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일전에 사석에서 이 이야기를 조 목사님께 드렸더니 듣자 마자 하시는 말씀이 "목사들도 그래야 되는데..." 하시는 겁니다. 전문성에 대한 도전을 받는 겁니다. 프로의 근성을 향해 뿌리는 눈물과 땀을 아쉬워하는 겁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모습....어느 벤쳐 기업의 사무실에서 본 글귀가 생각납니다.
"아마츄어로 시작해서 프로로 죽어라"
바로 이러한 면에서 우리는 지도자에 대한 꿈을 꿉니다. 특별히 이렇다할 고생 없이 자라난 우리들의 자녀들의 가슴에 땀과 눈물의 감동을 심어 줄 차세대 지도자에 대한 꿈을 꿉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탁월함과 동시에 영적인 분야의 대가가 되기 위해 땀과 눈물을 뿌릴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바램과는 달리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인 1.5세대와 2세대를 가슴에 품고 나아갈 지도자를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낯선 이 땅 위에서 우리 부모세대들의 뿌린 눈물과 땀 덕분에 이제는 이 땅의 주류사회를 향해 자랑스럽게 나가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을 맡길 수 있는 영적 지도자를 찾는다는 것. 이제는 모든 이민교회의 숙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디에선가 알아서 오겠지 혹은 누군가 소개해 주겠지 라는 차원에서는 우리가 기다리고 기대하는 지도자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 안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꾼을 발견하고 그를 격려하며 일으켜서 탁월하고도 땀과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을 맡길 수 있는 영적 지도자로 키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III
이런 면에서 놀랍게도 성경은 온통 사람을 길러내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주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제자들을 찾아 세우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일 또한 흩어졌던 제자들을 다시 불러모으시고 다시 그들을 격려하며 일으키셔서 마침내 탁월하고도 땀과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초대교회의 거장들로 세우십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사역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본문에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의 제기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하고 떠나갔던 베드로. 분명 그는 어떤 의미에서든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실패보다 더 불행한 베드로의 모습은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베드로. 우리는 그의 낙심된 마음을 오늘 의 요한복음 본문과 연결되어 있는 21장 3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다시 말하면, "이제 다 소용없다. 그러니 말리지 마라. 나는 물고기나 다시 잡으러 가겠다" 이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베드로의 이야기의 끝일까요? 아닙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인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좌절과 절망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인생 중 가장 드라마틱한 제기의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베드로가 제기할 수가 있었습니까? 사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포기했습니다. 자신에게 절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포기한 베드로를 포기하지 못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베드로의 주님이었던 예수그리스도이셨습니다. "네가 나를 포기해도 나는 너를 포기할 수 없다. 실패는 너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에 불과하다." 이것이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셨습니다.
제 작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 가운데 하나는 강영우 박사가 쓴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 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맹인으로서 한국 최초의 박사였던 강영우 박사의 삶을 그린 일종의 자서전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 보면, 자기의 둘째 아들이었던 진영이의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진영이가 중학교 일 학년에 들어갔을 때 숙제 하나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슴지 않고 진영이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마이클 조던 이라는 농구선수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 스포츠의 천재를 좋아하는 이유를 쭉 썼습니다. 그것이 중학교 들어가서 쓴 숙제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철이 들고 중학교를 졸업하는 중학교 3학년 때 공교롭게 꼭 같은 숙제를 다시 받았습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그때 진영이는 존경하는 사람을 바꾸었습니다. 더 이상 마이클 조던이 아니라, 그 분은 내 아버지라고 썼습니다. 맹인의 핸디캡을 딛고 일어나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50인중의 한 사람으로 뽑혀서 수없이 많은 어두운 사람들에게 빛을 전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자기의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좀더 시간이 흐른 후에 진영이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나에게 만약 다시 한번 똑같은 제목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또 바뀔 것 같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나의 어머니가 될 것 같다. 내가 좀더 철이 들면서 생각해 보니까, 우리 아버지가 그 어두움의 시간을, 그 곤고한 시련의 시간을 견디고 일어설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힘 그것은 바로 엄마의 사랑이었다. 한평생 아빠를 변함없이 사랑해주고 격려해주고, 그 곁에 머물러서 아빠의 눈이 되고 아빠의 손이 되고 아빠의 발이 되어 주셨던 우리 엄마, 그러면서 우리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준 우리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지금의 아버지가 될 수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IV
다시 갈릴리 바닷가로 가보겠습니다. 어떤 사건이 베드로에게 일어납니까? 여러분, 베드로의 변절 이후, 이 베드로와 예수님의 첫 번째 만남의 장면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주님은 놀랍게도 해변가에서 생선요리를 만들어놓고 제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첫마디 음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의 입장이 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만약 예수님의 입장이었다면 나를 배신한 괘씸한 제자를 만났을 때 나는 무슨 얘기를 할까 생각하면 저는 아마도 이런 얘기를 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춘향정의 변 사또처럼.. "네가 네 죄를 알렸다!" 아니면 다짜고짜 달려가 "이 나쁜 놈아 네가 은혜를 웬수로 갚아...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나를 배신했니? 어디한번 얘기나 좀 해 보자!" 이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베드로를 향한 첫 마디에 다른 소리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저 "예수께서 와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다시 말해서 다른 소리는 일절 안 하시고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밤새 얼마나 추웠냐? 배고프지? 어여 와서 아침 먹어!".
