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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4. 워싱톤서(2) - 조영진 목사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로마서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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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사도 바울은 소개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맺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복음 때문에 내 삶 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
지난 주일부터 저는 로마서 강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이 시대에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함께 읽어가기 위하여 "워싱톤서"라는 제목 밑에서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붙들고 주일마다 우리 함께 씨름하는 가운데서 50주년을 맞는 저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굳게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한분 한분이 복음의 능력과 감격을 새롭게 맛보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복음을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사도"로 자신을 표현한 바울의 고백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울만이 그리스도의 노예가 아니라, 예수님을 우리 인생과 역사의 주인,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그리스도의 노예이며, 또 사명을 지닌 하나님의 백성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로마서의, 아니 워싱톤서의 중심 주제가 되는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I.
많은 성서학자들은 로마서의 주제가 되는 말씀으로 로마서 1장16절과 17절의 말씀을 꼽습니다. 우리 함께 이 말씀을 읽어보십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의 주제는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 속에서 4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오늘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성서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요약해 보면 두 가지 중요한 입장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역사, 은혜의 역사로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 안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길,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길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입니다.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첫째 입장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둘째 입장은 우리 인간 편에서 복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어쨌든 복음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존재로 설 수 있는 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열어주신 이 은혜의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새롭게 지으시는 역사, 우리의 사람됨을 회복시켜주시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있습니다.
(2) 둘째로 이 복음은 단순한 이론이나 사상이 아닙니다. 이 복음 안에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단순한 이론이 아닙니다. 추상적인 논리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인생과 역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이 능력을 뼛속깊이 체험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윤리적으로, 또 종교적으로 흠이 없다는 자부심에 가득 찼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복음이 지닌 변화의 능력을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흠이 없다던 자부심은 자신이야말로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는 겸허한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자신이 박해하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일에 생명을 거는 충성된 전도자로 바뀌었습니다.
복음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었습니다. 취미생활의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여가선용의 길도 아니었습니다. 복음은 인생과 역사를 뒤엎는 변화의 능력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복음을 믿습니다. 여러분, 이 복음의 능력을 맛보셨습니까? 복음 안에서 내가 깨어지고 부서지는 변화를 체험해 보셨습니까? 오늘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얼마나 변화되었습니까? 무엇이 바뀌었습니까?
(3) 그런데 이 복음은 믿음을 통하여 그 능력을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복음의 은혜 안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믿음은 무엇입니까? 받아들이는 것(Acceptance)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구원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복음이 갖는 변화의 능력을 체험하는 길은 오직 믿음 뿐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돈을 싸가지고 와야 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박사학위를 가져야만 한다면, 학력이 변변치 못한 사람은 명함도 못 내밀 것입니다.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어야 한다면, 무명의 사람들은 꿈도 못 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멧세지는 단순합니다. 오직 믿음 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17절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말씀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Augustine은 입으로 고백하는 믿음에서 삶으로 고백하는 믿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믿으려는 믿음에서 믿어지는 믿음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서 연구가들은 이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믿음에 의해서"란 뜻을 갖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구원의 능력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이룩하신 역사를 받아들이면,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삶 속에 모셔들이면, 우리는 복음의 은혜, 복음의 능력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찬송가 343장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함을 얻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 밖에 없네.
(4) 한가지 더 복음 안에 담겨진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입니다. 믿으면 누구든지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1:16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이 복음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구별이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나 라는 표현은 단순히 두 종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유대인이든지 그밖에 이방인들, 어느 민족에게라도 이 복음은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다는 선언입니다.
그 사람이 죄인인가 의인인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미국인인가 아프리카의 조그만 나라 사람인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믿으면 누구든지, 어떤 민족, 어떤 피부 빛깔, 어떤 연령에 있든지 복음은 바로 구원의 능력입니다. 인생과 역사를 변혁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이 소식이야말로 복된 소식,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태기 교수님께서 쓰신 책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나이 50줄에 들어서야 예수를 알게 된 청소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교회 문턱도 밟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고교시절에는 학생회 회장을 맡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자랑스런 아들이 반듯하게 자라가는 재미에 하루 종일 쓰레기와 씨름하면서도 고달픈 줄을 몰랐습니다. 가진 것은 없어도 남부러울 것 없는 팔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들이 간간이 들려주던 예수님 이야기, 그러나 그는 그 얘기가 배부르고 등따신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긴 줄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미아리 고개를 넘어오던 아들이 과속 트럭에 치어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아들이 대문을 벌컥 열어제치며, "아버지 학교에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할 것만 같았습니다.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는 날들이 흘러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술로 자신을 달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교회를 위해 봉사했는데... 우리 아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생떼 같은 아들 대신 차라리 이 늙은이를 데리고 갈 일이지 ....' 아들을 죽게 내버려 둔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미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늘에 대고 악을 쓰며 삿대질을 해댔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여전히 무심하기만 했습니다. 그는 목사를 찾아가 멱살을 잡고 갖은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발악을 해대도 그의 마음 속 깊이 가라앉아 버린 분노와 억울함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얼마동안 아우성을 치던 그는 마침내 목사를 끌어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는 결국 실신을 하고 말았습니다. 목사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그를 안방에 데려다 눕혔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주일예배 시간에 설교를 하던 목사는 뒷자리에서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는 소년의 아버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맨 마지막에 나오던 소년의 아버지가 목사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아들이 믿었던 예수를 지가 대신 믿어볼랍니다." 울먹이는 목소리였습니다. 아들이 떠난 지 수년이 지난 오늘, 소년의 아버지는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아들이 살았을 때 믿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찬송을 부르며 어깨를 들썩입니다.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세상에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네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그렇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나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II.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의 능력 안에서 새 삶을 찾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웃과의 관계, 특별히 함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1:8 이하의 말씀은 이 사실을 분명히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로마의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 사도가 개척했다고도 하고, 오순절에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살던 곳 로마에 돌아가 교회를 세웠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본적도, 만난 적도 없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만,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한 간절한 기도와 함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1) 먼저 1:8을 보면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가 세운 교회는 아니었지만,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는 것을 들으면서 감사했습니다. 그가 세운 교회가 아니기에 시기하거나 무관심했다는 이야기는 추호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2) 또 사도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기억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자신이 세운 교회도 아니었지만 그는 로마에 있는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쉼없이 기도했습니다.
