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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4. 워싱톤서(4) - 조영진 목사
하나님의 진노
로마서 1: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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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자아를 섬기려고 합니다.
인간의 불신앙에 대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진노하심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
지난 주일부터 저는 로마서의 서론에 이어 전개되는 인간의 죄인됨에 대한 사도 바울의 증언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우주 만물의 질서와 아름다움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성품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이 계시들을 깨달을만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서 하나님 대신 우상을, 자아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게 도움만을 줄 뿐 아무런 변화를 요청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현대인들은 원합니다. 부담스럽지 않고 좋기만 한 하나님을 원합니다. 사람들은 성서의 하나님 대신 자신이 빚어낸 하나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인간 현실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같은 본문 말씀입니다만, 이 같은 인간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죄인된 인생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응하시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I.
먼저 본문 1:18의 말씀을 보십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어리석게 되어 하나님대신 썩어질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란 말 앞에 어떤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화를 내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진노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정말 인간의 불의와 죄악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것입니까? 참으로 진노를 발하고 계신 것입니까?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진노란 불의와 죄악을 용납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진실과 사랑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불의와 죄악들이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란 불의와 죄악을 용납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갖는 보다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란 하나님의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릇된 길을 가는 모습에 대하여 결코 무관심 할 수 없으십니다. 인간이 이렇게 살아도 좋고, 저렇게 살아도 좋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 대해 무관심하시는 하나님이시지, 결코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여러분, 우리 부모를 보아도 이 사실은 분명합니다. 자녀가 죄의 길을 걷고 있는데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팔짱끼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우리는 그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 치고 자녀의 죄에 대하여 침묵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부모가 죄의 길을 걸어가는 자녀에게 화를 내는 것은 미워서가 아닙니다. 그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녀를 바로 잡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인간이 죄악된 길,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데도 가만히 팔짱끼고 계신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우리 모두를 염려하시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 우리의 불의에 대하여 침묵하실 수 없으십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바로 잡기 위하여 노심초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II.
(1)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는 다양하게 우리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망하게 하는 심판도 있지만, 잘되게 하는 심판도 있습니다. 잘되는 것이 무슨 심판인가 믿어지지 않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만, 하나님의 진노는 그렇게 임하실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이 초기에 누린 부귀와 영화는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말기에 누리게 된 영광은 하나님의 심판, 진노이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진노는 즉각 임할 수도 있지만, 점진적으로 임할 수도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을 속였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못된 짓을 하는데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때도 많이 있습니다.
(2)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불의와 죄악 앞에서 진노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의 모습 속에서 오늘 본문 말씀이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악된 모습 그대로 내버려두신다는 말씀입니다. 1:24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라고 기록하고 있고, 1:26을 보면,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1:28에도 보면,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를 죄악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 모습으로 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부모님들이 자녀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릇된 길을 가는 자녀들을 때리기도 하고, 달래도 보고 하지만, 계속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십니까? "할 수 없다. 네 마음대로 해보거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어쩌면 이 같은 심정이실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에게 있고, 또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과 거룩한 성품을 그렇게도 알려 주시고, 불러 주시건만, 계속 돌아오지 않는 인생들, 그대로 내버려 주신다고 오늘 성경은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3)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이 정말로 두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는 인생이 가는 길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신 인생이 가는 길을 1:29 이하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시기, 악의가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모든 죄악된 모습은 다 열거해 놓은 것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는 지나친 과장이 아닌가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발 속에서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방임하실 때, 나타나는 결과란 결국 인간 안에 자리잡는 온갖 죄악 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시기, 분쟁, 살인, 수군수군, 비방, 자랑 등 온갖 죄악된 모습이 들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이 또 극명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 성윤리에서 입니다. 1:24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정욕대로 내어버려 두시게 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역행하는 성적 타락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자도 여자도 순리를 따르지 않고 동성간에 음욕이 불일 듯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증언은 그 당시 로마의 현실에서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Juvenal은 당시 로마 사회를 가리켜 도덕적인 자살의 시대라고 부른 후, "로마에서 빈곤이 사라진 후 범람한 것은 온갖 죄와 음란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로마 황제의 아내인 아그리파는 밤중에 쾌락을 위하여 사창굴에서 일하였습니다. 