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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단기선교 보고서
2004년 1월 29일 - 2월 7일
보고자 : 홍철 권사
주님의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지난 1월29일부터 2월7일 까지의 제 3차 방글라데시 단기선교 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삶의 순간들이었다.
이번 방글라데시 선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미리 준비하여 놓으신 예비의 길을 보여 주셨다.
워싱톤에서 비행기를 타고 24시간 이상 가면 지구의 반대편에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중 하나인 방글라데시가 있다. 국토는 남한 크기만 한데 인구는 세배가 넘는 1억 3천만으로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1988년에 헌법을 개정하여 회교를 국교로 선포했으며 전체 인구중 87%가 회교도이며 기독교 인구는 0.3% 밖에 안 된다. 마침 저희 단원들이 도착한 다음날부터 3일 동안 "꼬르반 이드"라는 회교 명절이 있었다. 이 명절을 직접 보기 위해 우리는 수도 닥카에 있는 중앙 회교사원을 방문했다. 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 회당안 예배에 참석치 못한 수만 명의 회교도들은 회당 밖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멕카를 향해 엎드려 절을 했다. 예배는 남자들만의 특권이기에 여자는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회당 입구에는 성경에 나오는 대로 거지, 앉은뱅이, 소경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우리 단원들은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는 건물 옥상위로 올라가 멀리서 그들의 예식을 구경했다 전국적으로 "꼬르반 이드" 예배가 끝나면 회교도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 미리 준비한 소나 염소를 집앞 길거리에서 잡아 알라신에게 피 제사를 드린다. 사제들이 각 가정 식구들을 위해 간단히 기도하면 면허를 가진 젊은이들이 돌아다니며 날카로운 큰칼로 소나 염소의 멱을 따준다. 거리는 온통 피바다로 변한다. 이날 전국적으로 희생된 소는 1천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고기의 1/3은 회교 사원에 바치고 1/3은 가난한 사람에게, 1/3은 자기들이 먹는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의 수도 닥카에는 1987년부터 장순호 선교사님을 중심으로 초 교파적인 팀 선교를 펼치고 있는 "한국 방글라데시 개발협회" KDAB 본부(Korean Development Association in Bangladesh)가 있고. KDAB가 운영하는 초등학교 "새순 학교"가 있다
단기 선교 몇 번 왔다가 이곳을 최종 정착지로 결정하신 엄명희 교장 선생님은 "최 빈곤층의 자녀 260명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요즈음에는 부유층 학부모들이 찾아와 자기 아이들도 입학시켜 달라고 애걸한다"고 자랑하신다.
방글라데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회교 교육을 시키지만 새순학교에서는 종교 과목을 없애고 그 대신 컴퓨터 과목을 넣었다 고한다. 7년 전 우리 교회가 보낸 120대의 컴퓨터가 큰 힘이 되었는데 이제는 매우 낡아있어 컴퓨터를 수리할 일군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새순학교 방문을 마치고 우리는 새순학교 학생들이 사는 빈민촌을 방문했다
50년도 우리나라 청계천 판자촌보다 못한 이곳은 오염으로 꽉 차 있었는데 한인섭 권사 님께서 이곳을 방문중 골목길에 있는 오물 구렁텅이에 오른발을 깊숙이 빠뜨렸다 발을 빼자 밤색 구두와 흰 양말 흰색 바지 자락이 오물로 온통 새까맣게 변해 있었습니다. 이때 이웃 주님들이 몰려들어 바가지로 양동이로 물을 떠다가 바지 가랑이와 구두를 열심히 닭아 주었고 어떤 할머님께서는 그 귀한 가루 비누까지 들고 나왔습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순수한 사랑과 포근한 인정에 감동하신 권사 님께서는 노래의 가사를 인용하시면서 "I left my heart in Bangladesh"라고---
또 닥카에있는 KDAB에서는 봉재 사역과 음악 사역도 펼치고 있는데 특히 재봉을 가르칠 일군을 기다리고 있으며 한국에서 보내준 많은 악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군이 모자라 활용하지 못하고 창고에서 먼지에 쌓여 있었다.
특히 내년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칠 선생님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장순호 선교사는 힘주어 말씀하신다.