(3) 사도 바울은 또 그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사모했습니다.
1:10에 보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한다고 밝히고 있고, 11절에 보면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로마의 성도들을 만나기를 기도해 온 것은 믿음 안에서 서로 권면과 위로를 받고, 또 복음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기를 원하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가지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성도와 성도의 사이, 교우와 교우들과의 관계 속에서 보여 주어야 할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형제나 자매의 잘되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감사하고, 서로 위해서 기도하며, 서로가 만남 속에서 함께 은혜 나누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남의 교회, 다른 교인들이 잘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까? 고소하다는 생각이 뿌리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고질병이 과연 고침을 받았습니까? 요즈음은 이 말도 바뀌어서 사촌이 자동차를 사면 교통순경되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형제와 자매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 기도의 폭은 이웃과 형제, 고통하는 다른 교회까지 포함하고 있습니까? 또 얼마나 깊은 나눔에 이르고 있습니까?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끈끈한 사랑의 마음이 우리 가슴 속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도 바울에게 이웃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습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비록 보지 못했고, 만나지 못했지만, 위해서 감사하고, 기도하며, 또 나눔의 날,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게 될 그날을 사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 하나님을 한 교회 안에서 같이 섬기면서도 높은 무관심의 벽에 둘러 쌓여있지는 않습니까? 내 교회, 내 교우란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개교회주의에 매어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남의 교회 부흥하고, 다른 교인 잘되는 일을 질시하는 가슴앓이 속병이 남아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웃과의 관계, 다른 그리스도인과의 관계에서도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바울의 고백 속에 나타나는 그런 변화, 그런 폭은 오늘 우리에게도 요청됩니다. 우리도 그렇게 감사할 줄 알고, 위해서 기도하며, 진실한 나눔을 위한 만남을 사모하는 이런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모습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III.
로마서, 아니 사도 바울이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내온 편지, 워싱톤서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았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맺어지게 되는 새로운 관계를 찾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담대히 고백합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모든 사람에게 이 자랑스러운 복음을 전해야 하는 빚을 진 사람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과연 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까? 이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부담감을 갖고 계십니까? 인생과 역사를 변화시키는 이 능력의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인 되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시지는 않습니까?
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이 놀라운 은혜에 자리에 나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이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1월 초순 McLean Hilton 호텔에서 모였던 연합감리교 Congress on Evangelism, 전도회의에서 휴스톤제일감리교회를 섬기시는 Bill Hinson 목사님께서 들려주신 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Cindy라는 꿈많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가 19세 때 늦게 class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가 두 명의 괴한에게 납치되어서 밤새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괴한들은 Cindy를 죽이기 위해 총을 쏘고는 달아났습니다. 사방에서 흐르는 피를 보면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누군가의 신고로 엠뷸런스가 와서 Cindy는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처음에는 죽음의 공포에 떨었지만, 이제는 내 생명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저주스러웠습니다. 한순간에 엉망진창으로 짓밟힌 인생, 살 소망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남은 것은 범인들을 향한 미움과 분노, 증오심 뿐이었습니다.
Cindy는 자살의 위험성 때문에 6개월 이상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 속에 가득한 분노와 절망을 어떻게 할 길이 없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휴스톤제일감리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믿음 안에서 새 날을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성찬식을 하는 주일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 떡과 포도즙을 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드리라는 권면을 듣고 떡과 포도즙을 받을 때, 참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녀의 인생 속에 오셨습니다. 그녀의 마음 속에 가득했던 미움과 분노는 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녀의 마음을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증오해 오던 범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Cindy는 범인들에게 편지를 써보내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25세 된 Cindy는 감옥에 있는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히 헌신하고 있습니다.
Cindy가 간증을 마치고 내려올 때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아픔이나 상처, 매인 것들이 있습니까? 이 시간 그리스도 앞에 내어 맡기시기 바랍니다. 벗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때 한 여인이 눈물을 쏟으며 달려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웬일이냐고 물었을 때, 휴스톤의 상류사회에 속해있는 이 여인은 외쳤습니다. "목사님, 오늘 Cindy의 간증을 들으면서 그 동안 내 가슴 속에 품어온 아버지에 대한 증오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행한 행동 때문에 나는 42년 동안 아버지를 증오해왔습니다." 눈물로 범벅이 된 그 여인의 얼굴에서는 전에 보지 못했던 자유와 해방의 기쁨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늘도 기쁜 소식입니다. 이 복음은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 오늘도 외칩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사람이든 그리스 사람이든, 미국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모든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아멘.
* 적용을 위한 질문
1. 나는 오늘 복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과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복음의 능력을 체험해 보셨습니까? 함께 나누어 보십시다.
3.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구원의 능력을 맛볼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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