어여 와서 아침 먹어! .... 이 말이 저게는 또 다른 기억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서대문에 있는 감리교 신학대학에 다닐 무렵은 군사독재로 인해 학교들이 휴교를 한 채 데모를 하고 등교거부를 하는 등 모든 학사일정이 마비가 되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수업을 안 할 수도 있는데, 문제는 학교 기숙사에 남아있는 학생들의 식사문제였습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서 고향에 내려간 학생들도 많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무작정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도 그 틈에 있었는데 문제는 아침식사였습니다. 점심이나 저녁은 근처 교회나 친구들, 선배들한테 찾아가서 해결한다지만 늘 아침만은 굶기가 일쑤였습니다. 가지고 있던 돈도 떨어져 갔지만, 당시 넉넉지 않은 신학생들 입장에서 매번 아침을 사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이 뭐냐하면, 신학교 근처의 식당집을 기웃거리며 흘낏 흘낏 식당 안을 쳐다보기도 하고 식당에서 풍기는 아침 해장국 냄새를 맡으면서 배고픔을 달래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들에게 갈릴리의 예수님이 아닌, 서대문 냉천동의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전라도 사투리를 하시는 60대 할머니, 바로 '행자네'라는 식당의 주인 할머니셨습니다. 이 '행자네'라는 이름은 자기 딸의 이름, 행자를 따서 붙였는데 평소에도 가난한 신학생들을 위해 싸고도 푸짐하게 음식을 주셨던 인정 많은 식당이었습니다. 데모로 인해 학교가 휴교하고 학생들이 나오지 않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들은 학교와 함께 문을 닫고 휴업으로 들어갔는데, 유독 이 할머니 가게 '행자네'만 문을 열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침만 되면 식당 근처를 기웃거리는 배곯은 신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욕을 반쯤 석어서 "이눔들아, 아 뭐해 어여 와서 아침 먹어, 아니면 문 닫을꺼여!...."
그 예수님은 욕도 잘 하셨지만 배고픈 우리에게는 할머니의 말은 욕으로 들리지 않고 'Good News'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을 국에다 말아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은 "네가 니들 때문에 이만큼 살았는데 돈벌이 안 된다고 문 닫으면 내가 천벌받지..." 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공짜는 띴어. 이 다음에 교회해서 돈 많이 벌면 다 갚아" 교회도 가보시지 않은 할머니였지만 그분은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한참 먹을 때라 어떤 친구는 국밥을 빨리 먹고 나갔다가 한 10분 후쯤 다시 들어오기도 했지만 알면서도 묻지 않으시고 다시 국밥을 말아주셨던 할머니셨습니다. 친구 따라 저도 한번은 그렇게 국밥을 두 번 먹게 됐는데 제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으신 채, 국밥을 말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놈은 뱃속에 그지가 들었나? 그래도 잘 먹으니 좋다. 잘 처먹어 체하지 말고"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먹는 우리들이 하도 미안해 하루 걸러서 나가기도 했지만 그렇게 꼬박 할머니는 두 달 가까이 아침마다 가난한 신학생들에게 국밥을 주셨습니다. 그 후에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국밥 값을 내라고 하는 얘기도, 그래서 갚았다고 하는 얘기는 아직도 못 듣고 있습니다. 그 행자네가 아직도 냉천동 그 자리에 있는지, 그 할머니가 살아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때의 국밥을 먹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던 그 할머니의 말씀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눔들아 아 뭐해 어여 와서 아침 먹어..."
