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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3.11. 워싱톤서(8)/사순절 둘째주일 - 조영진 목사
오직 믿음의 법으로
로마서 3: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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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은혜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입니다.
왜 이 길이 기쁜 소식입니까?
나는 이 복음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
그 동안 저는 인간의 죄인됨에 대한 사도 바울의 증언을 여러 차례에 걸쳐서
말씀드렸습니다. 우주 만물 속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능력이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도,
마음 속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인생들의 모습, 이들을 비판하는 도덕론자들, 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유대인들, 그들 모두 역시 죄인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의인은 한사람도 없기에,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도 바울의 외침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 동안 계속 죄인됨을 말씀드리다가 보니 제 마음이 답답하고, 어서 빨리
이 같은 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이 같은 심정은 많은
선배 목사님들도 역시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서울 사랑의 교회를 섬기시는 옥한흠 목사님은 권사님
한 분이 찾아오셔서 "목사님, 로마서 설교를 계속 들으니 정말 가슴이 답답합니다. 죄 이야기만
들으니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모릅니다. 목사님, 설교 내용을 좀 바꾸어 보실 의향이 없으세요?
"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성경 말씀이 그렇게 가르쳐 주시는데 난들 도리가
있습니까? 아무리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합니다. 저는 그래도 설교 할겁니다." 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꿈을 주는 것을 보니
교인들이 로마서 설교를 들으면서 죄의식을 많이 느끼는가 보다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심정입니다.
그런데 이 죄인됨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 인생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관계가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에 제일 큰
변화를 가져오는 관계가 무엇입니까? 친구와의 관계, 중요합니다. 가족과의 관계, 중요합니다. 소유하고
있는 재물과의 관계, 중요합니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고, 제일 근원적인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으신다면, 그분과의 관계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분과의 관계가 바로 서면, 이 관계는 바고
내 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내 인생에 새 날을 열어주게 됩니다. 우리 인생들이
죄인이라는 성서의 증인은 바로 이 관계가 잘못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고, 죽어있음을 말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죄인된 인생, 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인생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좀 다를 것입니다. 이 같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I.
먼저 오늘 말씀은 지금까지 외쳐온 사도 바울의 증언을 새롭게 정리하면서
출발합니다. 본문 3:20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이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이
갖는 한계, 아니 율법 앞에 선 인간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주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인생이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 그 기준에 도달하게 될 때, 우리는
의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행함, 율법을 지키는 일이
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삶의 현실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율법을
말하고, 율법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제대로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율법의 백성,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임을 자랑했습니다. 지키라고 주신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 문제를 깊이 있게 성찰한 사도 바울은 결론적으로 선언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여러분, 왜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까?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그 많은 율법 가운데 한가지라도 어겼다면, 그 사람은 율법을 어긴 사람입니다. 율법
앞에서 의롭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오늘까지 율법을 잘 지켰다고 해도 누가 압니까?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압니까? 율법을 지키는 데서 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살얼음판을 걷는
인생과도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선언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그렇다면 율법은 불필요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주셔서
인생들에게 죄책감만을 심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밝힙니다.
율법은 무용지물이 아니라고, 율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밝힙니다. 그는 율법이 갖는 효능의 하나로
율법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해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적질하지 말라"는 율법이 없었다면 도적질이 죄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이 없었다면, 살인하는 것이 죄인 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율법이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율법은
율법대로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다시 이 문제를 다루면서 말합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인됨을 깨우쳐서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 길잡이가 된다고 증거
합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에 이르지 못하는 부족한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죄를 범하며 살고 있습니다.
II.
그런데 이 같은 인생들, 죄인된 우리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역사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우리 가운데서 행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3:21 이하에서 외칩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첫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의로우심, 혹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뜻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역사의 모습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십시다.
(1) 첫째로 3:21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롭게
하시는 역사는 이미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는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성서 속에서 약속되어지고 증거되어 졌던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율법과 선지자들이란 구약을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는 구약 성서 속에서 약속되어졌던 사실들이 바로 성취된
역사입니다.
복음서, 특별히 마태복음서를 보면, 이 사실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신 것, 에집트로 피난가셨던 것, 나사렛에서 자라신 것, 그가 행하신 모든 역사,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일,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일, 이 모든 역사는 바로
구약성서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약속, 예언자들의 외침의 성취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역사,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역사는 이렇게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해 증거되어 졌습니다. 다음 주일에 말씀드릴 로마서 4장에 기록된 아브라함에 대한 증거도 이를 분명히
뒷받침 해줍니다.
(2) 둘째로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의롭게 하시는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 역사 속에서 일하셨습니다. 허공에서 바람잡는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라는 역사를 살아가신 분, 그분을 통하여 인생들을 의롭게 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이룩하셨습니다.
