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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의 수도자(A Hermit at the Market) - 김영봉 목사 (2006년 여름)
시간이 참으로 빠릅니다. 와싱톤한인교회에 부임한 지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년을 지냈습니다. 그만큼 재미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루 하루, 기쁨으로 섬겨왔다는 뜻입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희 네 식구가 모두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도전도 많고, 문제도 많고, 24시간으로는 턱도 없는
많은 일들이 있지만, 그래도 즐겁습니다.
저를 가장 기쁘게 해 주는 것은 교우들께서 제 설교와 강의에 보여주시는 반응입니다. “주일이 기다려집니다”라거나, “말씀의 힘으로
한 주일을 삽니다”라는 인사를 자주 받습니다. 그냥 인사 치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분들의 얼굴 빛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6월과 7월에 열었던 ‘특별기도학교’를 통해 저는 큰 감동과 보람을 얻었습니다. 영적 부흥이 일어나는 것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기도학교 첫 시간에 말씀 드렸듯, 교우들께서 보여 주시는 열심에 부끄럽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섬기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설교는 널리 그리고 깊이 울려 퍼집니다. 우리 예배당에 모여서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수보다 바깥에서 방송으로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 퍼져 나갑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성과 상징성
때문에 우리 교회의 설교는 하나의 표준으로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설교에 더욱 많은 기도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것입니다. 머리에서만 설교가 나오지 않도록, 제 마음에서 설교가 울려 나오고, 제 몸이 설교를 채울 수 있도록, 힘쓸 것입니다.
최근에 심방을 하면서 교우들의 삶에 더 밀착되는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교우들의 삶을 모르면서 외치는 설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해서, 제가 제 설교의 약점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설교가 어렵다거나,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다거나,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 소리들을 귀담아 듣고, 어떻게든 그 같은 ‘민원’을 해결해 보려고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설교와 강의를 통해서 일관되게 추구하는 바는 ‘시장 통의 수도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시장을 떠나 수도원으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수도자로서 살자는 것입니다. 수도자로 산다는 말은 고행과 금욕을 추구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진정한 수도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장 중요한 관심으로 두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과의 더 깊은 사귐을 추구하며,
그 사귐 안에서 삶의 방향과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갈 힘을 하나님에게서 발견하여, 한 걸음 한 걸음 견고하게
살아나가는 사람이 참된 수도자입니다. 분망하게 일에 밀려다니며 우왕 좌왕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으로 일관되게 걸어가는
삶입니다. 중심이 서 있고, 내실이 차 있고, 방향이 서 있고, 뜻이 가득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교우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다니는 직장에 아주 능력있는
부하 직원이 있답니다. 그 사람은 맡고 있는 직책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교우께서는 그 사람의
능력이 아까워서 예외적인 조치를 취해 가면서 특별한 일을 맡겨, 직장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직장에서 하는 일에 아무런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능력이 좋기 때문에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지만, 그것으로 전부였습니다.
그 사람의 관심은 오직 신앙 생활 즉 교회 활동에만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먹고 살만큼 돈을 벌면 되고, 자신의 삶의 의미는 신앙
생활에서만 찾겠다는 태도입니다. 결국, 그는 밀리고 밀려, 아무나 해도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늘 즐겁게
살고 있답니다. 그 교우께서는 “그 사람을 보면 내가 잘 못 된 것인지, 그 사람이 잘 못 된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서 안됐지만, 이와 같은 신앙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불행한 것은 한국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이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이처럼 가르칩니다. ‘썩어빠질 세상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 즉 교회 일에만 전념하도록 몰아
세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가르칩니다. 직장 일과 교회 일이 겹칠 때, 교회 일을 우선시하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가르친 결과, 세상과 교회 사이에는 높은 장벽이 세워져 있습니다. 신앙과 현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울타리가 세워져 있습니다. 믿음이 좋다 하는 사람들은 이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들면서, 언젠가 세상을 완전히 떠날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예수님은 이 장벽을 허물어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들며 언젠가 그 중 하나를 버리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두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교회 안에서만 신앙인이 아니라,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신앙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직장에서 자신의 업무를 거룩하게 여기고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교회에서 교우들을 대하듯,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하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을 하든지, 예배 드리듯 정성을 다하고, 그 일을 통해 이웃을
돕고, 그렇게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시장 통의 수도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도적 일상
생활’(contemplative daily life)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전에 맛보지 못했던 행복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속을 등지고 자기만의 움막 속에서 경험하는
은둔자의 행복감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이웃을 위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행복감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행복감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의 목회를 통해, 저 자신이 먼저 이 행복을 더 뿌듯하게 누리며, 교우들에게
그 비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초보자에 불과합니다만, 때로는 고수(grand master)가 안내하는 것보다 ‘초짜’(novice)가
안내하는 것이 더 알아듣기 쉬울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이 모험에 초대합니다. 이 영적 여행에 초대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모험적인 여행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도 있고 고쳐야 할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보다는 그것을 통해 얻게 되는 유익이 큽니다. 많은 신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이 땅에서는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천당에 가서 행복을 누리자”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천국의 행복을
누리라고 청하셨습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어느 때이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곧 천국의 삶입니다. 시장에서 수도자로
살아갈 때, 우리는 시장 한 구석을 천국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통해 또는 강의를 통해 꾸준히 이 일을 해 가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이 앞으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유아부로부터 노년부에 이르기까지 ‘시장 통의 수도자’로 살아가도록
돕는 일에 모든 목회 역량을 기우릴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일을 기뻐하실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호응과 참여와
성원을 기대합니다. |