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15:4에서 말씀하십니다. 엘리에셀이 아니고 네 몸에 태어나게 되는 아들이 네 후사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시청각 교육을 시키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많은 별들을 셀 수 있는가 보아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이 이 약속, 이 약속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오늘 성경 4:2이 지적하는 것처럼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한 때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흉년이 들어서 애굽으로 옮겨갔을 때는 자신의 몸의 안전을 위하여 아름다운 아내 사래를 누이동생이라고 하는 바람에 애굽 땅에서 한때 아내를 빼앗기기도 했었습니다. 많은 의로운 삶의 모습도 있었지만, 결코 하나님 앞에 온전한, 의로운 인생은 못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을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율법 때문에 의롭다함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때는 아직 율법이 주어지기 전 이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훨씬 후대에 이르러 모세를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또 할례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겨 주신 것은 바로 할례 받기 전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와 함께 사는 남자들이 할례를 받은 것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어서입니다. 그리고 이 할례 받은 이야기는 창세기 17장에 가서야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었기에, 그 표시로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case를 보아도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행함 때문도, 율법 때문도, 할례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2)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의 경우는 오늘 본문 4:6-8에서 시편 32:1-2의 말씀을 인용해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지나갑니다.
일한 것이 없이, 대가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다윗 역시 행위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은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왕이었지만, 그의 인생도 결코 온전치 못했습니다. 다윗 답지 않게 엄청난 죄를 짓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간음죄에 살인죄까지 지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충성스러운 부하 장군인 우리야의 아내와 불의의 관계를 맺고, 이 여인이 임신하게 되자 이 범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우리야를 소환, 휴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계획대로 되지 않자 그를 최전선에 내어 보내 죽게 했습니다. 이런 다윗이었기에 그가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율법으로도 그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율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할례 받았다는 사실로도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했고, 그 자비하심 안에서 용서하심을 받는 행복을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 죄를 가리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노래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에 뛰어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이었습니다. 한사람은 믿음의 조상으로, 다른 한사람은 명군으로 역사 속에서 존경을 받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행함으로나, 율법, 혹은 할례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 자비하심을 의지하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II.
여기에서 바울의 논리는 분명해집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 이것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바로 이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이 믿음의 법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좇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어진다고 외칩니다. 본문 4:13 이하를 보십시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들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페하여 졌느니라."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들에게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이 약속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의로 이루어집니다. 이 약속은 율법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가지고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처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아브라함처럼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졌었습니까? 우리가 지녀야 할 아브라함 같은 믿음이란 어떤 믿음입니까?
(1)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믿었습니다. 본문 4:18 이하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바라면서 믿었으므로 '너희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100세가 되어서,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사라의 태가 또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표준 새번역)
그의 현실은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자기나 아내 사라의 몸을 보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제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 역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떻게 100세가 되어서 아들을 낳습니까? 어떻게 생리적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게된 아내 사라가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믿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이야기, 믿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특별히 그렇게 고귀한 은혜를 값없이,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는 사실이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려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무엇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믿음에 무엇이라도 덧붙여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평소에 양심적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귀한 은혜를 값을 지불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소치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참으로 귀한 것은 거저 주어지거나, 대단히 싼값에 주어집니다. 공기가 없으면 한순간도 견딜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공기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은혜로 주어집니다. 태양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양 빛이 없다면, 우리는 한순간에 얼어죽고 맙니다. 그런데 이 귀한 태양 빛을 값주고 사셨다는 분,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Good News 역시 믿어지지 않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약속도 믿을 수 있었습니다. 본문 4:21을 보십시다. 표준 새번역을 보면, "그는(아브라함)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하신 바를 능히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 입니다. 하나님을 자기만도 못한 분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능력의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어지지 않는 약속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믿으면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이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도 믿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매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하시는 은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용서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믿으면,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 구원의 기쁜 소식도 믿을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신약 뿐 아니라 구약에도, 특별히 아브라함과 다윗에게도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III.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일화 중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웨슬리가 영국 하운슬로우 히드라는 산악지방을 혼자서 말을 타고 다니며 전도 여행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번은 "이놈 멈춰"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큰 육혈포(권총)를 겨누고 있는 강도였습니다. 웨슬리는 늘 말 타고 여행하는 중에 독서를 하였기 때문에 가진 것은 책들뿐이었습니다. 강도는 몹시 기분이 나쁜지 투덜거리며 돌아섰습니다. 이번에는 웨슬리가 소리쳤습니다. "이놈 멈추어라!" 놀라는 강도에게 웨슬리는 말했습니다. "잘 듣고 잊지 말거라,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너와 나의 죄를 깨끗이 씻을 수 있느니라."
그후 10년이나 지나 웨슬리가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한 신사가 웨슬리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바로 10년 전에 강도였는데, 지금은 그 교회의 직원이고 동네에서 성공적으로 가게를 경영하는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시나무가 영광의 면류관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 강도는 그때 웨슬리가 말한 예수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다는 그 말에 끌려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믿으면,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새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이 믿을 때입니다. 아니 지금이 믿을 때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를 이 은총의 길로 부르고 계십니다.
* 적용을 위한 질문
1.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 믿음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공통점을 갖습니까?
2. 우리 주변에서 믿음으로 새 삶을 찾은 사람이 있으면 함께 나누십시다.
3. 오늘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무엇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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