또 처음 로마 황제 15명 가운데 14명이 동성애자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혼하기 위하여 결혼한다고 말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란 만족이 되면 더 깊은 자극, 더 충격적인 쾌락을 찾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절대적인 윤리나 가치의 존재를 부인하는 후기 현대사회에서 윤리와 도덕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동성애의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 연합감리교회 총회는 작년에 동성애는 성서적인 가르침과 배치되며, 동성애를 practice하는 사람은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없다고 분명히 재확인했지만,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려는 노력은 계속 도전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보면, 동성애가 순리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동성애는 나의 선택이 아니며, 동성애는 나에게서 순리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믿음을 지켜야 할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의 말씀처럼 이런 일을 행할 뿐 아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옳다고 정당화시키려는 움직임들이 거세게 일고 있는 시대입니다. 물론 동성애자의 기본적인 인권이 침해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성애는 결코 성서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성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져 가는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이 가져오는 도덕적인 혼돈의 물결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깨어 일어나는 각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어버려 두심이야 말로 참으로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손을 때셨다고, 이제는 자유라고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어버려 두시면, 그 결과는 뻔합니다. 인간의 자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어버려 두시면 그것은 끝입니다. 더 이상 소망을 걸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시면 여러분, 어디로 가겠습니까? 갈 곳이 없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멸망하는 것뿐입니다.
III.
그러므로 하나님의 내어버려 두시는 진노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찾으실 때, 깨어서 응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어버려 두신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1) 하나님께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인생들을 내어버리심은 결코 화가 나셔서 내어 치시는 감정적인 처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탕자의 비유 속에서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집을 떠나는 아들을 내어버려 두시는 아버지의 심정은 분노에 가득찬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무엇을 모르는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 답답함 속에서 떠나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을 죄악의 길에 내어버려 두시는 하나님의 심정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2) 그리고 인생들을 내어버려 두시는 하나님의 결정에는 그만큼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서 선택의 자유를 빼앗으시므로 인간을 바로 잡으실 수도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길을 택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강요하시지도 않으십니다. 그만큼 인간의 자발적인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짓지 못하게 하시지 못하는가? 물론 자세한 해답은 이 다음에 하나님을 뵙고 여쭤 보아야 하겠습니다만,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는 선택할 수 없는 기계로서의 인간 존재가 아니라, 비록 범죄와 타락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수 있는 귀한 존재로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귀한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존중히 여기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도록 강요하시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돌아오도록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깨닫도록 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버려 두심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픈 마음을 안고 인간을 버려 두십니다.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면서.
IV.
오늘 이 시대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는 것이 성숙한 인간의 모습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내어버려 두심에서 나타나는 인간 타락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여기 저기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TV와 Internet을 통해서 쏟아져 흘러드는 음란물들은 도덕이나 윤리와는 상관없는 것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자유로울 것으로 알지만, 인간은 오히려 정욕이나 욕망에 사로 잡혀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허덕이면서 더 깊은 자극, 더 깊은 만족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인생들을 굽어보고 계십니다. 욕망에 매어 사는 인생들을 내어버려 두고 계십니다. 죄악과 불의를 용납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냉철히 바라보십시다.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우습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내어 버리심을 욕망의 기회로 삼는 어리석음에서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내어 버리심 속에서도 담겨있는 사랑,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앞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나를 섬기는 우상 숭배의 삶에서 지금은 돌아설 때입니다. 이제는 참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입니다.
찬송가 500장의 가사 가운데 제가 늘 부르는 구절이 있습니다.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아멘.
* 적용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진노를 느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두려움을 느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함께 나누십시다.
2. 하나님과 도덕적인 삶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왜 도덕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중요합니까?
3. 오늘 이 시대의 윤리적인 현실을 어떻게 보십니까? 무엇이 문제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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