2월 1일 주일에 선교단원 일행은 CDC(Christian Disciple Center)를 방문해 교직원 학생과 그들의 가족과 함께 아침 예배를 드렸다. 이곳은 9년 전에 이종호 집사 님께서 1년 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학생들에게 영어로 제자훈련을 강의하신 곳이어서 이번에도 설교를 맡으셨다.
예배를 마친 후 우리 단원은 다섯 그룹으로 나누어 학생들과 토론회를 가졌다
농업팀 에서는 장태전 권사 님께서 그곳 실정에 맞는 농사재배에 관하여 강의와 토론이 있었고 이 미용/의료 팀은 나영란 집사 님께서 현지 사역 자들에게 간단히 머리 깍는법과 관리에 관해서, 장성윤, 윤인숙 권사 님께서는 여자들의 건강 관리에 대해서 질의와 응답 시간을 가졌다.
미디어 팀에서는 한인섭 권사 님 주재로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토론했는데 학생들은 방글라데시 정부의 언론 통제를 개탄하였다.
정운용, 고광섭 집사님이 인도한 목공 팀은 학생들의 큰 호응을 받았으며 석균욱 교우가 이끄는 Business팀은 학생들의 많은 관심 속에서 현지인 에게 많은 꿈을 심어 주었다.
단원들은 닥카를 떠나 비행기와 자동차 편으로 네시간 걸려 찔마리에 도착했다.
찔마리는 방글라데시에서도 최빈곤 지역으로 인구 10만 명중 80%가 문맹자들이며 주민 100%가 회교도인 곳이다. KDAB가 10년전 모진 박해를 무릅쓰고 이곳에 초등학교와 가나안 농군학교를 세우고 의료 사역과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여 지금은 주민들로부터 사랑과 신임을 받고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역은 이곳에서 하였다. 아침 6시에 모여 예배를 드린 후 현지인 들이 손수 준비하신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한후 8시에는 찔마리 초등학교 선생님들, 모든 운영 진과 함께 경건의 시간으로 일과가 시작되는데 어찌나 성경을 열심히 읽고 찬양을 하는지 단원들이 오히려 은혜의 시간을 그들로부터 받게 되었음을 고백하였다.
경건의 시간에는 저희 단원들이 돌아가며 15분 동안 말씀을 전하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모두가 함께 은혜를 받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경건의 시간이 끝난후 우리 단원들은 각자 받은 은사대로 나뉘어 이 미용, 목공, 영어 교육, 농업, 의료 등으로 나누어 사역을 하였다.
특히 목공 팀은 준비해간 최신 목공 장비를 이용하여 농군학교 교실 지붕을 새로 지어 주었고 또 현지인 들에게 목공 장비의 사용법을 일일이 가르쳐 주었다.
이번에 가지고 간 장비들은 목공 팀이 1600불의 사재를 털어 구입한 것이다.
장순호 선교사님에 의하면 이런 장비는 방글라데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찔마리 KDAB 구내에 설립된 초등학교는 5학년제로 네 명의 교사들이 방학도 없이 가르치고 있으며 이곳 유일한 초등학교이다. 이번에 한인섭 권사 님과 이종호 집사 님께서 미리 준비하여 가신 교재로 영어를 가르치셨는데 내년에 꼭 다시 와서 가르쳐 달라는 학생들의 부탁이 있었다. 이 미용 사역의 나영란 집사 님, 석균욱 교우는 현지인 들에게 이 미용 기술을 장 순호 선교사님을 모델로 하여 가르치고 점심까지 거르며 하루종일 초등학생들의 머리를 손질했습니다. 농업의 장태전 권사 님은 현지인 들에게 강의하며 직접 밭에서, 준비해 가신 물 호수를 밭도랑에 설치하고 고추 모종을 심으며 시범을 보이시는 것이 얼마나 좋으신 지 그 큰 체구에 땀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사역에 임했다. 이 시범 농장이 성공하면 건조기에도 작물을 재배하고 물이 귀한 섬에서도 농사를 짖게 될 것이다.
