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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베트게의 <디트리히 본회퍼>
by Eberhard Bethge ,Dietrich Bonhoeffer:
신학을 공부하고 나서 지금까지 읽었던 수 많은 책들 가운데서 나를 가장 흥분시키고 감동시켰던 책을 하나만 뽑으라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Nachfolge)다. 첫 사랑이 가장 오래 남기 때문일까? 나는 이 책을, 신학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읽게 되었다. 그 책을 붙잡고 읽기 시작하자마자, 그 책이 나를 붙들어 버렸다. 숨을 쉬기도 어려울 만큼 그 책은 나를 흥분시켰다. 그것은 차라리 하나의 웅변이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울려나는 공명 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마음속에서는 제대로 된 예수의 제자가 되어 보리라는 결의가 형성되었다. 지금껏, 그렇게 사로잡혀, 그 같은 울렁거림을 느껴가며 책을 읽은 적은 별로 없었다. 나는 그 책을 통해 “신학을 하려면 이렇게 하고, 책을 쓰려면 이렇게 쓰고,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이렇게 살자”는 방향 설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로 단편적으로 들어 알게 된 본회퍼의 생애는 더 더욱 감동이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가르치다가 나치 치하의 조국에 전쟁의 기운이 짙어지자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하여 반 나치 운동을 하다가 패전 직전에 사형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진짜’를 만난 듯한 희열을 안겨 주었다. 산상설교를 가장 사랑했던 그가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에 가담했다는 사실 또한 충격이었다. ‘제 정신을 잃은 운전자가 폭주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면, 그 폭주를 멈추게 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주장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다른 한 편, “나는 누구인가?”라는 시를 통해, 나는 본회퍼의 또 다른 면을 보고 감동했다. 이토록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실로, 그의 믿음과 삶과 투쟁과 죽음과 글은 하나의 전체로서, 서로를 비추어주고 해석해주고 보완해 준다.
본회퍼에게 이토록 깊이 영향을 받은 한 사람으로서 이 전기가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이 전기는, 젊은 시절부터 본회퍼와 동고동락을 하며 자랐고, 나중에 목사로서 그리고 신학자로서 활동을 했던 에버하르트 베트게의 손에서 나왔다. 아니, 그의 체험에서 나왔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본회퍼가 남긴 편지와 글들을 깊이 연구하여 쓴 일종의 평전이다. 원래는 전문가들을 위해 쓴 방대한 평전이었는데, 일반 독자들을 위해 저자 자신이 축약해 놓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이 전기에서 ‘절제된 글쓰기’의 모범을 보인다. 자신의 글 솜씨로 인해 본회퍼에게 덧칠이 가해지지 않을까 염려한 듯한 느낌이다. 본회퍼를 ‘선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본회퍼를 ‘소개’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한 절제된 글쓰기가, 가볍고 수다스러운 글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에게는 낯설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을 늦추고 곱씹어가며 읽노라면, 글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어려운 번역 작업을 훌륭하게 해 낸 번역자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화보들이다. 본회퍼에 관하여 이토록 많은 화보들을 한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하나의 사진이 그 사람에 대해 전해줄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사진은 글로 전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글을 통해 어느 정도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사람의 사진들을 보는 것은 단순한 흥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의 표정, 자세, 옷차림 등을 통해 ‘읽어’ 안 것들을 ‘보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는 특별한 이미지 하나는 밑줄 그으며 읽은 명문장 하나만큼이나 깊고 오랜 영향을 미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틈틈이 화보들을 들춰가며 그의 삶을 회상하는 것은 ‘거룩한 독서’의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한국 교회의 현상을 두고 염려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전기의 출판에 대해 기대가 크다. 한국 개신교회가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제정신이 아님에 틀림없다. 최근에는 그 사실이 정부에서 발표한 통계에서도 확인되었다. 종교에 관한 각종의 여론 조사에서 개신교회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로 귀의하는 일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교회는 점점 사회 안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신뢰성이 바닥에 떨어졌다. 사정이 이런데도, 스스로 기독교의 대표임을 자처하고 나선 인사들은 구습을 되풀이하고 있고, 일부 대형 교회들은 추문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생각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거나, 거룩한 삶에 대한 열망을 잃고 관망하고 있다.
생각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어찌할 것인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분이 세상의 희망이라고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 해답을 본회퍼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본회퍼에게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은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따랐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다만, 본회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기 위해 힘썼던 하나의 ‘실례’다. 우리는 수학 공식을 보고서 그 원리를 이해하기보다는, 그 공식을 대입해서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을 보고 이해한다. 그것처럼 본회퍼의 실례는 우리에게,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 살 것인가를 실례로 보여줄 것이다. 본회퍼는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진짜’ 제자로 살기 위해 힘썼던 사람이다. 오늘의 한국 개신교의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길은 깨어있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짜가 되기 위해 우직하게 살아가는 것밖에 없다.
얼마 전, 내가 인도하는 영적 여행 반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두고 토의한 적이 있다. 한 참 동안, 참석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분별하는 방법에 대해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있었다. 토의의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을 때, 침묵을 지키던 한 사람이 입을 열어 좌중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저는요, 새로운 상황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겠거든요. 나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또렷할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것을 행하지 못해요. 그게 제 문제예요. 저는 종종 ‘기독교인 하기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해요.” 이 고백이 있은 후,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말에 ‘참’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모르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면서 스스로를 최면 시켜 하나님의 뜻을 회피해 온 자신의 모습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리라.
본회퍼가 말한 ‘값비싼 은혜’ 혹은 ‘헌신을 요청하는 은혜’를 그분은 느끼고 있었다. ‘기독교인 하기’(living as a Christian)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참된 제자도의 출발이 아니던가. 그래서 예수님은, 망대를 세우려는 사람이 미리 비용을 계산해 보는 것처럼, 그리고 전쟁을 시작하려는 사람이 소요될 군사력을 미리 따져 보는 것처럼, 제자들은 먼저 제자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 볼 것을 요청하셨다(눅 14:25-33).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과 희생이 뒤따르는 일임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제자의 길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그 길에는 부활하신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 그리고 제자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영예로운 길이라면, 희생과 고통을 무릅쓸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바울 사도의 유일한 소망이요 목적이요 삶의 의미였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빌 3:10).
여기, 바울처럼, 이 하나의 소망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 있다. 그리스도를 알고(‘체험적으로 겪어 알다’라는 뜻), 그분의 부활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결국 그분처럼 죽은 한 사람! 부디, 이 전기가 독자들에게 이 하나의 열심을 회복시켜 주기를!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참되게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에 사로잡혀, 그분의 길을 뒤따라가는 참된 제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그들이 한국 교회의 참된 갱신의 불씨가 되기를! 아멘.

2006년 7월

김영봉 목사
와싱톤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