그분은 국밥을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우리가 누구인지 한 명도 제대로 알고 계시지 않았지만 묻지도 않으시고 그저 누구에게든지 당신의 국밥을 말아주셨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을 위해 생선을 구워주셨던 것 같이 말입니다. 나중에라도 길에서 인사라도 하면 "누구시더라?" 그게 인사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당신도 모르는 학생들이 그때의 그 사랑을 먹고 지금은 다 교회의 목사로, 선교사로, 사역자로, 신학교 교수로, 미션스쿨의 선생님으로 있는 곳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가슴에 안고 말입니다.
그리고 조반 먹은 후에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또 만약 주님께서 베드로의 식사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시고 식사 중에라도 "너 나와 좀 얘기하자!" 이랬으면 베드로는 분명 체하거나 소화불량에 걸렸을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사랑의 표현이십니다. 다 먹은 후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시몬아 네가 나를 아직도 사랑하니?"입니다. 야단을 치시며 왜 그랬느냐고, 아니 설령 매를 때리신다해도 아무 할말이 없을 베드로에게 "시몬아 네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니?" 라는 주님의 말씀 때문에 베드로의 얼어붙은 가슴은 녹아 내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한가지 결론 앞에 도달했을 겁니다. "아! 주님은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구나" 바로 이것이 베드로가 일어날수 있었던, 제기할 수 있었던 동기였던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버려도, 사람이 나를 버려도 나의 주님,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 나를 버리지 않는다면 나는 일어설 수 있다".
그리고 베드로는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이 사랑만 있으면, 이 사랑을 나누어 주기만 하면 모든 인생은 누구든지 일어설 수 있구나.....
V
오늘은 1년에 한번 장학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자녀들인 1.5세와 2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믿음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양육할 예비 목회자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 위해 그들을 격려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당신들에게 아름다운 만남이 되고 싶다고, 당신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하는 뜻을 모으는 뜻 깊은 주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이 땅위에서 아름답고 건실하게 자라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우리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계승하여 이 땅위의 풍요로움 속에 살지만 결코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살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자녀들의 믿음을 올바로 지도하고 저들과 함께 동거동락할 차세대 지도자를 키운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부러워하는 탁월한 지도자로 키우고 싶습니다. 겸손히 자신을 바라보며 배우고 익히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그런 지도자로 키우고 싶습니다. 그들의 손에 우리의 자녀들이 심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손에 우리교회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러한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기 위해서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낙심했던 베드로에게 부어주셨던 주님의 사랑과 격려처럼....여러분의 그 사랑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여러분이 있기까지 아낌없이 부어주셨던 그 누군가의 격려와 사랑, 그 귀한 만남을 기억하시면서 이제 여러분의 그 사랑과 격려 그리고 귀한 만남을 우리의 자녀들을 양육할 예비 목회자들에게 나누어주십시오. 그들은 분명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탁월하고도 땀과 눈물을 겸비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영적 지도자로 자라날 것입니다. 허기졌던 베드로에게 주님의 식탁의 준비되었던 것처럼. 여러분 생선을 구워주시고 국밥을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사랑스런 눈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아 뭐해 어여 와서 아침 먹어! 그리고 힘내"
같이 생각해 보십시오.
1. 나의 지나온 인생 중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격려를 경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있으시다면 그 사랑과 격려는 어떤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전달되셨습니까?
2. 나의 인생을 변화시킨 잊혀지지 않는 만남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그 만남을 준비하시고 연결하셨습니까?
3. 내가 그 사랑과 격려 그리고 만남 때문에 빚진 자의 마음이라면 이 마음을 어떤 방법으로 갚고 있으십니까? 하고 계신 구체적인 예들이 있다면 나누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