의료 팀의 장성윤 권사님과 윤인숙 권사님께서는 약품정리와 환자를 돌보시는 사역을 하였는데 특히 현지에서 직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시던 분께서 다리를 다쳐서 이분을 도와 주었을 때 이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까지 많은 의료 팀이 이곳을 찾아왔으나 KDAB내의 종업원을 치료한 것은 처음" 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KDAB 의료 팀은 일주일에 한번씩 인근의 9개 섬을 순방하며 의료 사역을 펼치고 있으며 많은 환자를 돌보고 있다. 우리 단원은 KDAB가 운영하는 배를 이용하여 인근의 섬을 돌아보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태풍이 일고 홍수가 들어 닥치면 섬이 없어지고 또 다른 섬이 생긴다는 말에 현지인 들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2월 5일 우리는 그동안 정든 찔마리를 떠나 약 12킬로미터 떨어진 울리뿔로 이동했다.
이곳은 나환자 재활원이 있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 주님께서 저희 교회를 쓰셔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곳이기에 우리 단원들의 마음이 벌써 이곳에 와 있었다. 현지 직원들과 함께 경건의 시간을 갖고, 한인섭 권사 님의 권면의 말씀이 있었는데, 권사 님께서는 한국이 지난 50년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설명하면서 방글라데시도 희망이 있는 나라이므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자고 격려했다.
우리 단원들은 장순호 선교사님과 함께 울리뿔 사역 장과 구입해놓은 3.5 에이커 농토, 또 앞으로 구입하여야할 땅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이곳에 세워질 학교에 대한 선교사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이곳에 세워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직업 훈련원, 농군 학교, 모든 작업을 장기적으로 2004년 10월부터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장기 계획에 들어설 것임을 말씀 하셨다.
단원들은 와싱톤 한인교회 장기 선교 사업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임을 마음속에 느끼며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기도의 문을 열어야함을 새삼 느꼈다.
울리뿔에 이루어질 장기 계획의 희망을 안고 단원들은 KDAB의 자동차를 이용하여 비행장으로 달렸다 푸른 들판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있을 때 단원들은 차의 이상을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차는 큰소리를 내며 길가에 서고 말았다. 비행장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단원들은 차에서 내려 지나가는 차에게 도움을 구했다. 지나가는 버스 한 대를 세웠는데 초만원이다 사정을 하여 여섯 명은 차안으로 장 선교사님과 네 명은 버스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속도 제한 없이 달리는 버스, 버스 위에 탄 우리는 시원함을 느꼈다. 얼마를 왔을까? 비행장과 갈라지는 길목에서 우리를 내리라고 하는 운전사의 눈치다. 이어 그곳에 타고 있던 현지 학생들이 먼저 비행장으로 가서 우리단원을 먼저 내려주고 돌아가야 한다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할 수없이 운전사는 버스를 비행장으로 돌렸다.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30분 이상 늦었는데 비행기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희 단원들을 위해서 오래 전부터 기도하신 중보 사역팀, 온 교우들의 기도 응답이 현지 학생들을 쓰셔서 이루어진 순간 이였다.
우리 단원들은 주님의 인도하심에 닥카에 무사히 도착하여 기도회를 마친 후 벌써 내일 아침이면 정든곳을 떠나야하는 섭섭함에 지난 일을 회상해 보았다.
찔마리 에서 식사 때마다 외치던 구호, "오늘은 우리 삶의 새날(첫날)입니다" "먹기 위해 먹지말고 일하기 위해 먹자,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자" "한끼 식사에 4시간씩 일하자" 일터가 고향이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제 우리 단원은 주님을 위해 먹으며, 일 하며, 주님께 감사하며 사는 주님의 자식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냈다.
이미 20년째 이곳에서 땀과 눈물을 쏟아온 장순호 선교사님, 그리고 수십 명의 한국인, 현지 동역 자들, 그들은 우리 주님이 지켜 주시기에 오늘도 저 위험한 오지, 건 건한 땅에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으며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단장: 이종호 집사
단원: 한인섭 권사, 장태전 권사, 윤인숙 권사, 장성윤 권사, 홍철 권사, 고광섭 집사, 정운용 집사, 나영란 집사, 석균욱 교우
2004년 2월 19일 찔마리, 울리뿔을 사랑하며... 홍 철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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