먼저 3:24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구속"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속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종으로 팔리게 된 사람을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이
대가를 지불하고 풀어줄 때, "구속"이란 말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가를 지불하시고,
죄에 매인 인생의 현실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를 죄의 종된 자리에서 풀어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불하신 대가가 무엇입니까? 이어지는 본문 3:25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함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예수님 그분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케하는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화해를 위하여 제물을 드렸는데,
이 제물을 화목제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어로는 fellowship offering, 혹은 peace offering이라고 옮겨
놓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 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바로 이 십자가의 죽으심은 죄로 말미암아 깨어졌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화해에 이르게 하는 제물로서의 죽으심이었습니다. 바로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온전히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3) 그러기에 이 같은 구원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큼 온전한 인생들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인된 모습 그 자리에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시고, 그분의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 모든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가능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은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용서해 주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용서가 우리의 죄에 대한 징계를, 책임을 면해 주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의인(義認, Justification),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은 용서를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뜻합니다.
은혜입니다. 전적으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외침처럼 "자랑할 데가 있느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내 공적 때문이 아닙니다. 나의 선한 삶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너그럽게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은혜의 법 때문입니다.
(4) 그런데 이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주시는 은혜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믿음을 통해서 입니다.
믿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 acceptance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해도 그 사랑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랑을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내게 임할 수 없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됩니다.
제가 늘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비가 아무리 폭우로 쏟아져도 그릇을 엎어놓으면,
그릇에 물 한 방울 고이지 않습니다. 비를 담으려면 그릇을 돌이켜 놓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놀라운 사랑, 은혜의 역사를 이룩하셨다해도 그 사랑, 그 은혜를 믿지
않으면, 내가 받아드리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인된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은총에 대한 응답의 법을 사도 바울은 "믿음의 법"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3:27 이하를 보십시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있느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이 믿음의 법은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할례자이든 무할례자이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에게나 열어 주신 은총의 길입니다. 믿음의 법 안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우월감도 발 부칠 곳이 없습니다. 피부 빛깔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유식한가 무식한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재물이 많은가 적은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시민권자인가 영주권자인가,
체류 신분이 합법적인가의 여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믿음의 법은 모든 인생들에게 열려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은혜의 역사에 응답함으로, yes하고 받아드림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III.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인생들을 죄 가운데서 건져내시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아들을 보내 주시고 화목제물이 되게 하시는 은혜를, 사랑을,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믿는 사람들, 받아드리는 사람들을 오늘도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다.
우리가 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때문입니다.
이 은혜의 역사, 믿음의 법이야말로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것입니다.
율법은 행동을 말하지만, 믿음의 법은 행동을 낳는 마음, 인간의 중심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sins,
죄된 행동들과 관계가 있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런 행동들을 낳는 sin, sinfulness, 죄인됨과 관계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내가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크신
은혜로 믿음의 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믿지 않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
보다 더 좋은, 든든한 빽이 있으십니까?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 앞에서 뭐 자랑할 것이
있다고 거부하시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거부하시는 것입니까? 왜 이 놀라운 은총을
받아 드리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받은 놀라운 사랑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amazing grace,
놀라운 은혜를 받은 인생인데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928년 뉴욕 Brooklyn에 있는 Plymouth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일 예배
시간에 한 흑인 할머니가 교우들 앞에서 한마디만 간증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강단에 선
할머니는 기쁨에 찬 표정으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68년 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1860년
9월19일 주일이었습니다. 나는 한 노예 소녀로 이 교회 밖에 있는 광장에서 경매에 붙여지고 있었습니다.
내 앞길은 완전한 암흑 뿐이었습니다. 저는 몹시 울며 멀리 팔려 가는 아버지를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나 자신을 경매에 붙이는 순간이 되었을 때, 이 교회의 예배가 끝나고 막 밖으로 나오신 그 당시의 담임
목사 헨리 비처(Henry Beecher)씨가 노예 상인에게 8백달러란 큰 돈을 내어 주며 저를 사서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이 교회 교우들이 한 명의 노예라도 구하여 자유를 주자고
결심하여 전교인이 헌금을 모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혜택을 제가 받은 것이지요. 그날 이 교회당
안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저 바깥 광장과의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를 지금의 여러분은 상상조차 못할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헌금을 드리고 사랑의 기도를 드리던 이 교회는 바로 천국이었고,
같은 시간에 저 바깥에서 오직 돈을 벌기 위하여 인간을 매매하고 채찍질하고 고함지르던 그곳은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흑인 할머니만 자유함을 얻은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도 죄의 노예된 삶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800 대신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귀한 생명이, 값진 보혈이 드려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믿음의 법을 통하여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놀라운
사랑입니다.
믿으시면 됩니다. 믿으시면 이 은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믿으시면 됩니다.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적용을 위한 질문
1. 율법과 믿음의 법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무엇이 다릅니까?
2.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당신에게서 누구십니까? 예수님께서 내 삶에 주신 영향은 어떤 것들입니까?
3. 나는 과연 구속함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받은 기쁨과 감격을 보셨습니까? 함께 나누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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